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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美 항균비누 조치는 공부할 국가 책임, 가습기 살균제는?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6.11.15 17:47:06

[프라임경제] 15일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해 폐질환으로 사망한 사건의 피해자들에게 제조업체가 배상을 해야 한다는 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다만 이 판결은 극히 일부 업체에 대해서만 명시적으로 다룬 것이다.

세간의 지탄 대상으로 공적이 됐던 옥시 등 일부 업체는 처음에 함께 피소되긴 했지만 중간에 조정 합의를 거치면서 판결 대상에서는 제외됐다. 때문에 앞으로 진행될 소송들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입증 과정 등이 한층 더 치열하게 전개됐으면 좋았을 텐데 그 기회를 일부 잃은 소송이었다는 말이 나온다.

가장 시선을 모으는 부분은 국가 책임에 대해서는 기각 판단이 내려졌다는 대목이다. 이날 판결을 내린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0부)는 증거 자료가 불충분하다는 완곡한 표현을 사용했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국가의 주의의무 위반으로 이 문제를 볼 수 있는가의 책임 인정 여부였다.

이미 지난해 1월 높은 벽이 드러난 바 있다. 당시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3부)는 "국가가 가습기 살균제에 유독성 화학물질이 포함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국가가 가습기 살균제 관리에 대한 주의의무를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동의어반복 같지만 다시 말하자면, 공산품은 기업의 자율적 안전관리 대상이고, 국가의 확인에 '의무'가 있다 보기 어렵다는 논리가 법원에 받아들여진 것이다.

그렇다면 공산품의 관리에 안전을 기대하는 것은 과연 언감생심에 불과한 것일까? 거기에는 단지 시장 유통의 감독만 이뤄질 뿐 소비자 권익 보호라는 요소는 끼여들 부분이 없는 것일까?

물론 당대의 과학적 지식과 행정적 주의 의무로 이런 무궁무진한 책임 추궁 시도를 제어하고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기본적인 고심에는 수긍이 간다. 그러나 현재 일어나는 여러 문제와 논란, 독극물에 해당할 수도 있는 제품이 당국의 부주의와 적당한 일처리로 버젓하게 유통되는 상황이다. 상당히 합리적으로 의심되는 경우까지 배상 책임을 못 묻는다는 논리를 긍정할 수는 없다.

여기서 미국 행정 당국의 항균 비누에 대한 조치는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지난 9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항균 비누와 핸드·보디워시에 주로 쓰이는 화학 성분인 트리클로산과 트리클로카반 사용을 금지하기로 했다.

또 FDA는 이러한 금지 성분이 든 항균 비누가 일반 비누보다 질병 방지에 효과 있다는 증거가 없으며, 오히려 건강에 해를 끼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들 성분이 비누에 균이 생기지 못하게 하는 것이지, 손에 묻은 균을 제거하거나 균이 생기는 것을 억제해주는 후속효과를 가졌다는 오해를 상품으로 파는 항균 비누 마케팅은 이로써 역사의 뒤안길에 묻히게 됐다고 할 수 있다.

모르는 것, 혹은 오판한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이에 따른 피해는 과학의 발전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불가피한 희생이자 행정의 적극성에 내재된 어쩔 수 없는 기회비용이다. 하지만 모르는 것을 어중간하게 처리하려는 태도나, 주의를 기울이면 더 알아낼 수도 있는 것을 복지부동으로 처리하는 것은 이와 동급의 면죄부를 줄 수 없다.

미국의 항균 비누 에피소드는 국가의 배상책임이란, 곧 행정 당국이 공부할 책임, 끊임없이 연구하면서 배우고 관련 업체와 협력하면서도 의심을 거두지 않을 책임과 같은 표현이라는 점을 잘 드러내준다.

우리나라의 이번 가습기 살균제 문제에서의 국가 면책 판결도, 그런 점에서 100% 수긍하지 못하는 이들이 없게끔 향후 최종 확정 때까지 치열한 검토와 검증이 이뤄졌으면 한다. 공무원들에게는 잔인한 일이겠으나 행정 당국 전체의 명예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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