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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강정원 국민은행장, 이해찬 배워야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0.02.23 10:57:37

[프라임경제] 참여정부에서 국무총리까지 지낸 이해찬 전 의원과 관련된 일화다. 1980년대 후반, 집에 들어와 보니 가정주부던 그의 부인이 어느 날 울고 있더란다. 백화점에 가서 당시 막 유행하기 시작한 백화점 카드를 신청했는데, 소득이 없고 사회 활동을 안 한다고 해서 거부를 당했다는 것이다. 그전까지 나름대로 서점도 꾸리고 식당도 하면서 정치인 남편을 뒷바라지한 것을 전연 인정받지 못하자 마치 제 삶을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더라는 것이다.

이 경험이 이 의원이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아직도 낮다는 판단을 하고, 이후 민법 개정 운동에 열심으로 나선 계기가 됐다는 후문이다. 모의 친권도 인정하는 등 나름대로 성과를 올린 1990년 민법 개정 등 법학계 발전은 이런 차별적 처우에 대한 반성에서 나온 것이다. 신용카드에 관한 차별 한 건이 개혁의 시발점이 된 셈이다.

근래에 신용카드와 관련, 주목할 만한 결정이 나왔다.

23일 금융업계와 요로에 따르면, 국가인권위원회는 가사 전업의 남성에게 신용카드 발급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차별행위라고 판정했다. 이에 따라 인권위는 해당 금융기관에 신용카드 발급 심사기준을 개정할 것을 권고했다.

이번 결정은 백 모 씨가 지난해 3월 “국민은행이 여성 가사전업자에게는 배우자 동의와 결제능력을 전제로 본인 명의의 신용카드를 발급하지만, 남성은 배우자가 결제능력이 있더라도 ‘주부’로 볼 수 없다”고 거절한 데 따른 것이다. 국민은행이나 우리은행 등의 경우 KB카드와 우리카드가 독립법인으로 분사돼 있지 않은 이른바 은행계 카드로, 이런 경우 인권위 권고 대상은 해당은행장이 된다.

사실 국민은행이 거절한 데에도 이유나 금융기관 나름의 고충은 전혀 없지 않다. 해당 은행은 단순 무직자와 가사전업자의 객관적 구분이 곤란한 점을 들었다고 한다. 아울러, 가사 전업을 명목으로 결제능력이 없는 남성에게 신용카드를 발급하면 경영상 수익성과 건전성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이유 등으로 남성을 가사전업자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국민은행 측 주장이었다.

그러나, 행여 이런 주장들이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고 금융기관으로서는 결제 능력의 보수적 운용 관점에서 이 같은 판단을 했다 해도, 문제가 남는다.

바로 남성의 가사 전담을 사회적으로 일반적이지 않다고 판단하고 이를 발급 거부의 사유 중 하나로 삼았음을 드러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인권위의 설시 내용대로 “가사전업자를 여성으로만 한정하는 것은 배우자 간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기인하는 측면이 크고, 여성의 경제활동이 확대되고 양 배우자 중 현재 어느 쪽에 직업과 소득이 있는지에 따라 배우자 간 역할이 바뀔 수 있다는 현실을 고려하지 못한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더욱이 일반적이지 않다 해도, 배우자의 동의와 결제능력이 확인되는 한 실제 가사 수행 여부가 신용카드 발급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판단 기준은 아니지 않은가? 결국 국민은행의 판단은 보수적인 은행권의 시각이 카드 영업에서도 녹아 들어가 빚어진 해프닝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더욱이 기자로서는 문제의 은행이 국민은행이라는 데 주목한다. 인권위가 이번 권고 결정에서 적시한 대로 ‘남성 가사전업자에 대한 신용카드 발급이 경영상 수익성, 건전성을 저해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국내 최고의 은행 일명 ‘리딩 뱅크’에 딸린 카드 부문에서 이처럼 영업의 안전 드라이브를 지향함에 있어, 안정지향을 넘어선 퇴행적 사고방식마저 비치는 관례 안주에 머무는 점은 참을 수 없다. 이런 작은 폐단이 모여 성장세가 주춤한다는 현재의 실적 성적표를 만든 것 아닐까?

백 씨가 이번 사안을 공론화하지 않고, 담배 한 대 물고 자괴감을 씹는 일로 흘려보냈다면, 국민은행 스스

   
 
   
로 일을 바로잡는 데엔 더욱 상당히 긴 시간이 추가로 걸렸을 것이다. 백 씨는 따지고 보면 국민은행에게는 문제의 키를 제공한 은인인 셈이고, 위의 일화에서 보면 이 전 의원에게 개혁 마인드를 일깨워준 촉매제인 셈이다.

마침 듣기로, 국민은행 임원들은 24일 워크숍을 진행한다고 한다. 24일 워크숍에서 이번 문제에 대해서 심도 깊은 반성이 강 행장 이하 간부들 사이에서 있었으면 한다. 강 행장이 이 전 의원처럼 작지만 중요한 목소리를 새겨듣는 인물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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