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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 모빌리티 전략②] 차를 넘어 플랫폼으로…PBV에 거는 다음 성장

PV5·PV7·PV9 풀 라인업 LCV 시장 공략…자율주행·로보틱스 연계 생태계 구축

노병우 기자 | rbu@newsprime.co.kr | 2026.04.09 15:54:57
[프라임경제] 기아(000270)의 중장기 전략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판매 목표나 전동화 수치만이 아니다. 오히려 더 중요한 변화는 '차를 어떻게 파느냐'가 아니라 '차를 무엇으로 바꾸느냐'에 있다. 기아가 PBV(Purpose Built Vehicle, 목적 기반 차량)를 별도 성장 축으로 분리해 전면에 세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번 2026 CEO 인베스터 데이(CEO Investor Day)에서 기아는 2030년 PBV 23만2000대 판매 목표와 함께 △PV5 △PV7 △PV9으로 이어지는 풀 라인업 계획을 제시했다. 새로운 전기 상용차 사업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큰 의미를 갖는다. PBV는 기아가 '완성차 기업'에서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넘어가기 위해 던진 가장 구체적인 카드다.

PBV가 중요한 이유는 이 사업이 더 이상 단순한 차량 판매로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기존 경상용차(Light Commercial Vehicle, LCV) 시장은 높은 개조 비용, 규격화되지 않은 운영 방식, 늘어나는 친환경 규제, 각기 다른 고객 요구에 대한 대응 한계가 동시에 드러난 영역이다. 

기아는 바로 이 지점에서 PBV를 내세운다. 공장에서부터 목적형으로 설계한 차량에 소프트웨어와 운영 솔루션, 서비스 체계를 결합해 '차량'이 아니라 '업무 플랫폼'으로 판매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번 발표에서 기아의 PBV 전략은 생각보다 훨씬 정교하다. 상품(Product), 제조 생태계(Manufacturing Ecosystem), 솔루션(Solution), 채널(Channel)이라는 네 축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차종 몇 개를 더 내놓겠다는 수준이 아니다. 생산, 개조, 운영, 판매, 유지보수까지 한 체계로 묶겠다는 것이다. 

송호성 기아 사장. ⓒ 기아


이 구조는 기존 완성차 기업의 사업 방식과 분명히 다르다. 완성차업체가 차량을 만들어 딜러망으로 넘기고 이후 생태계는 외부에서 형성되는 구조였다면, PBV는 처음부터 기아가 생태계의 중심을 잡겠다는 것에 가깝다.

제품 구성을 보면 이 전략은 더 선명해진다. PV5는 △패신저 △카고 △섀시캡 3가지 기본 모델을 바탕으로 △프라임 △라이트 캠퍼 △캠퍼 △크루밴 △오픈베드 △내장탑차 △냉동탑차 7종 컨버전 모델로 확장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차종 다양화 자체보다 '차량 설계 단계부터 고객 목적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택배, 배송, 캠핑, 장애인 이동, 소상공인 운송 등 각기 다른 수요를 사후 개조가 아닌 선제 설계로 대응하겠다는 뜻이다. 완성차의 가치가 성능과 디자인에만 있던 시대에서, PBV는 업무 효율과 운용 최적화가 상품성의 핵심이 되는 시장으로 넘어가고 있다.

기아가 PBV를 미래 성장 축으로 보는 이유는 시장 자체가 열리고 있어서다. 기아는 2030년 글로벌 eLCV(electric Light Commercial Vehicle) 수요를 약 100만대로 전망하고, 이 가운데 23만2000대 판매를 목표로 제시했다. 

핵심 시장은 유럽과 국내다. 유럽은 친환경 규제와 도심 물류 구조 변화, 전동 상용차 수요 확대가 맞물리는 지역이고, 한국 역시 배송·서비스 산업 구조 변화와 함께 목적형 이동수단 수요가 점차 커지고 있다. 기아가 PV5에 이어 PV7, PV9을 차례로 내놓는 것도 단순한 라인업 확대가 아니라 시장 규모와 고객 군을 단계적으로 넓혀 가겠다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박민우 현대차·기아 AVP본부장 사장. ⓒ 기아


여기서 기아의 강점은 제조 전략과 연결될 때 더 분명해진다. 화성 EVO Plant를 PBV 전용 공장으로 운영하고, 인근 컨버전 센터와 글로벌 컨버전 파트너십을 연계해 다품종 소량 생산에 유연하게 대응하겠다는 계획은 기존 내연기관 대량 생산 방식과는 결이 다르다. 

PBV 시장은 승용차처럼 표준화된 대량 판매보다 다양한 고객 요구에 맞춘 민첩한 생산 구조가 중요하다. 결국 PBV 경쟁력은 차를 얼마나 많이 만드느냐보다 고객마다 다른 형태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만들어내느냐에서 갈린다. 기아가 전용 공장과 컨버전 생태계를 함께 강조하는 이유다.

