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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전쟁⑧] "전투는 국가의 명령, PTSD는 국가의 책임"

김예지 국회의원 "몸의 상처는 보상하고, 마음의 상처는 외면할 것인가"

김경태·노병우·박지혜·김우람·박선린 기자 | kkt·rbu·pjh·kwr·psr@newsprime.co.kr | 2026.06.10 17:15:45
[프라임경제] 전투는 끝났지만, 누군가에게 그날은 뒤늦게 다시 시작된다. 총성이 멈추고 작전이 종료돼도 기억은 몸과 일상에 남는다. 불면과 악몽, 갑작스러운 긴장, 소리와 공간에 대한 회피, 설명하기 어려운 분노와 불안은 시간이 흐른 뒤 더 또렷해지기도 한다.

프라임경제가 [보이지 않는 전쟁] 연재를 통해 확인한 군인 PTSD(Posttraumatic Stress Disorder·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의 핵심은 분명했다. 한국의 군인 PTSD 문제는 없었던 것이 아니라, 늦게 보였고 더 늦게 인정된 문제였다. 전투와 군 복무 과정에서 발생한 외상 경험은 개인의 삶에 장기적인 영향을 남겼지만, 이를 사건 직후부터 기록하고 치료와 보상, 사회 복귀로 연결하는 체계는 충분히 앞서가지 못했다.

이제 남은 질문은 국회와 국가가 이 보이지 않는 상처를 어디까지 책임질 것인가다.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은 이 문제를 "개인의 정신건강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부여한 임무 수행 과정에서 발생한 직무상 손상"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 ⓒ 김예지 의원실


김 의원은 "국가를 위해 희생과 헌신을 감내한 분들이 신체적 상처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정신적 상처까지도 국가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번 입법의 출발점"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난 3월 군인·공무원 등의 정신건강 지원 체계를 강화하는 정신건강복지법 일부개정안과, 전역 이후에도 제대군인의 정신건강을 지속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제대군인지원법 일부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법안의 핵심은 재직 중뿐 아니라 퇴직 이후 나타나는 PTSD까지 국가 지원 체계 안에서 다루자는 데 있다.

"늦게 보인 문제"…직무상 위험 결과 개인에게 전가

군인 PTSD가 제도 안에서 늦게 포착된 사례는 이미 여러 차례 확인됐다. 제2연평해전 생존 장병 일부는 사건 이후 20년 가까이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들은 PTSD 등 정신적 후유증을 이유로 여러 차례 신청했지만, 제도 안으로 들어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지난 2002년 6월 교전 이후 생존 장병 전원이 제도 안으로 들어오기까지 20년이 넘게 걸린 셈이다. 천안함 피격 사건도 비슷했는데 사건 발생 후 11년이 지난 뒤 9명이 PTSD로 국가유공자 등록을 받았다. 

문제는 상처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제도가 그 상처를 읽어내는 방식이 늦었다. 신체 부상은 눈에 보이고 기록으로 남기 쉽지만, 정신적 외상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당사자가 직접 말하지 않으면 제도 안으로 들어가기 어렵다. 이 과정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다시 자신의 고통을 설명하고 증명해야 했다.

김 의원이 퇴직 이후까지 지원 체계를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PTSD는 사건 직후 곧바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지만, 수년이 지난 뒤 발현될 수 있다. 퇴직 이후 증상이 나타났다는 이유만으로 개인의 문제로 돌리면, 국가가 부여한 직무상 위험의 결과를 개인에게 전가하는 구조가 된다.

