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괜찮은 회사 찾았다 싶어 지원서를 넣었더니 남들도 다 원하는 회사라 경쟁이 심하고, 눈높이를 낮춰 중소기업에 들어갔더니 턱 없이 낮은 월급 때문에 이내 실업자로 되돌아가는 현실. 극심한 취업난 속에서 분투하는 요즘 젊은이들 모습이다.
잘 나간다는 드라마들은 취업 걱정 없고 얼굴도 잘 생긴, 성격까지 좋은 재벌 2세들의 연애담을 늘어놓기 바쁘다.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줌과 동시에 경영권 승계의 정당성에 대한 문제는 슬그머니 덮어버린다.
그렇지만 우리는 희망의 끈을 쉽게 놓지 않는다. 악착같이 일하다 보면 내게도 저 드라마와 같은 삶의 기회가 올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이러한 기대감을 갖게 만들어 준 기업 오너가 있었다. 바로 웅진그룹 윤석금 회장이다.
윤 회장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조그만 기업이라면 모를까 지금의 웅진은 내 자신만의 것이 아니다”라며 “자식들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있으면 경영도 그렇게 가는 것이 맞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아무리 기업 총수라도 능력 없는 사람을 2세라는 이유만으로 경영자의 자리에 앉힐 수 없다는 이런 생각은 경영권의 음서제가 당연시 여겨지는 한국 사회에서 신선한 제안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결국 ‘그 밥에 그 나물’이었다. 윤 회장의 발언과 달리 웅진가 내부의 움직임은 전혀 딴판이었다.
우선, 웅진케미칼은 윤석금 회장의 장남인 윤형덕씨와 차남 새봄씨가 지난 4월21일과 22일에 걸쳐 장내매수로 15만주와 28만주를 취득했다고 지난 25일 공시했다. 이에 따라 이들은 웅진케미칼 보통주 233만주(0.49%)를 보유, 개인 최대주주인 윤석금 회장(4097만주, 8.64%)의 뒤를 이어 개인 2대주주 자리에 올랐다.
또한 웅진그룹의 지주회사인 웅진홀딩스에서도 윤석금 회장(72.92%)에 이어 형덕(2.10%)씨와 새봄(1.70%)씨가 각각 개인 2·3대 주주자리를 확보하고 있다. 형덕씨는 지난 2008년 9월 웅진코웨이 영업본부에 대리로 입사해 2009년 과장(신상품팀장), 2010년 차장(경영전략팀장)을 거쳐 지난 2월 부장(경영기획실장)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새봄씨는 2009년 6월 웅진씽크빅 기획팀에 입사한 이후 전략기획팀에서 근무하다 2010년 9월 웅진케미칼 경영관리팀(과장)으로 자리를 옮긴 바 있다.
이에 따른 업계의 ‘웅진그룹 2세 경영 체제’ 본격화 관측은 무리가 없어 보이고 윤 회장이 밝힌 2세 대물림에 대한 원칙은 두 아들에게는 결국 예외가 됐다.
말은 화려했으되 실상은 드라마와 다르지 않은 꼴이다. 사실 새삼스러운 얘기는 아니다. 삼성·현대·SK 등 국내 굴지의 그룹의 오너들이 경영권 승계 과정을 밟을 때 빚어졌던 마찰음들은 결국 옆집에서 들려오던 소음에 그쳤고 재벌들의 경영권 승계는 갖가지 묘한 방법이 동원되어 순조롭게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왜 굳이 웅진을 가지고 트집이냐고 얘기할 수도 있겠다. 이는 어디까지나 윤 회장의 발언 때문이다.
얼마 전 공주시를 방문한 바 있다. 백제 시대 도읍인 공주의 옛 지명이 웅진이다. 공주시 유구읍 출신인 윤석금 회장은 자신의 고향의 이름을 가지고 회사명으로 만든 것이다.
산업 불모지인 고향 땅에 공장을 짓고 지역 경제 발전에 이바지했으며, 오염돼 악취가 풍기던 어릴 적 멱을 감고 고기를 잡던 실개천을 다시 고기가 돌아오게 만든 그런 인물이었다. 고향 땅 웅진, 공주에서는 윤 회장은 그 누구도 누려 보지 못한 명예의 상징으로 추앙받고 있었다.
그런 그가 자신이 쌓아 올린 명예를 스스로 허물고 있다. 그것도 자식들에게 부의 대물림을 하기 위해서….
자신의 청춘의 피와 땀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가업을 다른 사람에게 넘길 때의 꺼림칙한 심정은 충분히 헤아릴 수 있다. 그러나 사회 속의 기업인 웅진은 윤 회장 개인의 것이 아니라는 본인의 말에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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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한 표현이지만 男兒一言重千金(남아일언중천금)이라는 말을 다시 새겨볼 일이다. 윤 회장은 웅진의 가장으로서 현재 진행 중인 지분 취득 성격에 대해 확실한 해명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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