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IMF 구제금융 시대 우리 경제계의 아픔을 상징하는 일화로 회자되는 이야기 중 하나로 'LG그룹 구본무 회장의 눈물' 사건이 있다.
당시 LG는 라이벌인 삼성보다 늦게 반도체에 진출, 자웅을 겨루고 있었는데 경제 난국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던 정부는 이른바 '빅딜'을 주요 그룹에 강권했고 이때 구 회장이 청와대에까지 들어가 눈물로 읍소했지만 결국 반도체 부문을 삼성전자에 내주는 상황을 피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일화는 흔히 위기 극복을 위한 고육지책이라거나, 관치 경제의 산물로 회자되지만 결국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후속 주자'는 위기 국면에서 먹힐 수 밖에 없다는 진리를 확인시킨 사례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돌이켜 보면, LG(과거 금성)와 삼성 간에는 전자 부문의 제영역을 놓고 경쟁이 끊이지 않았다. LG그룹이나 LG전자로서는 불쾌한 지적일 수 있겠지만 이들이 초반 경쟁에서 1위 자리를 선점할 수 있었던 데에는 정부의 도움이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국산품 사용 장려를 위해 처음 선보인 구 금성전자 라디오 지원에 적극 나섰다. 시골에 라디오 보내기 운동으로 대표되는 이같은 움직임은 외국산 라디오와 품질 경쟁이 어려웠던 금성 쪽에는 상당한 도움이 됐다는 해석이 유력하다(독일학자 리스트의 유치산업 보호론의 전형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금성의 후신인 LG가 결국 정권의 말 한 마디로 공들여 키운 반도체를 넘기고 말았으니, 자체적으로 벽돌을 쌓지 못한 원죄로 권력의 바람이 어느 방향으로 부느냐에 따라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만년 2등'이라던 삼성이 어느 새 전자 부문에서 1등으로 역전한 것도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다. 삼성전자는 TV를 값싸게 사고 싶어하는 층이 분명히 존재하고 시장성도 풍부하다는 것을 간파, 1975년에 '이코노 TV'를 내놓는다. 이 무렵에 판세를 한 번 흔듦으로써 결국 나중에 삼성은 금성(이후 LG)을 따라잡는 데 성공하게 된다.
근래에 휴대폰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경쟁을 보면, 이같은 전자 영역을 둘러싼 두 그룹간 경쟁의 축소판을 보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삼성전자는 애니콜을 출시하면서 당시 모토로라나 노키아 등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었지만, '한국 지형에 강하다'는 주장을 펴며 포지셔닝에 성공했고, 이후 고객 수요를 끊임없이 진단하면서 시장을 장악해 나갔다.
그러나 LG전자 휴대폰 사업분야는 이같은 확실한 시장 설정에 실패해 '뒤따르기'에 만족해 왔다. 한때 초콜릿폰 성공으로 인해 역전의 전기를 마련하는 듯 했지만, 아레나폰과 뉴초콜릿폰의 실패로 간만에 온 기회를 다시 상쇄했다는 평이 뒤따랐다. 외국 수출 버전과 국내용이 너무 성능 차이가 난다는 하소연(아레나폰), 스마트폰 시대가 다가오던 상황에서 소비자들의 욕구는 이미 앞서 나가는데 이를 도외시하고 와이파이 기능 등을 빼고 출시해 원성을 들은 사례(뉴초콜릿폰) 등이 좋은 예라 할 것이다.
이번에는 맥스폰이 프리징 오류 등으로 불만을 사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기계가 작동 중 갑자기 멎어 버리는 프리징 오류가 이전(아레나폰)에도 이미 여러 번 제기됐다는 데 있다. 이같은 사례는 단순히 LG전자 휴대폰 사업팀이 고객 불만에 둔감하다고 해도 그만이겠지만, 지난 공업화 초기 시대에나 통하던 일단 만들면 무조건 팔린다는 '밀어내기식 생산전략'에 아직 LG가 젖어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가능한 부분이다.
결국 시장의 요구에 민감하고 자체 경쟁력이 있는 분야가 아니라면, 반도체 분야마냥 어느 한 순간 이러저러한 필요에 의해 공중분해되거나 남의 손에 넘어갈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아직 LG전자는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도 풀이할 수 있겠다. 인기 아이돌그룹 '소녀시대'를 내세워 광고 공세를 편다고 모든 게 해결된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문제가 그리 간단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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