김 의원은 "PTSD는 외상 경험 직후뿐만 아니라 수년이 지난 뒤 증상이 나타나는 지연성 PTSD의 형태로 발현되기도 한다"며 "퇴직 이후 증상이 나타났다는 이유만으로 개인의 책임으로 돌린다면, 국가가 부여한 직무상 위험과 그 결과를 개인에게 전가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가운데) 김예지 의원이 고 한상국 상사의 배우자인 김한나씨(우측)의 지연성 PTSD 집회에 참여한 모습. ⓒ 김예지 의원실


특히 김 의원은 이 문제를 군인만의 문제로 한정하지 않았다. 경찰·소방·교정공무원 등 제복공무원 역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재난 현장 △강력범죄 △전투 상황 △사망사고 등 극심한 정신적 충격에 반복적으로 노출된다. PTSD는 이러한 직무 수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위험이 장기간 누적돼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그는 "군인과 경찰·소방·교정공무원 등 제복공무원은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극심한 정신적 충격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직무를 수행한다"며 "PTSD는 단순한 개인의 정신건강 문제로만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신체적 부상에 대해 국가가 책임을 지듯이, 직무 수행으로 인한 정신적 손상 또한 국가가 책임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신체·마음' 동일 원칙 필요…통합 지원 체계 부재

군인 PTSD 논의가 어려운 이유는 정신적 손상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신체적 부상은 사진과 의무기록, 장애 정도로 비교적 분명하게 남는다. 반면 정신적 손상은 당사자의 진술과 진단, 주변 기록을 통해 뒤늦게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김 의원은 정신적 손상이 신체적 부상보다 가볍게 취급돼서는 안 된다고 봤다. 그는 "정신적 손상은 신체적 부상과 달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심각성이 과소평가되거나, 적절한 진단과 치료를 받기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다. 이어 "국가가 부여한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상처라면, 그것이 신체에 남았든 마음에 남았든 동일한 책임의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고 밝혔다.

전문가 진단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군 조직 안에서 발생한 외상 사건은 보고되고 기록될 수 있는 만큼, 사건 초기부터 개입하고 증상이 지속될 경우 조기 치료로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김 의원의 입법 방향과 맞닿아 있다. PTSD를 개인이 견디다 무너진 뒤에야 지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국가가 외상 경험을 알고 있다면 먼저 발견하고 연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현재 지원 체계의 큰 공백은 통합 지원 체계의 부재로, 김 의원 역시 이를 가장 큰 문제로 꼬집었다. PTSD를 국가를 위한 공적 업무 수행 과정에서 발생한 직무상 손상으로 인식하고, 국가가 예방부터 치료, 심리재활, 의료지원, 사회복귀까지 책임지는 체계가 충분히 마련돼 있지 않다는 지적이다.

김예지 의원은 PTSD는 개인의 고통이 아닌, 국가가 책임질 상처라고 말한다. ⓒ 김예지 의원실


물론 지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지원이 작동하는 시점과 방식이다. 앞선 연재에서도 보훈병원 진료와 PTSD 전문클리닉 등 제도는 존재하지만, 핵심은 '공무상 발생한 질병으로 인정된 경우'라는 점을 지적했다. 즉, 제도적 지원은 인정 이후에 본격적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PTSD는 인정 이전이 더 중요하다. 증상이 명확하게 드러나기 전부터 외상 경험을 기록하고, 일정 기간 이후 다시 점검하며, 전역 전후에 의료·보훈 체계로 연결해야 한다. 당장 이상이 없어 보였다는 이유로 관리 대상에서 빠지면, 몇 년 뒤 나타난 증상은 개인의 문제처럼 취급될 가능성이 커진다.

보훈 심사 과정에서는 '개인입증주의'의 한계도 반복된다. 안종민 국가보훈행정사무소 대표 행정사는 앞선 인터뷰에서 군인 PTSD가 보상으로 이어지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로 개인이 직접 자료를 모아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하는 구조를 꼽았다. 그는 1999년부터 2010년까지 PTSD의 주요 비해당 사유가 "정신과 방문 기록이 없다"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그 기록이 없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군 조직 안에서 정신과 진료를 받는 일은 여전히 부담으로 작용한다. 증상을 말하면 낙인이 되고, 말하지 않으면 기록이 남지 않는다. 기록이 없으면 심사에서 밀려난다. 결국 침묵은 다시 개인의 불이익으로 돌아간다.

