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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전쟁⑥] "영웅이라 부르면서 외면한 상처"

[인터뷰]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2차 가해만 없어도 회복은 수월해진다"

김경태·노병우·박지혜·김우람·박선린 기자 | kkt·rbu·pjh·kwr·psr@newsprime.co.kr | 2026.06.01 10:41:41
[프라임경제] PTSD(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전투가 끝난 뒤 뒤늦게 모습을 드러내는 병처럼 여겨져 왔다. 사건은 지나갔고, 생존자는 돌아왔고, 시간은 흘렀지만 몸과 마음은 여전히 그날의 장면을 현재처럼 다시 겪는다. 갑자기 심장이 뛰고, 소리를 피하고, 사람을 멀리하고, 분노와 불안이 일상을 흔든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진단은 다르다. PTSD는 치료할 수 있고, 상당 부분 예방할 수 있는 질환이라는 것이다. 트라우마를 겪었다고 모두 PTSD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생명의 위협을 느꼈거나, 눈앞에서 전우를 잃었거나, 참혹한 현장을 마주한 뒤 흔들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문제는 그 반응이 오래 방치될 때다.

백 교수는 핵심을 초기 개입에서 찾았다. 그는 "트라우마를 겪은 초기에 집중해서 관리해 PTSD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군은 이 지점에서 다른 영역과 구분된다. 교전, 피격, 포격, 훈련사고, 사망·부상 목격 등 군 조직 안에서 발생한 외상 사건은 보고되고 기록될 수 있다. 누가 어떤 사건을 겪었는지 알 수 있다면, 국가가 손을 놓고 기다릴 이유는 없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프라임경제

그가 말하는 치료의 출발점은 진료실 안에만 있지 않다. 사회가 생존자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군 조직이 얼마나 빨리 개입하는지, 국가는 그 경험을 어떻게 기록하는지가 모두 회복에 영향을 미친다. PTSD는 개인의 마음속에서만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 전투와 사고 이후 한 사람을 둘러싼 제도와 시선 속에서 깊어지기도 하고, 반대로 회복의 길로 들어서기도 한다.

◆트라우마와 PTSD '이해와 오해'

백 교수는 PTSD의 출발점이 개인의 약점이 아니라 외부 사건에 있다고 봤다. 그는 "PTSD는 일반적인 질환과 달리 진단 기준에 생명을 위협하거나 심각한 부상을 초래하는 사건의 경험이 들어간다"고 말했다. 원인은 개인 안에 있는 취약함이 아니라, 생명을 위협한 외상 사건에 있다는 뜻이다.

군 PTSD는 이 특성이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전투 상황에서 전우가 쓰러지는 모습을 보거나, 자신의 신체가 손상되거나, 동료의 시신과 피를 마주하는 경험은 한 사람의 삶을 바꿔놓을 수 있다. 구조와 수습 과정에 투입되는 군인·소방관·경찰도 반복적인 외상 노출을 피하기 어렵다. 

백 교수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직업을 가진 이들은 트라우마에 노출될 위험이 일반인보다 높다"고 진단했다.

중요한 것은 사건 직후의 고통을 모두 병으로 볼 수는 없다는 점이다. 아끼던 전우를 잃었는데 슬프지 않을 수는 없다. 두려움과 불안, 죄책감과 무력감은 극단적 사건을 겪은 뒤 나타날 수 있는 정상 반응이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재경험, 회피, 과각성, 감정 조절의 어려움이 이어지고 일상 기능을 무너뜨리면 PTSD로 진행될 수 있다.

백 교수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직업을 가진 이들은 PTSD에 노출될 위험이 일반인 보다 더 높다고"고 진단했다. ⓒ 경희대병원

백 교수는 이를 "과거에 겪은 일을 지금 현재도 겪고 있다고 뇌가 경험하는 것"이라고 풀어냈다.

외부 자극이 없어도 갑자기 위험한 상황에 놓인 듯한 신체적·감정적 반응이 나타난다. 안전한 곳에 있어도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은 그 고통을 이해하기 어렵다. 가족은 돕고 싶어도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모른다. 군 PTSD가 당사자의 증상에 머물지 않고 가족 관계와 사회 복귀까지 흔드는 이유다.

