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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오세훈 서울시장은 '노무현 키드'?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09.12.12 14:50:55
[프라임경제] 진보와 보수 양진영 모두에게서 싫은 소리를 들을 일이겠지만,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오세훈 서울시장은 유사한 점이 많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대학도 못 갔지만 어지간한 명문대 출신에게도 별따기인 고시를 통과한 노 전 대통령과 비슷한 이력을 오 시장도 가졌다. 오 시장은 넉넉하지 않은 환경에서 자라 대학을 마치고 변호사가 됐다.

노 전 대통령은 '5공 청문회 명패 사건'이 보도되면서 일약 '패기있는 젊은 정치인'으로 유명세를 탔고, 오 시장 역시 '오 변호사 배 변호사'에서 선배 배금자 변호사와 함께 방송출연을 해 유명인이 됐다는 '언론이 만든 스타'로서의 공통점도 있다.

'정계의 혜성'으로 중앙정가에 진입, 이름을 남긴 점도 유사하다. 부산시장 낙선 등 변방을 떠돌았지만 개혁적이고 진솔한 이미지가 사람들의 눈에 들면서 대통령 후보, 또 대통령으로까지 떠오르는 데 성공한 노 전 대통령처럼, 오 시장 역시 '잊혀진 초선의원 출신 정치인'으로 남을 것으로 예상되다가 순식간에 시장직에 올랐다.

여기에, 오 시장이 서울시장 후보로 급부상한 배경, 즉 이전에 시장 후보로 거론되던 홍준표 의원 등으로는 당시 구 열린우리당 강금실 후보를 꺾기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한 점도 재미있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의 사람'인 강 전 법무부장관을 제거하기 위해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한 번에 젊고 인지도가 있는 인사라는 이유만으로 도약한 셈이니, 어찌 보면 수혜를 단단히 본 '노무현 키드'라고 오 시장을 평해도 무방할 듯 싶다.

하지만 이 또 하나의 변종 '노무현 키드' 오 시장이 정작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이유, 그리고 우려를 사는 이유는 따로 있는 것 같다.

'광화문의 스노보드 점프대'가 논란을 낳고 있다. 서울시가 후원하는 스노보드 '빅에어'대회를 위해 광화문에 점프대가 설치된 것을 두고 설왕설래가 진행 중인 것이다. 서울의 명소를 홍보할 기회라는 해석과 함께, 고궁이 가까운 곳에, 그것도 교통통제 등 시민의 불편을 초래하면서까지 이벤트성 행사를 허락했어야 하느냐는 비판이 맞붙는 형국이다.

이 상황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이 직접 심경 고백을 해 자신에게 쏟아지고 있는 화살에 대한 반격을 시도해 점입가경 양상이 펼쳐지고 있다. 오 시장은 10일 블로그에 글을 올려, "가장 답답한 것은 이 대회를 두고 '오세훈 시장의 선거전략' 운운하는 것"이라며 이를 "근거없는 오해"라고 일축했다. 광화문에 이 대회를 유치한 것은 한국 관광의 해를 앞두고 서울을 세계 각국에 알리기 위해 결심한 것이지 선거 득표와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오 시장은 "빅에어는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겨울스포츠대회인 데다가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서울에서 개최되는 것"이라면서 "시의 이러한 노력에 대해 일단 '(시장) 재선용'이라고 딱지를 붙여버린다. 선거가 얼마 남지 않다 보니, 이제는 도를 넘어섰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런 오 시장의 이런 공격적인 발언을 보면서, 기자는 노 전 대통령을 둘러싼 논란을 떠올렸다.

오 시장의 반대 여론에 대한 태도는 노 전 대통령의 언론이나 비판 여론에 대한 전투적 대응과 유사한 패턴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오 시장의 블로그글은 "임기 4년의 시장은, 특히 재선의 의지를 밝힌 시장은 임기 2년이나 3년까지만 일을 하고 그 다음부터는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냐"며 직격탄을 날렸다. 반대 여론에 대해 날을 세우는 게 과연 공복의 태도로 적절한가는 차치하고, 여차직하면 임기 말에 일을 안 하겠다는 태업 선언으로까지 읽힌다. "재선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답답한 심경"이라는 부분에 이르면 "대통령 못해 먹겠다"는 발언으로 반대론자들을 압박했던 노 전 대통령의 화법과 너무나도 유사해 놀랄 지경이다.

노 전 대통령은 지역정서와 정치가 연동돼 움직이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외환보유고를 쌓는 등 주목할 만한 족적을 남겼다. 국세청이나 검찰 등을 권력의 도구로 쓰던 악습의 쇠사슬을 스스로 끊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경솔하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반대 의견을 개진하는 국민들이나 이런 여론을 전달하는(혹은 일부지만 이를 침소봉대하는 나쁜 경향도 없지 않았던) 언론에 귀를 기울이는 태도를 보이지 않고 도덕적 우월감을 드러내면서 일을 밀어붙이는 경향을 자주 보였기 때문이다. 현재 각종 논란을 빚는 여러 정책을 오 시장이 강행하는 것을 보면 오 시장이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일을 벌이는지 당혹스러울 때가 종종 있다. 노 전 대통령이 민주개혁세력을 정치적 밑천 삼아 세상과 맞섰듯, 한나라당과 한나라당 지지표, 청와대(이명박 대통령은 국가브랜드위원회 보고대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오 시장의 이번 대회 유치를 격려하는 발언을 했다)를 믿고 저러는 것인가 싶기까지 하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정치 개혁 꿈이 결국 실현되지 못했듯, 오 시장 역시 비난에 직면에 있다. 문제는 또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선구자적 정치 행보'가 가져다 준 속도감과 좌충우돌을 견디지 못한 많은 이들은 이를 '아마추어리즘'으로 폄하하지 않았나? 오 시장의 정책은 노 전 대통령이 만든 혼돈의 정국보다 더 나쁘다는 혹평까지 감수해야 할 것 같다. 그나마 전자는 '실험적'이라고나 할 만 했지만, 후자는 문화재 파괴 논란 등 주로 '파괴'와 '전시행정', '치적쌓기'라는 카테고리로 분류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키드'라고 하기에도 가장 안 좋은 방향으로 풀렸나 싶다.

아니다. 그나마 수혜 문제나 스타일 문제일 뿐이지, 고인과 오 시장은 정치적 뿌리 자체는 전연 다르다. '노무현 키드'이면서도 '노무현적이지는 못한' 오 시장의 서울 시정은 그래서 외로울 수 밖에 없어 보인다.

그나마 빨리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스스로 글에 남긴 '재선을 포기하고 싶은' 상황보다 더 나빠질 수도 있다. 아마 야당 후보에게 참패하는 것은 그나마 나을까, 아예 한나라당 내의 참신하고 유력한 인사로 차기 시장 선거 후보가 순식간에 교체될 수도 있다. 흔히 그런 경우는 '포기당한다'라고 수동형으로 쓴다.

만일 지금 자기 개혁을 하지 못하고, 그 지경이 될 때까지 오 시장이 지금의 방식과 태도를 고수한다면, 아마 그는 노 전 대통령처럼 그리운 대상조차 못 된 채 그저 '잊혀진 한나라당맨'으로 역사책 한 구석에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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