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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로스쌀 캠리, 통일벼 쏘나타?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09.11.16 16:26:24

[프라임경제] 우리 민족은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 이르러서야 보릿고개를 극복할 수 있었다. 쌀 소출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는 상황에 잡곡 소출마저 변변찮기는 매일반이라 항상 굶주림에 허덕일 수 밖에 없었다. 박 대통령이 수확 증대를 제일 목표로 하라고 지시했고, 농촌진흥청이 각고의 노력 끝에 내놓은 것이 바로 '통일벼'였다. 이 통일벼 덕에, 경제 고속 성장으로 가는 '고속도로'가 보릿고래를 넘을 '터널'을 뚫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통일벼는 냉해에 약하고, 밥맛이 좀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런 단점 때문에 인기가 떨어져 지난 90년대에 마지막 수확을 한 이래, 지금은 심는 데가 없는 것으로 안다. 다만 볍씨는 언젠가 통일이 되고, 북한 주민의 굶주림을 해결해야 하는 그 날 비장의 카드로 쓰기 위해 관련 기관에서 여전히 소중히 모셔 놓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화제를 모았던 통일벼 못지 않게 화려하게 등장, 회자됐던 '스타' 쌀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미국산인 칼로스다. 캘리포니아(California)의 장미(Rose)라는 이름을 줄여 만든 칼로스는 1970~80년대만 해도 '명품 쌀'로 통했다. 미군 부대에서 유출된 칼로스가 당시, 부유층 사이에서 은밀하게 유통됐었다.

당국이 마지막으로 불법 유통 칼로스 단속을 시도한 것은 1992년이다. 동두천 등 미군 주둔 지역에서 흘러나온 칼로스쌀이 부유층과 일부 아파트단지를 중심으로 대량 유통되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자, 경기도가 정부부처와 함께 합동단속을 준비한 기록이 있다.

경기도는 '칼로스 쌀 불법유통 신고주민 보상제 실시안'이라는 제목의 문건까지 만들면서 경기도와 관세청, 농림수산부, 시·군 공무원으로 구성된 합동단속반을 짜려 했지만, 어떤 이유로 인해 결국 이 마지막 단속 계획은 단속 계획으로만 남았다.

이런 추억 때문에, 한참 후에 칼로스쌀의 수입 자유화가 추진되자, 품질도 좋고 가격도 국산 쌀의 30~40%에 불과한 칼로스가 수입될 경우 국내 쌀시장은 초토화될 것이라고 농업계 뿐만 아니라 언론과 관가에서는 크게 걱정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그때 그 맛이 아닌데"라는 평가 끝에, 일반 가정용 판매가 기대만 못하다고 한다. 그나마 식당용 등으로는 좀 인기가 있게 팔린다고 하는데, 그 이유에 대해 "과거 통일벼 먹던 시절엔 칼로스가 맛있는 쌀이었겠으나, 지금은 품종 개량도 많이 된 좋은 국산 쌀과 경쟁하니 당연한 결과"이라는 게 대체적 분석이다.

결국 '통일벼랑 맞붙었을 때'의 칼로스의 저력을 우리는 너무도 오래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으로, 바꿔 읽으면, 이제사 칼로스쌀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이뤄지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칼로스의 어제와 오늘을 떠올리는 것은, 오늘날 수입 소식만으로도 국내 차 시장에 파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도요타의 '캠리'와 유사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캠리가 쏘나타는 물론, 그랜저까지도 깔아뭉갤 것이라는 강한 기대감이 시장 일부에서 상승 중이며, 일부에서는 캠리 거품론을 조심스럽게 언급하기도 한다. 물론 현대차 입장에서는 '그랜저와 상대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듯 불만스런 표정이나, 안방이라고 거만하게 팔짱을 끼기 보다는, 수성 전략에 만전을 기하도록 골몰하는 신중한 모습이다.