치료의 실마리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을 기다리게 하는 대신, 초기부터 살펴야 한다. 백 교수는 "군에서는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매일 보고되기 때문에 대상이 명확하다"며 "사건 초기부터 개입하고, 증상이 지속돼 질환 수준이 되면 조기 치료로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회복을 흔드는 '2차 가해'

백 교수는 군 PTSD를 이해할 때 사회적 시선을 빼놓을 수 없다고 본다. 같은 전쟁을 겪어도, 돌아온 뒤 어떤 대우를 받느냐에 따라 회복의 경로는 달라진다. 그는 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을 비교하며 이 차이를 짚었다.

2차 세계대전 참전 군인들은 대체로 영웅으로 맞이됐다. 반면 베트남전 참전 군인들은 반전 여론 속에서 거센 비난을 감당해야 했다. 누군가는 이들을 '베이비 킬러'라고 불렀고, 국가를 위해 전장에 나갔던 군인들은 귀환 뒤에도 사회적 공격과 차별을 마주했다.

트라우마를 똑같이 겪었더라도 예우가 있다면 충격이 덜하지만 비난이나 조롱 등 2차 가해를 당하면 PTSD는 더욱 심각해 진다. ⓒ 연합뉴스

백 교수는 "트라우마를 똑같이 겪어도 사회적 인정과 예우가 있으면 충격을 훨씬 잘 이겨낼 수 있다"며 "비난과 공격, 차별이 엮이면 후유증은 더 심각해진다"고 경고했다. 전투에서의 충격만큼이나, 귀환 이후의 시선이 회복을 좌우한다는 의미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있었다고 봤다. 제1·2연평해전, 천안함 피격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과 음모론, 인터넷과 SNS 댓글을 통한 공격은 생존 장병과 유가족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됐다. 전투와 사고의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사회적 의심은 회복을 방해하는 강한 자극으로 작동한다.

백 교수는 이 대목에서 목소리를 분명히 했다. 그는 "2차 가해를 당하면 PTSD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며 "회복하던 제대군인도 본인의 목숨을 바친 일과 전사한 동료들의 명예가 훼손됐다고 느끼면 무너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우려했다.

PTSD 치료가 약물과 상담만으로 완성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치료는 진료실에서 시작될 수 있지만, 회복은 사회 안에서 이어진다. 누군가의 희생을 정쟁의 소재로 소비하거나, 생존자를 의심하거나, 고통을 과장으로 취급하는 순간 치료의 기반은 흔들린다.

PTSD라는 진단명이 베트남전 참전군인의 고통을 이해하려는 과정에서 자리 잡았다는 점도 이 논의를 뒷받침한다. 전쟁 이후 달라진 제대군인들의 자살, 폭력, 약물 문제, 관계 갈등이 사회문제로 떠올랐고, 정신의학과 보훈 체계는 뒤늦게 그 고통을 질병으로 받아들였다. 

그 역사에서 남은 교훈은 분명하다. 생존자를 비난할수록 사회적 비용은 커진다. 인정과 예우는 상징이 아니라 치료 환경이다.

◆기억을 마주하는 치료

PTSD 치료는 시작부터 어렵다.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잊으려 할수록 더 떠오르고, 피하려 할수록 더 깊게 남는다. 백 교수는 이 상태를 "처리되지 않은 고통스러운 기억이 뇌 안에서 쪼개진 거울 조각처럼 돌아다니며 여러 곳을 찌르는 것"에 비유했다.

치료는 그 조각을 억지로 덮는 일이 아니다. 안전한 순서로 다시 맞춰가는 과정이다. 백 교수는 "깨진 거울 조각을 맞춰 원형 그대로 쳐다보고 마주봐야 치료가 가능하다"며 "가장 아프지 않은 기억부터 단계적으로 노출시켜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 과정은 아프고,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PTSD 진료에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일반 정신건강의학과 외래 진료는 초진과 재진 시간이 길지 않다.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는 짧은 진료와 약물치료만으로도 호전되는 경우가 있지만, 트라우마는 이야기를 꺼내는 일부터 쉽지 않다. 꺼낸 뒤에도 세심하게 다뤄야 한다.