김 의원은 이런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봤다. 그는 "그동안 많은 군인과 공무원들이 PTSD 증상을 겪으면서도 이를 개인의 문제로 여기거나 불이익에 대한 우려 때문에 드러내지 못한 채 견뎌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법안은 PTSD를 개인이 홀로 감당해야 하는 사적인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책임지고 관리·지원해야 할 공적 영역의 문제로 제도적으로 자리매김하게 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상담으로 끝나선 안 된다…치료·회복·복귀까지

김 의원은 PTSD 지원이 단순한 상담이나 일시적 치료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치료 이후의 회복과 사회 복귀, 퇴직 이후의 삶까지 포괄하는 전 주기적 지원 체계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김예지 의원은 PTSD를 국가가 부여한 임무 수행 과정에서 발생한 직무상 손상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 김예지 의원실


그가 대표발의한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에는 군인·경찰·소방공무원 등 제복공무원들이 재직 중은 물론 퇴직 이후에도 정신건강증진사업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제대군인지원법 개정안에는 국가보훈부 장관이 PTSD 회복과 심리재활에 관한 정책을 수립·시행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김 의원은 "PTSD 지원의 목표는 치료 자체가 아니라 온전한 회복과 건강한 일상으로의 복귀에 있어야 한다"며 "예방부터 치료, 재활, 사회 복귀까지 국가가 책임지는 촘촘한 지원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김 의원은 전문 상담·치료 인프라 부족도 중요한 과제로 봤다. 현재 군인과 제복공무원을 위한 PTSD 상담·치료 체계는 현장의 수요에 비해 부족하고, PTSD를 전문적으로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는 기관도 많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보훈병원 접근이 어려운 지역에 거주하는 경우 전문 상담과 치료를 받기 위해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김 의원은 "단순히 상담 창구를 운영하는 수준을 넘어 지역별 전문 상담센터를 확충하고, 민간 전문의료기관과의 협력 체계를 확대하며, 장기적인 심리재활 프로그램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가가 도움을 요청하기를 기다리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정기적인 정신건강 관리와 찾아가는 상담 서비스, 퇴직 이후까지 이어지는 사후관리 체계를 통해 보다 적극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국가의 역할 '심사자'가 아닌 '관리자'

지금까지 한국의 PTSD 대응은 대체로 사후 인정에 가까웠다. 상처가 드러난 뒤, 당사자가 병원을 찾고, 기록을 모으고, 인과관계를 설명하고, 심사를 거쳐야 했다. 그러나 지연성 PTSD의 특성을 고려하면 이 방식은 늘 늦을 수밖에 없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인정 이전의 발견이다. 전투나 고위험 임무를 경험한 장병에게는 사건 직후의 단기 확인뿐 아니라 일정 기간 이후의 재점검이 필요하다. 전역을 앞둔 시점에는 정신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위험군은 전역 이후 보훈·의료 체계로 자연스럽게 연결해야 한다.

김 의원의 법안도 이 방향에 놓여 있다. PTSD를 개인이 숨기고 견디다 무너진 뒤에야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실태를 파악하고 회복 정책을 수립하며 퇴직 이후까지 관리하는 구조로 바꾸자는 것이다.

김예지 의원은 군인과 제복공무원의 정신적 상처도 신체적 부상과 같은 책임 원칙으로 다뤄야 한다고 밝혔다. ⓒ 김예지 의원실


그는 "이번 법안은 PTSD를 숨기고 혼자 견뎌야 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국가가 예방·치료·재활·회복 과정에 함께 책임지는 체계로 전환하는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김 의원은 PTSD를 복지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책임의 문제로 규정했다. 군인과 제복공무원이 감당한 위험은 개인이 선택한 위험이 아니라 국가가 부여한 임무의 결과라는 이유에서다.

김 의원은 "PTSD는 개인의 나약함이나 홀로 감당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과정에서 생긴 상처"라며 "지금도 도움을 요청하기 망설이는 분들이 있다면 결코 혼자가 아니다. 국회도 지원과 보호 체계를 더 촘촘히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원 인터뷰가 던지는 질문도 여기서 출발한다. 국가가 부여한 임무로 생긴 상처라면, 몸에 남았든 마음에 남았든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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