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 Line 협상단과 김우중 당시 대우그룹 회장이 이끄는 대우 협상단이 대화에 나섰다. 마라톤 협상 내내 김 회장이 세세한 부분까지 직접 처리하는 모습을 본 US Line 관계자는 협상이 마무리될 때쯤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회장은 터프가이지만 스탭은 약하다"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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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회장이 대우의 운명을 혼자 짊어지는 영도력을 발휘하는 대신에, 유능한 참모진을 옆에 두고 귀를 기울였다면 대우그룹의 운명이 조금 달랐을지도 모를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좀 더 멀리 올라가도, 이렇게 고위인사가 사소한 일까지 노심초사하다가 외려 일을 망치는 경우가 없지 않다.
제갈공명이 촉군을 이끌고 북벌에 나선 당시의 일이다. 오장원에서 제갈공명이 세세한 부분까지 직접 챙기면서 잠을 자지 않는다는 소문이 돌자 위군의 사마중달 장군은 "제갈공명이 오래 살지 못하겠구나"라고 예견했다.
제갈공명은 결국 북벌을 완수하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아마 제갈공명으로서는 북벌의 과업을 완수하지 못할까 걱정이 돼 그랬던 것이겠으나, 결국 이렇게 무리한 것이 노쇠한 제갈공명의 명을 재촉했다.
약간 다른 이야기지만, 장비는 출병을 앞두고 부하들을 혹독하게 다루다가 불만을 사서 일을 망치고 자신도해를 입기도 했다.
최근 은행권은 흡족하지 못한 상반기 실적 때문에 하반기 대전을 준비하느라 바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어느 은행의 행장은 은행이 기획한 저소득층 자녀 초청 행사에 몸소 참석, 물놀이를 하며 망중한을 보내기도 하고, 또다른 행장은 대화의 시간을 갖는 데 주력하는 등 '쉼표'를 찍는 모습들이 두드러진다.
다만, 또다른 행장은 평소의 '즐거운 일터'를 강조하던 모습에서 부쩍 초조함을 보이면서 실적 끌어올리기만 강조하고 있다고 한다. 이 분께서는 직원들을 독려하는 연장선상에서 실적 올리기의 구체적 방법론도 '하달'하셨다고 한다. 그 자신이 은행은 물론 투자증권 사장까지 지냈던 터라, "수익증권을 팔아 수익을 올려보자"는 그 분의 세심하고도 구체적이며 틀리는 게 하나 없는 그 분의 말씀은 토를 달기 어려운, 그래서 상당히 부담스러운 말씀으로 직원들에게 와 닿았을 것 같다.
"하반기 실적 개선을 이루지 못하면 행장직에서 용퇴하겠다"고까지 했던 그 분의 3분기 조회사도 많은 화제를 낳았다. 어느 금융지주사의 창립 멤버로부터 시작해 행장으로까지 영전한 입지전적인 인물이고 보면, 이토록 비장하게 진퇴를 말하는 모습이 허언이기 보다는 제갈공명의 '출사표'처럼 감동을 주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말씀이 감동적인 과에 겹쳐서 세부적인 방법론까지 지도하달하는 모습은 제갈공명이 만들어 낸 수많은 전설보다도 오장원에서의 비장한 최후를 먼저 떠올리게 해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행장님'의 영도력 발휘는 너무 세부적인 부분까지, 또 고압적인 태도로 이뤄진다고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임혜현 기자/프라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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