백 교수가 자살예방포럼에 패널로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 경희의료원

백 교수는 캐나다 사례를 들며 진료 시간의 문제를 짚었다. 캐나다는 트라우마 정신치료에 더 긴 시간을 인정한다. 그는 "트라우마는 세심하게 다뤄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며 "제복을 입은 이들에게만이라도 충분한 치료 시간을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사회적 지지도 치료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백 교수는 연평해전 참전자가 진료 의뢰서를 받으러 갔다가, 의원에서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이니 진료비를 받지 말자"는 말을 들었던 사례를 떠올렸다. 작은 배려였지만, 당사자는 훨씬 나은 마음으로 치료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는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중요하다"며 "그래야 용기를 갖고 트라우마를 마주할 수 있고, 치료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PTSD 치료는 기억을 지우는 일이 아니다. 기억이 삶 전체를 찌르지 않도록, 안전하게 다루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회복은 사건 이전으로 완전히 돌아가는 형태만을 뜻하지 않는다. 고통이 남아 있어도 삶을 유지하고, 관계를 회복하고, 의미를 다시 찾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국가가 만들 회복 경로

백 교수는 군 PTSD 대응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로 '예방'을 꼽았다. 미군은 전투 부대에 정신건강 인력을 배치하고, 더 큰 부대에는 전문의가 붙는다. 사건 직후 장병 상태를 확인하고, 증상이 커지기 전 개입한다. 그는 "초반에 예방하면 비용도 적게 들고 본인도 덜 고통스럽다"며 "병이 생기기 전에 치료하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군과 소방, 경찰처럼 반복적 트라우마에 노출되는 직군은 누적 관리도 필요하다. 한 번의 사건만으로 모든 것이 터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경험이 쌓이다 마지막 사건을 계기로 증상이 폭발할 수 있다. 백 교수는 반복적 외상 노출을 수치화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봤다. 일정 수준 이상의 외상 노출이 확인되면 상담을 권하고, 추적 관리를 이어가는 방식이다.

백 교수가 PTSD 환자와의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 경희의료원

회복을 돕는 주체도 넓어져야 한다. 백 교수는 미국의 동료 지원 모델에 주목했다. 미국에는 PTSD를 겪은 뒤 일정 교육을 받고 다른 제대군인을 돕는 인력이 수천 명 규모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PTSD를 겪는 이들은 사람 만나는 것을 무서워하고 의사 말도 잘 듣지 않을 때가 있지만, 같이 전쟁에 나간 이들의 말은 듣는다"고 설명했다.

동료 지원은 치료의 보조 수단에 머물지 않는다. PTSD를 겪은 제대군인이 다시 누군가의 회복을 돕는 역할을 맡게 되면, 자신의 경험도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백 교수는 이들을 치료 대상에만 머물게 해서는 안 된다고 봤다. "문제 해결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동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미를 제도적으로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가 말하는 회복은 완치라는 말보다 넓다. 백 교수는 "PTSD에는 완치라는 개념을 쉽게 말하기 어렵다"고 했다. 트라우마는 사라지지 않을 수 있다. 다만 그 경험을 안고도 다른 사람을 공감하고, 현실을 직시하고, 삶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백 교수는 이를 "트라우마 이후 성장"이라는 개념으로 바라봤다.

군인 PTSD는 치료실 안에서만 해결되지 않는다. 사건 직후의 예방, 충분한 진료시간, 사회적 인정, 동료 지원, 제대 이후의 삶까지 이어지는 제도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전투 이후의 시간을 국가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 묻는 이 연재의 질문은 여기서 다시 선명해진다. PTSD는 방치하면 한 사람의 삶을 오래 흔들지만, 제대로 개입하면 예방과 회복이 가능한 질환이다.

"트라우마를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그리고 삶이 유지될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가는 여정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백 교수의 마지막 말은 치료의 목표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전투는 끝나도 기억은 남는다. 이제 국가가 해야 할 일은 그 기억을 혼자 견디게 두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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