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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재단사의 꿈' 짓밟은 어느 귀족 행보

 

전훈식 기자 | chs@newsprime.co.kr | 2016.07.22 10:37:41

[프라임경제] 1970년 11월 피복공장 한 재단사가 서울 평화시장에서 자신 몸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붙인 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요구했다.

'최소한의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던 노동자 현실을 고발한 이는 바로 노동운동가 전태일(당시 22세)이다. 당시 전태일이 외쳤던 개선 요구사항은 △하루 근무시간 10~12시간으로 단축 △1개월 휴일 2일을 매 일요일로 연장 △정확한 건강검진 △시다공 임금 하루 70~100원에서 50% 인상'이다.

이것들은 모두 착취 대상에 불과했던 노동자들에게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요구조차 갖지 못하고 있음을 대변해준다.

전태일 분신 자살사건은 국내 노동운동 앞길을 연 중요한 사건으로, 이를 계기로 모두가 자극을 받아 1970년대에만 전국 2500여개에 달하는 노조가 만들어졌다. 사회적으로도 노동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노동자 스스로 자신 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에 나서도록 분위기가 조성됐다.

이후 시간이 흐른 지금, 어느 노조는 회사를 상대로 △기본급 7.2% 인상 △전년도 순이익 30% 성과급 지급 △승진 거부권 △해고자 복직 △주간연속 2교대제에 따른 임금 보전 등 요구안을 내놓고 '파업'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이 바로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자랑하는 현대차노동조합(이하 현대차노조)다.

이번 현대차 파업을 두고 금속노조에 동참하고자 일정을 맞추기 위한 '기획파업'이라는 말이 끊이지 않는다. 애당초 협상보단 파업을 염두에 두고 '명분 쌓기'에 주력했으며, 더욱이 협상 결렬 선언 시기와 이후 과정이 시나리오에 따라 움직였다는 논란까지 일고 있다.

여기에 23년 만에 이뤄진 현대중공업노조와의 공동 파업 역시 명분을 만들기 위한 '억지'에 불과하다는 곱지 않은 시선까지…. 그나마 현대중공업노조의 경우 '대규모 구조조정'을 피하기 위한 몸부림이라 여길 수 있지만, 현대차노조는 기득권 유지를 위한 '투정'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는 얘기다. 

물론 노조 파업은 기업에 대해 열악한 노동환경을 더 나은 환경으로 바꿔달라는 일종의 '쟁의행위(爭議行爲)'로, 결코 불법행위가 아니다. 실제 노동환경이 열악했던 1980년대 현대차노조 설립(1987년)과 그들의 운동은 국내 노동자를 대변한다는 점에서 많은 지지를 받아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 이들의 행보는 일반적인 노동자를 위한 운동이 아닌,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챙기기 위해 일반 상식을 벗어난 '행패'로 치닫고 있다. 하물며 원청업체가 임금 인상을 자제하면 2·3차 협력업체에 더 많은 청년들이 취업할 수 있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청년 취업 희망을 뺏는 이기적인 행동으로 비친다.

사리사욕에 치우친 현대차노조는 이들에게 붙여진 '귀족'이라는 명칭조차 아까울 정도로 '노동운동가 전태일'은 물론, 현재를 살아가는 '제2 전태일의 꿈'마저도 짓밟는 셈이다.

이미 여론이 등 돌린 현대차노조가 앞으로도 전체를 보지 않고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좇는다면, 현대차뿐만 아니라 본인들의 미래조차 없을 것이다. 우선 바닥까지 떨어진 신뢰를 되찾고, 향후 '노동운동의 정당성'을 재인식해야 한다. 그것이 전태일이 갈망하던 노조의 본질이며, 현대차노조가 살아남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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