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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거짓말' 했던 이용섭 시장…'TNT 포기' 피눈물로 택한 '병상연대'

[코로나 이긴 달빛동맹, 취재후일담 ①] 작지 않은 희생 숨긴 언론대응…정치적 계산 없는 희생 감동

임혜현·김화평 기자 | tea@·khp@newsprime.co.kr | 2020.03.12 13:15:13

[프라임경제] 달빛동맹(달구벌·빛고을의 명칭을 따 만든 단어로, 대구광역시와 광주광역시간 교류와 우의를 상징)이 결국 결실을 맺었다.

11일, 광주시 공보실 측은 조심스럽게 대구에서 이 지역에 와 코로나19 관련 요양 및 치료를 받은 대구 A씨 가족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놨다. 광주 빛고을 전남대병원에서 퇴원한 대구 확진자 가족 4명이 대구로 귀가했으며, 잘 도착하자마자 무사 귀가를 알렸다는 내용이다.

광주공동체가 대구 지역 경증 확진자를 광주에서 받아치료하겠다는 내용의 특별담화문을 발표한 지 11일, 이들 A씨 가족이 전남대병원에 입원한 이래 8일 만에 나온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A씨는 "병원에 있는 동안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분들께서 방호복을 입고 힘들게 일하시면서도 우리 아이들에게 해준 따뜻한 말 한 마디는 저희에게 큰 힘이 됐다"는 등 여러 이야기를 편지에 눌러 담았다. 이용섭 광주광역시장도 이 편지에 즉각 화답 및 축하 편지를 써 보냈다.

우리 지역 병상은 지역 주민들을 위해 활용해야 한다는 이기주의가 팽배하기 쉬운 전염병 사태 와중, 광주공동체는 다른 지역 환자들을 위해 치료 기회와 자리를 나눠주겠다는 '병상연대'를 선언했다. 

이 시장은 바로 그 병상연대 발표와 운영 전면에 나선 인물. 그는 달빛동맹의 파트너이자, 이번 코로나19 창궐 상황 속에서 특히 고통받고 있는 대구 측 고통을 다독이고자 십분 노력했다.

그는 특히 대구·경북권 유력 매체에 기고문을 직접 써서 행여나 부담을 느낄 수 있는 대구 지역 주민들의 마음을 다독였다.

그는 B신문에 실은 기고문에서 "달구벌 대구와 빛고을 광주 간 달빛동맹은 더욱 견고해졌고, 영호남의 화합과 통합 없이 국가균형발전도 어렵다는 메시지는 더욱 명확해졌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특히 "병상연대의 시작이었던 광주공동체의 결단에 많은 분들이 박수를 보내주셨고 한편으로는 의아해하시는 분들도 계셨다. 광주와 대구는 물리적 거리는 물론 정치적으로도 결코 가까운 사이가 아니다. 더구나 지자체마다 확진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이었고, 광주도 집단감염이라는 최악의 사태까지 대비를 해야 하는 실정에서 병상연대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그럼에도) 이런 결정을 하게 된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하나는 코로나19 사태는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닌 국가적 재난이므로 지역간 경계를 뛰어 넘어 모든 국가적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는 판단"이었다고 짚었다.

아울러 "또 하나는 1980년 5월 독재정권의 탄압 속에 고립되었던 광주에 국내외 수많은 분들이 뜻을 함께 해주셨고, 연대의 손길을 내밀어 주셨다. 40년이 지난 지금 코로나19와 맞서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대구에 연대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 나눔과 연대의 광주정신을 실천하는 것이고 광주가 가야할 길"이라고 말했다.  

이용섭 광주광역시장이 11일 오전 남구 빛고을전남대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퇴원하는 코로나19 대구 확진자 가족들에게 꽃다발을 전하고 있다. ⓒ 광주광역시

시장은 따뜻한 기고문, 국장급들은 홍보 배제 '드라이한 진행'

그의 이런 마음씀씀이는 박향 광주광역시 자치행정국장 등 여러 공직자들이 '드라이'한 상황 설명으로 언론 취재에 차분히 설명한 것과 어우러지면서, 그 효과가 커졌다. 언론이 자칫 광주 사람들의 유사시 몫을 대구에서 와서 차지한다는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을 미리 불식시키고, 정확한 광주 측 희생 분담의 상황을 설명해 광주가 공치사에 열을 올린다는 느낌도 최대한 지우려 노력했다.

본지는 박 국장을 상대로 취재한 바 있다. 병상연대 발표 직후 시점으로, 상황이 정치적 홍보 목적을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거나, 혹은 광주 시민들의 보건 관리 시스템에 자칫 부담이 걸리지 않는지 검증취재를 진행한 것이다.

