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현대자동차가 일본 내 승용차 판매망의 철수를 결정했다는 소식이다. 포니1을 중남미에 수출하기 시작한 후 30여년간, 욱일승천을 거듭하던 현대차의 수출 역사에 사실상 첫 제동인 셈이다. 현대차가 일본에 법인(현대 모터 재팬) 설립 등 본격적 수출에 박차를 가한 것만도 벌써 지난 2000년, 어느새 10년 성상을 헤아리는 노력이 별 성과없이 철수라는 결과로 돌아 왔다. 가히 현대차 스스로에게만 충격이 아니라 현대차를 익히 알고 있는 국민들과 언론 모두에게 지난 주말 내내 이 비보는 화제가 되기 충분했다.
돌이켜 보면 이미 현대차의 패배는 어느 정도 불리한 지형지물에 의한 부득이한 측면이 없지 않다. 독일 등 주요 자동차 메이커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최강 자동차 부문을 보유한 일본 본토에서 돌풍을 일으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현대차로서는 길지 않은 역사에서 최대한의 노력을 통해 어느 정도 선전한 것으로 종합할 여지가 있다.
다만, 이런 본질적 열세에 부가해 남는 아쉬움은 현대차가 스스로의 뻗어나가는 사세와 능력을 지나치게 과신했는지 홍보 전략 등 몇 군데서 실책 아닌 실책을 범했다는 것이다. 현대차는 일본 내 소나타 홍보모델로 한류스타 배용준을 선택했다. 하지만 일본의 아줌마 그룹에게 인기가 높은 한류스타는 중형차 시장에서 사실상 구매 주도 파워로 연결되기 어려웠다는 지적이 뒤에 나왔다. 주부들이 장보기 마실용 소형차 시장에 세우면 폭발력이 클 모델을 엉뚱하게 중산층 이상 비지니스맨을 대상으로 할 차에 골랐다는 것이다.
이처럼, 필연적인 전력 열세에 일본 현지 공략 포인트를 잘못 세웠다는 점, 일본 시장의 폐쇄적 특성 등이 버무려져, 일본 시장 철수라는 결과를 만들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실패는 그저 실패 자체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 역시 현대차를 바라보는 언론 일부에서 움트고 있다.
이러한 희망론은 차라리 현대차가 경쟁력을 갖춘 미국 시장 등에 주력하는 기회로 이번 일이 전화위복이 될 것이라는 분석에 기반하는 것으로 읽힌다. 차라리 토요타를 못 잡았을지언정, 포드를 노리자는 결기 어린 조언으로도 분석된다. 물론, 안방 시장에서 도요타 캠리에게 쏘나타는 물론 그랜저까지 덜미가 잡힐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현시국에 좀 태평한 소리가 아닌가 하는 감도 드나, 상당히 일리있는 주문이라고 여겨진다.
이런 다른 관록있는 언론인들의 주문에 덧붙여, 본 기자는 현대차가 이번 실패를 '부담을 편하게 내려놓을 수 있는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는 점을 당부하고 싶다. 판매 유발 능력이 가장 높은 소나타 등 여러 인기 모델을 보유한 자동차 회사, 사실상 국내 자동차 사업을 주도하는 역량있는 맏형이라는 역할론의 짐에서 좀 자유로울 수 있는 계기로 이번 철수를 보자는 이야기다.
한때, 배우 한석규는 우리 나라 영화계에서 가장 티켓 파워(관객 동원 능력)가 높은 남자 배우로 꼽혔다.
하지만 2002년작 영화 '이중간첩'에서 그는 처참한 실패를 맛봤다. 당대 최고의 인기 여배우 고소영과 연기력의 보증수표인 그가 동시에 투입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화제를 모으며 상당한 흥행을 할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이들은 북이 남에 내려보낸 이중간첩들의 불안한 내면과 결국 두 조국을 모두 버리고 남미로 도피할 수 밖에 없었던 선택을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했지만, 흡인력에 문제가 있었던 듯 관객들의 반응은 썩 좋지 않았다. 평단의 반응이나 언론의 평도 후하지 않아, 후에 어느 매체는 시선 처리조차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던 영화로 혹평을 싣기도 했다.
그러나 이 영화는 한석규에게 일종의 여유를 주는 계기가 됐다. 한석규는 이 영화 후 컴백하면서 자기가 최고라는 생각을 버리게 됐다는 이야기를 어느 인터뷰를 통해 고백했다. 그리고, 이런 쉼표 한 번 이후 한석규의 연기력을 이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다시 상승세를 그리기 시작했다.
현대차의 이번 실패도 사실 이같은 한석규의 이중간첩 경험에 비견될 수 있다. 돌이켜 보면, 현대차를 아우르는 현대차그룹의 탄생(현대그룹과의 분리) 역시 승리의 역사가 아닌 투쟁과 패배, 그리고 쉬어감, 그러나 이를 통한 극복과 무관치 않다.
현대차가 배우 한석규가 이중간첩의 경험을 발판으로 승화시켰듯, 이번 고배를 약으로 삼는 지혜를 발휘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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