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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부석사와 하나은행 공항지점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09.11.04 07:34:33

[프라임경제] 우리 나라 명찰 중 하나인 부석사는 통일신라 시대의 고승인 의상이 창건한 절로 알려져 있다.

의상은 문무왕 16년(676년) 해동 화엄종을 연 고승으로, 부석사는 바로 이 화엄종의 발원지이자 왕명으로 창건한 의미가 깊은 천년사찰이다.

의상은 중국으로 유학을 갔는데 이때 산동 반도에서 선묘라는 여자를 만난 것으로 '삼국유사'는 전하고 있다. 선묘라는 여자의 정체에 대해서는 명확하고 자세하게 말할 것이 없으나, 사학계에서는 그냥 평범한 여염집 규수 혹은 그 이하였을 것으로 보고 있는 듯 하다. 어쨌든, 명문 핏줄을 타고 났고, 귀국한 다음부터 화엄종 개창 이후 왕실과 정치적 채널을 늘 갖고 있었던 영향력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는 의상의 위치를 감안하면 이례적인 만남이라고 밖에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사랑은 운명이라고 하나 보다.

의상이 이 여자를 어느 정도 '의식'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어쨌든 '삼국유사'는 선묘가 작정하고 서포터즈 활동을 했던 것으로 전한다. 이것저것 잡다한 일용품 구매나 귀찮은 잡무를 공들여 처리해 줬던 셈이다. 선묘의 꿈은 이 멋진 신라인 승려의 마음을 잡아 결혼을 하는 것이었을 테다.

어쨌든 이 운명적인 사랑은, 그러나 의상이 공부를 마치고 일언반구도 없이 귀국선에 오르면서 끝이 난다. 낙심한 선묘는 바다에 몸을 던졌다고 한다. 일설에 따르면, 선묘는 이후 용이 되어 의상이 지은 부석사를 땅 밑에서 떠받치고 있다고도 한다.

그래서, 지금도 부석사에 가면 선묘각이라는 작은 위령각이 있고, 부석사 승려들은 이곳에서 용이 돼 부석사를 받치고 있는 선묘를 위해 고마움을 담아 염불을 한다고도 한다.

하지만 어쩐지 가엾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종교적인 관점을 떠난 갑남을녀의 대체적인 정서일 터이다. 그래서 소설가인 김훈 같은 이도 "아무리 용이 되었기로,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하고 솥단지를 들어앉히고 싶었던 꿈이야 잊을 수가 있었을까"라고 부석사 방문 소감을 짧은 글로 남기기도 했다.

부석사의 창건 설화와 용 이야기를 되짚은 것은 인천공항의 은행 지점 이야기에서 부석사 전설을 떠올리게 됐기 때문이다.

인천공항은 외국 방문자들을 맞이하는 우리 나라의 얼굴이자, 많은 내국인 이용자들이 지나는 요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곳에 은행 지점을 갖고 잘 영업하는 것에 대해, 은행권에서는 이미지 제고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고들 보는 듯 하다.

그래서 상당한 지점 운영비를 감수하고서라도 이곳에 들어가고, 또 유지하고 싶어하는 게 공감대처럼 돼 있다.

하나은행 같은 경우는 두 번이나 입점을 추진했다 '물을 먹은' 이후, 우리은행이 부담을 못 견뎌 손을 들고 떠난 자리를 이어받으면서 숙원을 푼 경우다.

하나은행은 공을 들인 리모델링으로 이 자리를 멋지게 꾸며 문을 열었다. 하나은행 인천국제공항지점 간판 아래 환전소들이 곳곳에 배치되는 구조에, 외국어가 제법 되는 직원들을 배치해 영업 효과 극대화도 노린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나 이 지점의 멋진 인테리어는 개점 이래 상당한 관심을 끌었다. 국내 유명대학 실내환경디자인학과 교수가 디자인하고, 바닥은 크리스털 스톤으로, 벽과 천장은 자작나무 합판으로 멋지게 마무리해 전체적으로 모던하고 깨끗한 백색 공간을 만들었다. 디자인포털 '정글'에서 이 명소를 인테리어 감각이 살아있는 사례로 취재해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 공항지점에서 일하는 직원 중에도 일부는 비정규직들이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이는 이 낙원과도 같은 인터리어의 멋진 공간에도 존재한다. 우리도 다른 금융지주사 산하 은행들처럼 공항 내에 지점을 갖고 싶다는 하나은행의 꿈이 실현된 '낙원'을 받치고 있는 일부 비정규직 직원들이 이 곳을 받치고 있다.

하지만 이 지점이 문을 열 때 이들이 받기로 하고 들어간 연봉은 정규직의 그것보다 800만원 가량이 적은 것으로 안다(봄에 지점이 열렸으니, 금년 가을 하나은행 신입 직원 초봉이 감액되기 전 정규직 급여기준으로). 크게는 하나은행의 이익을 위해, 작게는 높은 지점 유지 비용을 메울 수익성을 위해 뛰는 비정규직 첨병들 중에는 과장급으로 채용된 이들도 있는 것으로 안다. 모 하나은행 직원의 확인에 따르면 이 곳 근무 조건으로 들어온 비정규 과장급 입사자는 5명. 하지만 이들 과장급도 본사의 정규직 과장과는 처우가 다르다.

바로 이런 이들이 있어, 하나은행은 오랜 꿈을 이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노고로 하나은행에 기여하는 비정규직 직원들의 꿈은 무엇일지, 모두 알 수는 없지만, 더러는 계약 연장을 혹은 능력을 인정받아 정규직 전환 같은 꿈을 갖고도 있을 터이다. 이런 꿈이 사랑하는 남자의 발목을 잡아 솥단지를 들여앉히고 살림을 꾸려보겠다던 선묘의 꿈처럼 이룰 수 없는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참고로, 하나은행은 어느 비정규직 은행 텔러들의 온라인 모임이 소송 대상으로 꼽은 첫 주자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린 것으로 안다. 어째서 수많은 은행 중에서 첫 주자로 간택됐는지는 알 길 없으나, 적어도 멋진 공항지점에서 부석사 선묘의 슬픈 전설을 떠올리는 이들이 기자 하나만은 아닌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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