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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khan) 김우중의 죽음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09.11.12 17:46:39

[프라임경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재기설이 화제다.

김 전 회장이 건강 악화를 이유로 초라하게 귀국했을 때, 그리고 그가 사면을 받을 때만 해도 다시 일어설 것을 점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의 주위에 근래에 여러 일이 생기고 있다. 대우그룹에 몸담았던 여러 간부급 직원들이 알음알음으로 모여 조직을 출범시키는가 하면, 베트남에서 부동산개발사업에 손을 담갔다는 보도들이 급기야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마 평생을 물려받은 재산을 바탕으로 사업을 하던 2세나 3세 경영인이었다면 이 정도만으로 재기설이 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문제는 김 회장이 한국전쟁 이후 빈한한 시대를 살면서 자수성가를 한 상징적 인물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공직자이던 이버지가 납북되면서 유복하던 어린 시절 이후 어렵게 지낸 경험, 자타가 공인하는 수재 집합소인 경기고 출신이면서도 서울대에 진학하지 못하고 사립대(그는 연세대 상대를 나왔다)로 진학한 것, 월급쟁이라고 흔히 부르는 회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나 젊은 나이에 창업 기치를 들고 세계 유수 경쟁업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몸집의 그룹을 키워낸 점 등은 한국 기업사 뿐만 아니라 우리 현대사를 통틀어 봐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성공과 좌절, 극복 등이 함께 등장하는 드라마에 가깝다. 그래서 김 회장의 성공은 현대 가문의 아산 정신과도 분명히 차이가 있다. 그가 한때 재벌이면서도 샐러리맨의 우상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이중적 지위도 이런 상황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복잡한 성격을 가진 그의 발자국처럼, 그가 가꾼 대우 역시 기업의 여러 속성을 모두 안고 있는 축약판 같은 성격을 보였다.

세계경영을 외치던 그의 파죽지세 성장은 땀흘려 주춧돌부터 놓은 방식 대신 주로 M&A를 통한 것으로 이뤄졌다는 평가가 많다. 아울러 새벽 5시면 움직이기 시작하고, 식사할 시간도 아까워 김치죽으로 차 안에서 끼니를 즐겨 떼웠다는 그의 성격은 "모든 걸 회장이 결정해야 하는 성격"으로 뒷말을 낳으면서 SK 등 다른 그룹 창업주들의 호방한 성품과 비교되기도 했다. 그저 '과장급 회장'으로 웃어넘길 일이 아니라 독재가 깃들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는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김대중 정권이 대우를 망가뜨렸다고도 분석하지만, 특정 정권에 의한 희생양으로만 보기에 석연찮은 구석은 그와 대우그룹이 자랑하는 여러 금자탑 같은 성과 곳곳에 묻어난다. 

대우그룹 퇴출을 막기 위한 정치계나 관계 로비설이 불거졌고, 구 한빛은행(대우의 주거래은행. 이후 우리은행)이  김 전 회장의 도피를 종용했다거나 하는 불건전한 루머도 많았다. 어찌 보면 당시 한국 재곈에서 가장 스마트한 이미지의 그룹이 가장 큰 폐단을 모두 답습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래서일까? 그가 도피 생활을 마치고 귀국할 때, 대우경제연구소장을 지낸 한나라당 이한구 의원조차 "김 전 회장은 (국민의 정부) 당시 전경련 회장이었기 때문에 타협도 하고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지 않겠느냐. 김 전 회장의 외유가 자의인지 타의인지 여부 등이 당사자의 입으로 밝혀질 수도 있을 것"이라며 후폭풍을 예고하는 등 사실상 '김우중 장학생'의 존재를 부각시키는 듯한 여운을 남기기도 했다.

그런 그가 이번에 베트남에서 사업을 한다고 하자 관심이 쏠리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세계경영을 지휘하던 '칸의 부활'을 예고하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하지만 막상 그의 측근이 내놨다는 발언(해명)을 보면 싱겁기 짝이 없다. 지인이어서 우연히 사업을 도와준 브리지 역할이 다라는 해명이 나왔다(본지 관련 기사참조). 사실이 아닐 가능성도 있으나, 사실이거나 아니거나 모두 문제다.

해명이 언론의 주의력을 분산시키기 위한 것이라면 일류 기업인답지 않은 언론 플레이요, 만약 단순 브리지 역할이래도 문제다. 한때 세계를 호령하던 기업인이 굳이 나서는 일이, '베트남 관계에 이르기까지 막강하다는' 그 인맥을 동원해 브리지역을 자임하는 것인가?

만약 이런 인맥이 있다 해도, 자숙하고 조용히 여생을 보내는 게 대우그룹 몰락으로 고생한 여러 직원 및 가족에 대한 예의일 것이고, 그게 어려우면 이러한 경험과 경륜을 국가 발전을 위해 공공재로 사용해야 옳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이번 일을 통해 '거간꾼'으로 나섰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세계경영을 하던 '칸'은 죽었다. 이제 김우중이라는 이름 뒤에는 세계경영이나 칸 대신 커넥션이나 마당발, 중개인 등의 수식어가 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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