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붕괴 사고가 발생한 경기도 광명시 신안산선 지하터널 공사 현장. © 연합뉴스
[프라임경제] 건설업계가 올해 국정감사에 있어 어느 때보다 날 선 검증대에 오를 모양새다. 최근 수년간 반복된 산업재해가 업계 주요 화두로 거론되면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 '실효성 논란'이 핵심 쟁점으로 대두됐기 때문이다.
건설업계는 2022년 1월 중처법 시행을 앞두고, 말 그대로 '비상 체제'였다.
"자칫 오너가 또는 CEO가 감옥에 간다"라는 경고성 문구가 재계 전반을 위협하자 크고 작은 건설사들 모두 앞 다퉈 안전관리 전담조직을 신설하거나 임원 직속으로 격상했다. 안전관리비도 최대 40% 가까이 늘리고, 최고경영자가 직접 공사 현장을 찾아 안전 점검을 펼치는 등 '안전 총력전'이 펼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중처법 시행 전후 몇 달은 업계 전반이 전시체제였다"라며 "모든 임직원이 '안전이 곧 기업 생존'이라는 위기감을 느낄 정도"라고 회상했다.
하지만 시행 3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경각심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처벌 칼날이 실제 최고경영자에게 닿지 않으며, 현장에서는 "법이 있어도 처벌은 없다"라는 인식이 퍼졌다. 사고가 발생해도 대부분 실무선에서 책임이 종결되고, 당초 법이 겨냥한 '경영책임자' 처벌은 극히 제한적이다. 결국 법은 존재하지만 작동하지 않는 '사문화된 제도'로 전락한 것이다.
나아가 최근 주요 대형 건설사에서 잇따라 사망사고가 이어지며 "중처법 무력화가 사고 재발 직접적 요인"이라는 비판이 현실로 드러났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건설업 산재 사망자는 △2022년 428명 △2023년 413명 △2024년 397명으로 완만히 줄었지만, 올해에는 8월 기준 이미 300명을 넘어섰다.
관련 업계에서는 산재 사망자 감소세 둔화 배경에 대해 '법의 실효성 상실과 현장 경각심 약화'를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다. 특히 '법의 실효성 상실'은 산업 구조 고질병과 맞물려 사고를 되풀이하게 만들고 있다. 명목상 안전조직을 유지하고 있지만, 실제 공사 수행은 여전히 하도급 또는 재하도급에 의존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시행 초기엔 모두가 법을 두려워했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차피 CEO는 안 잡힌다'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라며 "어느 순간부터 관리 긴장도가 무뎌지자 다시 원가절감이 안전보다 앞서기 시작했다"라고 지적했다.
물론 건설 현장 사고는 국정감사 단골 과제다. 특히 국토교통위원회와 환경노동위원회는 매년 △안전관리비 집행 불투명 △하도급 구조의 안전공백 △형식적 교육 실태 등을 지적하고 있지만, 실질적 변화는 없었다.
하지만 올해 국감은 이전과 달리 '법의 사문화가 부른 참사'를 공식적으로 다루는 첫 무대로 기대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위원회에서는 잇따른 건설현장 사망사고와 관련해 이해욱 DL그룹 회장을 포함해 △대우건설(김보현 대표) △롯데건설(박현철 대표) △포스코이앤씨(송치영 사장) △현대건설(이한우 대표) △현대엔지니어링(주우정 대표) △GS건설(허윤홍 대표) △HDC현대산업개발(정경구 대표)를 증인으로 채택했다.
시공능력평가 상위 10대 건설사 중 삼성물산과 SK에코플랜트를 제외한 8개사 CEO가 국감 증인으로 대거 소환되는 셈. 단순 보고를 넘어 "경영책임자가 실제로 안전을 관리했는가"를 따지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다만 단순 사고에 대한 징계에 그치지 않고 '사문화된 법을 되살리고 구조적 개혁을 논의하는 전환점으로 삼아야 한다'라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중처법이 제 기능을 잃은 지금, 처벌 중심 대응에서 예방 중심 체계로의 전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건설업계가 직면한 과제는 단순 사고 반복이 아니다"라며 "사문화된 법을 되살리고, 무너진 경각심을 다시 세우는 원년이 돼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그렇지 않으면 내년에도 우리는 같은 통계, 같은 사고, 같은 국감을 반복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