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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나경원이 찬성표 던졌다니? 총리대신 김홍집 데자뷰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1.11.23 12:58:47

[프라임경제] 1896년 2월11일 총리대신 김홍집이 성난 군중들에게 목숨을 잃었다.

김홍집은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했다(아관파천)는 소식에 서둘러 경복궁으로 향했다. 친일내각이 일거에 무너지고 친로파가 득세하는 하루아침에 정국이 변한 때이다.

김홍집이 살고자 하면 살 길은 없지 않았다. 일본은 정세가 급변하자 그를 보호하려 하였으나, "나는 총리대신이다. 조선인에게 죽는 것은 떳떳한 하늘의 천명이지만 다른 나라 사람에게 구출된다는 것은 짐승과 같다"고 일갈하고, 경복궁으로 입궐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성난 군중들을 만났다.

그는 일본의 지원으로 세 차례 내각을 조직한 친일파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일본을 이용해 개화를 하려는 인사였기 때문에 ‘친일파’에 방점을 찍는 것보다는 ‘개화파’로 평가하는 게 타당하다는 분석도 만만찮다. 다만 을미왜변(명성황후 암살 사건)으로 친일이라는 카테고리가 붙는 내각이 민심을 얻기 어려운 정치적 지형이었던 데다, 고종의 이중적 정치행보로 책임을 덮어썼다고 볼 여지도 없지 않다.

당시 아관파천을 급히 진행하면서, 갑오개혁을 주도하던 김홍집을 역적으로 규정해 버린 일은 스트레스 해소 대상이 필요했던 대중 앞에 그를 던져준 것이나 다름없는 결과를 낳았다.

김홍집의 행보에 일점의 오류나 과오도 없었던 것은 아니겠지만, ‘매천야록’의 저자 황현은 “나랏일에 마음을 다 했다”고 김홍집을 평가했다. 김홍집 내각이 더 지속됐다면 일본에 허망히 나라를 잃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탄식하기도 했다. 역사가 이덕일은 급진개화파 김옥균이나 온건개화파 김홍집 등을 일본을 역할모델로 삼아 부국강병을 도모하려던 애국적 친일파로, 을사오적류를 매국적 친일파로 분류하기도 했다. 김옥균·김홍집을 모두 제거한 고종에게 남은 것은 매국적 친일파뿐이었다는 것이다.

22일에 국회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문제가 진통 끝에 처리됐다. 그리고 일부에서는 한미FTA 비준안이 본회의를 통과한 데 찬성표를 던진 정치인들의 명단을 돌리고 있다 한다.

그런데 문제는 서울시장 선거에 나서느라 이미 금배지를 뗀 나경원 전 의원이 이 찬성표 의원 명단에 거론되는 등 난데없는 역풍을 맞는 등 상황이 이상과열 되고 있다는 데 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치에 닿지 않는 일임에도, 트위터리안들은 ‘이 명단을 믿고 싶었는지’ 누가 대신 눌러 준 것이냐는 등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쯤 되면 ‘(그저) 나경원이니까 깐다’는 지경이라고 비판 못할 바가 아니다.

이 비준안이 역사의 심판을 받거나, 혹은 찬성표를 던진 이들이 당장 국민들로부터 질타의 대상이 되는 게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어떤 공인이 특히 정치인이 어떤 일을 할 때 당연히 국민의 반응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고, 또 당연히 어떤 일을 해야 할 때 혹은 어느 오해를 살 적에 이를 하지 않는 부작위 문제나 문제를 방치하는 행보도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심하면, 어떤 작위 내지 부작위로 인해 갑남을녀로서는 참기 어려운 인격적으로 극심한 비판도 겸허히 수용하여야 하며, 때로 맞아죽는 상황도 감수하여야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잘못된 명단으로 멀쩡한 ‘백조 정치인’을 국회의원으로 조리돌림하는 상황은 절대로 타당하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김홍집을 사실상 죽이라(죽이고 스트레스를 풀자)고 김홍집을 군중에 내준 고종이나,

   
 
흥분 상황에서 김홍집에 필요 이상의 짐을 지워 난도질해 책임을 물은 군중의 행동을 생각해 보게 된다.

‘백조 나경원’을 FTA역적으로 정의하는 심리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 어떤 국가적 중대사도 밀어붙여 통과시키면 그만이라는 류의 한나라당 정치철학을 극복하기 어렵다. 김홍집을 때려죽이고 나중에 그래도 그 놈이 명관이었다는 식으로 탄식하며 되돌아보고 문제를 고치며 살기에는, 한국이 어울려 살아갈 국제사회는 비정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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