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스캘퍼에 제공된 전용선의 경우 주문 속도 면에서는 일반선과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전용선 제공 여부는 증권사가 알아서 정하면 되는 것이었다.”
지난 20일 한국거래소 황성윤 유가증권시장 본부장보가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한 말 중 일부다.
지난 3월 검찰 수사 과정에서 불거진 ‘ELW(주식워런트증권) 사건’에 대해 한국거래소가 내놓은 유권해석에 일반투자자, 이른바 ‘개미’들이 분개하고 있다.
주문속도가 수익률에 직결되는 ELW 시장에서 일부 스캘퍼(초단타 투자자)에게 내부 전산망과 서버, 빠른 시세정보를 제공해 수천억원을 벌어다주고 뇌물까지 챙긴 증권사들을 관리자인 한국거래소가 나서 ‘변호’해준 셈이기 때문이다. 이는 검찰이 일련의 특혜를 불법으로 결론내린 것과 정면으로 부딪친 것이기도 하다.
20일 국감장에서 이사철 한나라당 의원은 “ELW 거래량이 늘면서 거래소는 지난 4년 동안 765억원의 수익을 더 올렸다”며 “증권사가 알아서 하라는 것은 감독을 안 하겠다는 뜻이냐”고 질책했다.
앞서 검찰은 스캘퍼 5개 조직 18명을 기소하고 이 중 2명을 구속기소했다. 이들로부터 금품을 받았거나 시세조정에 가담한 증권사 직원 5명이 기소됐고 역시 2명은 구속 기소됐다.
또 전용선을 제공한 총 12개 증권사(삼성·우리투자·KTB·이트레이드·HMC·대신·신한금융투자·LIG·현대·한맥·대우·유진) 대표이사와 전산담당 임원 25명이 불구속 기소됐다.
이사철 의원에 따르면 현대증권은 스캘퍼의 ‘활약’에 힘입어 시장점유율이 9위에서 2위로 껑충 뛰어올랐고 13억원의 수수료도 챙겼다.
이 의원은 “전용선이 특혜가 아니라면 스캘퍼들이 증권사 직원들에게 왜 수억원을 줬겠느냐”고도 꼬집었다.
한때 증권가에는 ‘ELW+스캘퍼+증권사=개미들의 무덤’이라는 공식이 떠돌곤 했다. 검찰에 따르면 2009년 ELW 시장에서 스캘퍼는 1043억원을 챙겼고 증권사는 2134억원을 벌어들였다. 반면 ‘개미’들은 6360억원을 날렸다.
시장 투자자의 99%가 ‘개미’지만 이들 중 90%는 본전조차 까먹고 있다. “공정한 시장은 먼 나라 얘기”라는 게 개미들의 하소연이다. 그러나 이 같은 아우성에도 한국거래소는 침묵하거나 오히려 증권사 편을 들었다.
물론 거래소가 마냥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건이 커지자 금융감독원과 한국거래소는 지난 7월 특정 스캘퍼가 전용회선을 독점할 수 없도록 하는 등의 차별 금지 규정을 마련했다.
그러나 거래소는 ELW 투자자가 비용과 이용조건을 선택하게 해 사실상 차별을 합법화했다. 사실상 ELW 투자의 ‘속도전’을 인정한 셈이다.
초단타 투자를 뜻하는 ‘스캘핑(scalping)’의 어원은 북미 인디언들이 적의 시체에서 머리 가죽을 벗겨 전리품으로 챙기던 행위에서 비롯됐다. 스캘퍼(scalper)는 바로 사람 머리 가죽 벗기듯 ‘박리다매’ 이윤을 챙기는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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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당국이 뒤늦게나마 제재의 칼날을 세운 것은 그나마 다행스럽다. 그러나 시장 질서를 바로 세워야 할 거래소가 국감 현장에서 ‘문제가 없다’며 개미무덤의 봉분만 다져준 꼴은 씁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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