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세밑 추위가 절정에 달한 30일 새벽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의 산증인으로 꼽히는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별세했다. 향년 64세. 그의 주된 사망원인은 과거 가혹한 고문 후유증으로 빚어진 파킨슨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상임고문의 별세소식와 함께 ‘고문’이라는 단어는 역사 속 어둠으로 사라질뻔한 한 인물의 이름 석자를 고스란히 떠올리게 했다. 일명 ‘고문 기술자’라고 불렸던 이근안 전 경감, 아니, 현재는 이근안 목사다.
기자는 지난해 2월 서울 모처에서 직접 만난 적이 있다. 당시 모 시사주간지 사회부 소속이었던 기자는 이 전 경감과의 인터뷰를 2주에 걸쳐 단독으로 게재한 바 있다. 김 상임고문의 별세 소식이 전해진 직후 인터넷을 뒤덮은 “그 당시 고문은 애국이자 예술”이라는 발언은 기자의 취재수첩에 고스란히 담겼던 내용 중 일부다.
당시 이 전 경감은 기자와 만나 세간에 알려진 고문 기술들은 모두 날조된 것이며 본인은 그런식의 가혹행위를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특히 김 상임고문이 당했다는 ‘전기고문’은 손가락만한 AA사이즈 건전지 두 개로 겁만 줬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30일 종무식을 앞두고 출근을 하는 내내 수많은 선후배 기자들의 전화를 받았다. 이 전 경감의 근황을 묻는 질문부터 취재당시 심경(?) 등의 질문이 쏟아졌다. ‘희대의 냉혈한’을 만난 소감이 어떠냐는 다소 버라이어티 쇼 같은 질문부터 기사체가 왜 그렇게 담담했냐는 선배의 핀잔도 있었다.
당시 이근안 전 경감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상당한 혼란을 느꼈다. 알려진 사실과 그의 입을 통해 내가 전해야할 내용은 상당히, 아니 완전히 정반대라고 해야 맞았다. 그에게 고문을 당했다는 민주화운동 인사들과 그들을 심문한 이 전 경감 양측 모두가 ‘시대의 피해자’라고 주장했으니 말이다.
당시 이근안 전 경감은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평생을 ‘고문기술자’라 손가락질 받으며 숨어 살았지만 지금 당장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똑같이 일할 것이다. 당시 시대 상황에서는 ‘애국’이었으니까. 애국은 남에게 미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 전 경감에 따르면 그간 여러 고문피해자들의 증언은 그가 기자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밝힌 당시 상황과 정반대다. 과연 누구의 입이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당시 기자를 혼란스럽게 한 것은 바로 그 질문이었다.
군사정권 시절 빨갱이로 몰렸던 이들은 DJ정권 이후 민주투사로 이름을 올렸지만 대부분 극심한 후유증에 시달리다 생을 마감하거나 여전히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한편 이른바 ‘빨갱이’를 잡아들이던 경찰관은 17년간 도피와 수감생활을 거치고 ‘고문기술자’ 주홍글씨를 가슴에 단 죄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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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삼가고인의 명복을 빈다. 그리고 이처럼 불행한 역사의 악연이 다시는 우리나라에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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