[프라임경제] 지난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는 동안 등장했던 많은 장면 장면들이 당대를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한 바 있다. 자존심 높기로 유명한 재정경제원 관료들이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신청 상황에서 어쩔줄 몰라하며 허둥대는 모습, 길에 넘쳐난 노숙자들, 12월 초 종금사 등 금융기관이 하루아침에 영업이 정지된 혼란상황 등이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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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직원들의 소회를 담은 영상은 말미에 어느 여직원이 “좋은 은행을 만들어 달라”고 눈물을 훔치며 당부하는 것으로 끝났던 것으로 기억된다.
다름 아닌, 제일은행에서 벌어졌던 상황이다. 현재 이 은행은 스탠다드 앤 차터스에 인수돼 ‘외국계 은행’이라는 낯선 분류표를 달고 있다. 현재 고액 직군으로 분류되는 은행 중에서도 1인당 평균 가장 월급이 높은 은행으로 손꼽히고, 조만간 금융지주로도 재편될 것으로 알려지는 등 이른바 ‘잘 나가는’ 은행이다.
이렇게만 놓고 보면, 한때 HSBC로 인수가 되느니 마느니 하며 입방아에 올랐건 기억이나, 직원들이 구제금융 무렵에 짐을 싸들고 떠나던 장면이 모두 꿈만 같다.
하지만 제일은행의 속사정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 것 같다. “좋은 은행을 만들어 달라”던 당부는 아직 현재 진행형인 것 같다.
제일은행은 가끔 실적이 좋지 않으면 모 상무급 인사 ‘여성 비하 발언’, 은행장 경질 등 굵직한 내홍(內訌)을 겪어 왔다.
초기에는 실적을 강조하는 영미계 선진(?) 금융 풍토 때문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그러나 실적 압박이 아무리 중하기로서니 매번 임원이 과한 압박을 하는 것도 모범적이지는 않고 이로 인해 노조가 나서서 노사가 옥신각신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제는 외국계 임원들이 연이어 부임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문화 차이 때문에 그렇다는 핑계도 통하지 않는 일이 벌어져 씁쓸하기조차 하다. 최근 모 부행장은 “달구지 갈 때 개가 앞서 가면 경치 구경도 하고 좋지만 뒤에 끌려오면 목만 아프다”는 발언을 해 물의를 빚고 있다.
근래 2분기 실적 주요 지표 대목들이 급전직하하는 상황에서, 직원들을 향해 반항하면 달구지에 고삐가 매여 끌려가는 개 꼴이 될 수 있다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위험한 발언이다. 직원 압박이 도가 지나쳤다는 평가다.
개는 영리하고 충직한 동물이지만, 종속과 굴종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노동법학자들이 부당한 근로 계약을 가리키는 말 중에 ‘황견계약(黃犬契約)’이라는 말까지 있다.
이렇게 직원들을 개처럼 생각하고 부리는 것으로 오해될 말을 행여나 잠깐이라도 입에 담은 것만으로도 해당 임원은 장래 행장을 바라보는 인사로서 참담함을 스스로 느껴야 할 줄로 믿는다.
이는 영국 본사에 위치한 SC 본사의 높으신 분들이 김 부행장의 이번 발언과 그 여파를 어찌 볼까의 두려움이 아니어야 할 것이다. 김 부행장이 어려워해야 할 대상은 10년 전 동영상 속 직원이 눈물을 흘리면서 부탁한 “좋은 직장을 만들어 달라”는 당부다. 아마 동영상 속 직원은 제일은행 직원을 달구지 뒤에 끌려오는 개로 비유하는 직장을 ‘좋은 직장’으로 의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임혜현 기자/프라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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