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최불암 선생의 부고를 듣고 17년 전 썼던 기사들을 찾아봤다. 2009년 주간지 초년병 시절 연재한 '대한민국 수사반장'이다. 수십 년간 강력사건을 수사한 형사들을 만나 그들이 직접 겪은 사건과 뒷이야기를 기록했다.
첫 인터뷰 상대가 최중락 총경이었다. 최불암 선생이 연기한 '박 반장'의 실제 모델이다.
서울 순화동 에스원 집무실에서 만난 최 총경은 당시 여든 한 살이었다. 은퇴한 지 오래였지만 매일 아침 6시 반이면 경찰청 형사당직실에 나갔다. 밤사이 벌어진 사건을 훑고 후배들에게 의견을 주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사건 개요만 보면 어느 정도 느낌이 와. 그 직감을 후배들한테 귀띔해 주는 게 수사연구관의 임무지요."
그를 시작으로 원로 형사들을 차례로 만났다. 서울시경 강력계와 폭력계, 일선 경찰서에서 수십 년을 보낸 사람들이었다. 대부분 은퇴했지만 사건 발생 날짜와 범인 이름, 검거 장소까지 또렷하게 기억했다. 준비해온 질문이 무색할 만큼 이야기가 길어지는 날도 많았다.
그중에는 드라마 '수사반장'의 또 다른 주인공들도 있었다. 김상순 배우가 맡은 '김 형사'의 모델 김봉용 경위, 조경환 배우가 열연한 '조 형사' 모델 남광현 경위였다.
김 경위는 드라마 제작을 도왔고 일손이 달리면 직접 카메라까지 둘러멨다고 했다. 남 경위는 범인을 잡으려고 호스티스에게 접근했던 일이 극적으로 각색되는 바람에 아내에게 해명하느라 고생한 사연을 들려줬다.
최 총경은 후배와 동료들을 소개해주며 취재를 도왔다. 그해 9월 29일에는 "소개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며 저녁 자리에 불렀다. 서대문의 한 한정식당이었다. 들어가 보니 최불암 선생을 비롯해 김상순, 임현식, 현석, 김용건 등 중견 배우들이 자리했다.

2009년 '반장네 가족' 모임 당시 최불암 선생과 최중락 총경 등 '반장네 가족' 멤버들 모습 =이수영 기자.
최 총경이 이끄는 '반장네 식구들' 모임이었다. 드라마가 끝난 지 20년이 지났는데도 배우와 제작진, 형사들은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었다.
최불암 선생은 딸 또래였던 기자에게 직접 술 한 잔을 채워줬다. 실제 형사들을 찾아다니는 연재 이야기를 들어주고 격려해준 자리였다. 선생은 '수사반장'에 유독 공을 많이 들였다고 했다. 처음 만드는 수사극이라는 사명감이 컸고, 실제 사건처럼 보여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다고 했다.
"드라마가 인기를 끌자 수배 중이던 범인들이 '박 반장'인 제게 자수를 하는 놀라운 일도 생겼지요."
그 자리에는 경찰청 형사과 임형찬 수사관도 있었다. 최 총경의 직속 후배로, 매일 새벽 출근하는 그를 보좌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최 총경을 두고 수사에 대한 열정은 어떤 현직 형사도 따라가기 어려운 선배라고 했다.
화면 속 박 반장과 그 모델이 된 형사, 그를 보며 수사를 배운 후배가 한 상에 앉아 있었다. 그날 기사에도 이 세 사람의 만남을 비중 있게 썼다.
연재를 하면서 형사들에게 물었던 질문 가운데 하나는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었다. 대단한 검거 실적을 기대했는데 꼭 그런 답만 돌아오지는 않았다.
김동화 경감은 1년을 쫓고도 풀지 못한 살인사건을 꺼냈다. 수천 건의 사건을 다뤘지만 그 일은 죽는 날까지 못 잊을 것이라고 했다. 감식관들은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에서 끝내 신원을 확인하지 못한 희생자들을 기억했다. 범인을 잡은 이야기 끝에 피해자와 유족에게 미안하다는 말이 따라붙었다.
자신이 수갑을 채웠던 사람들을 걱정하는 형사들도 있었다. 이양구 경감은 만삭의 몸으로 도둑질에 나선 여성에게 아기용품을 마련해줬다. 양기석 경감은 가난한 소년범들을 잡아들이며 눈물을 흘렸고, 은퇴한 뒤에는 어려운 청소년들을 후원했다.
수사반장의 인간미가 어디서 왔는지 짐작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최불암 선생은 그런 형사들의 모습을 연기했고, 현장의 형사들은 박 반장을 보며 자기 일을 한 번 더 돌아봤다. 드라마와 실제 수사현장 사이에는 그렇게 서로 주고받은 영향이 있었다.
취재 당시에도 이들은 자주 후배들을 이야기했다. 직접 쓴 두툼한 수사기법서를 건네는 이가 있었고, 해결되지 않은 사건 때문에 후배들의 연락을 기다리는 이도 있었다.
은퇴했다고 수사까지 그만둔 것은 아니었다. 최 총경은 병원에 입원해서도 언제 다시 사무실에 나갈 수 있을지를 먼저 말했다.
17년 전 기사에 남은 그들은 여전히 바빴다. 범인을 쫓았고, 못 잡은 범인을 기억했고, 후배들이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랐다. 최불암 선생과 함께했던 저녁 자리에서도 결국 화제는 형사와 수사였다.
이제 선생을 떠나보낸다.
오랜 취재 기록을 다시 읽고 나니 '영원한 수사반장'이라는 말이 전보다 무겁게 들린다. 한 배우의 대표작을 기리는 호칭에 그치기에는 그 이름과 연결된 사람이 너무 많다.
오늘도 현장에는 수사반장들이 있다. 선배들에게 배운 수사로 범인을 쫓고, 풀리지 않는 사건 때문에 잠을 설치는 형사들이다. 선생이 연기했던 박 반장의 몫도 그들에게 남았다.
수사반장은 멈추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