그럼 캠리의 신화가 물 건너 온 본향, 미국에서 이 신화는 어떻게 발생, 유지돼 왔는가? 1990년대 초반즈음에 미국에서 '캠리 신화'가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는 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그 기저에는 이미 198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수입된 일본산 중형차들이 쌓은 명성이 거름이 돼 줬다는 점도 함께 살펴야 한다. 즉 도요타 캠리나 혼다 어코드가 90년대 초반 미국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는데 특별한 마케팅 전략이나 광고가 아닌 입소문이 큰 기여를 했다는 것이다. 미국 자동차 업계가 안주하던 시대에 파고들어 약 10년을 닦아 놓은 고장없고 튼튼하고, 나중에 팔 때 중고차값 제대로 받을 수 있는 차의 전설이 캠리를 통해 구현됐다는 것이 아마 정확할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캠리 거품론 카드를 꺼내는 이들은 이 점에 주목한다. 꼼꼼하게 일본에서 만들어 수출하던 캠리 신화가, 이제는 사실상 미국산 캠리로 바뀌면서 사라졌다는 것이다. 중고차값의 높은 유지나, 관리하기 쉽고 잘 안 고장난다는 신화 역시 어느 정도 다른 차종이 따라잡아, 결국 '큰 메리트 없음'으로 귀결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에서 바다 건너편의 오래 전 전설만으로 쏘나타나 그랜저보다 캠리가 우위에 있다고 보는 것은 맞지 않을 확률이 높다고도 일부에서는 말한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우리 나라에서 스텔라 타던 시절의 캠리 전설이 오늘날의 세계적 명차 쏘나타 시대의 감각으로 보면 아니라는 소리다. 통일벼 먹던 시절 느낀 칼로스 맛은 여전히 생생한데, 이제 와 먹어 보면 도저히 그 기억 속 맛이 아니더라, 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낙관론'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 있다.

우리 나라의 자동차 문화가 과연 캠리가 전설을 쓰던 그 시절의 우리 나라 자동차 판매 시장의 그것에서 어느 정도나 발전했는가의 중요 전제 조건을 조사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 나라 소비자들이 현재의 쏘나타나 그랜저 등이 캠리와는 비교도 안 된다고 판단하고, 그 성능이나 가격, 서비스 등에 만족한다면, 캠리는 우리 시장에서 곧바로 칼로스처럼 대우받는 것으로 끝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나라 소비자들이 캠리에 비정상적으로 과열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쏘나타 1이 처음 아스팔트를 달리던 시절부터 2010년형 YF쏘나타에 이르는 과정에서 기술적 발전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기술적으로, 디자인면에서 얼마나 발전했을지를 설명하기에는 지면이 부족해 생략하겠지만, 문제는 여전한, 오히려 더 강화된 독점적 지위를 사실상 장악하고 있는 현대차에 대한 불만이 누적돼 있다는 데 있고, 캠리 열기는 여기에 기생한다고 본다.

많은 소비자들이 옵션 판매상의 여러 문제, 수입 판매분을 싸게 팔고 국내에서 수익을 내려는 구조,  현대차 노조의 귀족 노조화와 이들을 먹여살리는 이익을 현대차 판매가를 올려 만든다는 불만 등을 그간 꾸준히 내비쳐 왔다. 그러나 현대차는 이러한 여러 불만에 대해 거의 반응을 않거나, 아주 미세한 개선을 했거나 혹은 (마지 못해) 개선 중인 것으로 안다. 한 마디로 "현대차 아니면 살 게 없어서 마지못해 산다. 중고차값이라도 제대로 나오는 건 그나마 쏘나타 밖에 없는 건 사실"이라는 전제 하에 쏘나타가 국민차 비슷한 인기를 얻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캠리 신화는 과장된 이야기, 즉 칼로스에 대한 과대 포장과도 유사할 지 모른다. 하지만, 그 캠리 신화를 꺾은 것은 우리 나라 주력쌀생산이 통일벼에서 여러 맛있는 품종으로 바뀌었을 때나 가능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통일벼 수준의 마케팅 감각과 정신을 갖고 캠리와 부딪혔다가는 "캠리 신화? 언젯적 캠리인데"라는 소리가 무색하게 바로 그 캠리에게 KO당할 수도 있는 일이다.

오늘날 YF쏘나타를 파는 현대차의 태도를 바라보는 상당히 많은 국민들은 현대차를 어쩔 수 없이 먹었던 통일벼처럼 본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자아비판과 개선 없으면 쏘나타는 안방 시장에서 처참하게 캠리에게 '인수분해'당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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