"빛고을전남대병원과 시립제2요양병원 2곳, 감염병 전담병원 지정한 상태, 105명까지 수용 가능하다. 그 중 60병상을 대구 지역 환자 치료하는 데 쓰겠다고 했는데, 경우에 따라 더 늘릴 계획도 있는가?"라는 질문에 박 실장은 "60병상을 맥시멈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불필요하게 정치적인 홍보 효과를 배제하려는 뉘앙스였다. 아울러 "우리 지역에도 가능성이 있을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시장님께서는 한 50%정도로 생각하신 것"이라고 말해, 광주 주민의 권익과 건강 보호 문제를 소홀히 하지 않을 것임도 분명히 했다. 

희생양이나 비판의 대상을 찾는 일 대신, 의연히 국민과 주민 권익을 확인하는 대처 방침이 인터뷰 중 확인된 점도 의미있었다. 

"광주는 인구 대비 신천지 성도수 가장 많아 추가 환자 발생여지가 있다. 이에 대한 대비는 잘 되고 있는가(허점이 없겠는가?)"라는 질문에 박 국장은 "신천지 관련해서는 대구의 경우 어딘가 소스가 명확하진 않지만, 우한과 연관이 있다고 본다. 예배가 자기 지역별로 열리는데, 그날 예배도 대구 자체 예배였다.  그런데 우리 광주에 사는 사람이 11명이 갔던 것이다. 직접 접촉의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광주는 확진자 발생률이 낮다. 양성으로 나온 사람이 대부분 대구 다녀온 사람들이다. 신천지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시점에 대구를 다녀왔기 때문(강조는 취재기자)"라고 강조했다. 신천지를 악의 축처럼 묘사하고, 책임을 100% 넘기려는 일부 사회의 희생양 찾기 분위기에도 경종을 울린 셈이다.

이렇게 약자를 보호하고 연대의 손길을 내미는 이 시장 등 광주 공직자들의 태도는 주목할 만한 것이다. 다만 광주에 1980년 5월 가해진 신군부 측의 탄압에 전국 각지에서 손길을 내밀어준 것을 이제 보답한다는 식의 설명은 '하얀 거짓말'에 해당한다.

광주항쟁이 당시 전남도청 건물을 진압군에게 뺏기는 것으로 끝난 뒤에도 상당히 오랫동안, 연구자들 사이에는 의문이 존재했다. 왜 상황의 우열을 일시에 뒤집을 수 있는 무기인 '도청 지하 다량의 TNT'를 그대로 '사용 포기'한 채로 시민군은 일방적으로 화력이 밀리는 대결 끝에 다수 희생을 냈는가?

버림받았던 광주, TNT 포기의 마음으로 다시 결단한 병상연대

마지막 '도청 사수대' 희생자 중 하나인 고 문용동 전도사는 희생 며칠 전 잠시 만난 누이에게 "도청 지하에 수류탄 총기류 TNT가 많은데 TNT가 폭발하면 도청 반경 5㎞까지 파괴된다. 뇌관을 분리해 따로 보관하고 있지만, 나는 신학도로 주님 종의 양심으로, 이 위험한 폭발물을 방치하고 도저히 떠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언덕 아래 바리케이트가 쳐 있고, 그 너머 '무정부상태'의 광주가 있다"는 표현이 엄연히 르포라는 형식을 타고 '조선일보' 등 유력 매체들을 장식하며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던 때였다.

대학생이나 외부 시민들 중 몇명이나 어렵사리 저 바리케이트를 뚫고 무정부상태의 광주에 잠입해 들어와 도움과 힘이 됐는가? 오히려 외부에서 유입된 인원이 있다면, 이후 일각에서 주장하듯 '북한 전투 부대가 잠입해 폭력 투쟁으로 상황을 오도했다'는 의혹에 말려들기 십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흐름 어디에 뜻을 같이 한 과정이 있고 연대가 있었는가 우리 사회의 모습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그 뒤, 30여년만에 광주는 오히려 다른 지역 사람들의 고통에 병상연대라는 새로운 연대를 제의했다. 

TNT를 포기하고 떳떳한 수단만으로 항쟁한다는 마음으로 패배했던 이후, 광주는 오랫동안 고통과 박해의 시간을 보냈다. 좋은 일을 하겠다고 나서는 마음은 잃지 않았으나, 그러면서도 자랑이나 한다는 질시를 먼저 알아서 걱정하며 움츠릴 만큼 깊은 상흔을 입기 충분한 시간이었던 것으로 우리는 짐작한다. 그 크기를 잠시 코로나19 병상연대만을 취재한 기자들로서는 짐작 이상의 단어로, 아는 척 말하기 어렵다.

드라이하게 '그냥 무리없는 선에서만 병상 나눠 줄 거야'라고 답할 수밖에 없는 광주 공무원들의 사정을, 외로웠던 광주항쟁 당시의 고통을 '그때의 연대가 고마워 이제 보답한다'는 하얀 거짓말로 포장할 수밖에 없었던 이용섭 시장의 마음을 병상연대의 미덕이 한 가족을 건강히 대구로 돌려보낸 이후에야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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