솔루션 전략은 이 사업을 더 PBV답게 만든다. 기아는 12.9인치 IVI 기반의 B2B 특화 애플리케이션, 실시간 차량 모니터링이 가능한 플릿 관리 시스템(FMS), 금융·유지보수·보험·충전을 통합하는 원 빌링(One Billing) 체계를 제시했다. 

이 대목이 중요하다. PBV 사업의 본질은 차량 판매가 아니라 운영비용 절감과 업무 효율 개선에 있기 때문이다. B2B 고객에게 중요한 것은 차량 1대의 성능보다, 그 차량을 포함한 운영 시스템 전체가 얼마나 효율적이냐는 점이다. 차량, 데이터, 정비, 금융, 보험을 하나로 묶는 방식은 결국 기아가 PBV를 하드웨어가 아닌 서비스형 모빌리티로 키우려 한다는 의미다.

채널 전략도 같은 맥락이다. 기아는 PBV 전용 딜러와 웹사이트, 전문 인력(PBV Expert, PBV Master), 24시간 고객지원 및 유지보수 서비스 등을 운영할 계획이다. 승용차 판매채널과 별도로 PBV 전용 체계를 짜겠다는 것이다. 

잭 재코우스키(Zachary Jackowski) 보스턴다이나믹스 아틀라스 개발 총괄. ⓒ 기아


이것은 B2B 고객의 구매 과정이 일반 소비자와 다르다는 점을 기아가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는 신호다. PBV 고객은 외형이나 옵션보다 총소유비용(TCO), 가동률, 유지보수 편의성, 업무 맞춤성에 민감하다. 판매 조직도 그에 맞게 달라져야 한다. 기아가 PBV를 별도 사업으로 보고 있다는 점은 이런 대목에서 더 분명해진다.

PBV가 더 흥미로운 이유는 기아의 미래 전략 전체와 연결된다는 점이다. 이번 발표에서 △자율주행 △로보틱스 △SDV 전략도 함께 담겼다. 자율주행 분야에서는 2027년 말 첫 SDV 개발 완료, 2029년 초 도심까지 포함한 레벨2++ 적용 계획이 제시됐고, 로보틱스에서는 보스턴다이나믹스와 그룹 시너지를 바탕으로 물류 혁신과 제조 혁신을 추진하겠다는 로드맵이 나왔다. 

얼핏 보면 PBV와 별개 영역 같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된다. PBV가 이동 플랫폼이라면, 자율주행은 그 플랫폼의 지능을 높이고, 로보틱스는 물류와 제조의 자동화를 결합해 생태계를 확장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로보틱스 전략에서 기아 PBV(PV7, PV9)에 스트레치·스팟을 결합한 풀스택 솔루션으로, 라스트 마일 딜리버리 시장을 공략하겠다고 밝힌 부분은 상징적이다. PBV가 단순한 전동 상용차였다면 이런 확장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기아는 PBV를 이동수단 그 자체가 아니라, 물류와 배송, 운영 소프트웨어, 로봇까지 묶을 수 있는 허브로 보고 있다. 

이 관점에서 보면 PBV는 기아의 미래 전략 가운데 가장 실물화가 빠른 영역이기도 하다. 전기차와 자율주행이 아직 소비자 시장과 규제, 인프라의 영향을 크게 받는 반면, PBV는 특정 고객과 특정 산업에 맞춰 상대적으로 선명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수 있다.

보스턴다이나믹스 아틀라스, 스팟. ⓒ 기아


결국 PBV는 기아가 수익 구조를 다변화하는 카드인 셈이다. 완성차 시장은 경기 변동과 경쟁 심화, 규제 변화에 민감하다. 반면 B2B 기반 목적형 차량과 운영 솔루션 사업은 상대적으로 고객 락인 효과가 크고, 차량 판매 이후에도 서비스·소프트웨어·정비·금융 등 추가 수익을 창출할 여지가 있다. 

기아가 이번에 '포트폴리오 다각화' 못지않게 '생태계 구축'을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PBV는 단순히 차 한 대 더 파는 사업이 아니라, 한 고객을 더 오래 묶는 사업이다.

과제도 적지 않다. PBV 시장은 아직 본격적으로 검증된 글로벌 승자가 없는 영역이다. 시장이 커질 가능성은 높지만, 동시에 표준화되지 않았고, 고객 요구가 복잡하며, 국가별 규제와 물류 환경 차이도 크다. 

결국 기아가 이 시장에서 앞서가려면 차량 경쟁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컨버전 역량, 소프트웨어, B2B 서비스, 잔존가치 관리, 유지보수 체계까지 모두 묶여야 한다. PBV를 미래 먹거리라고 선언하는 기업은 많을 수 있어도, 실제로 생태계 전체를 운영할 수 있는 기업은 많지 않다. 기아가 이번 전략에서 공장과 솔루션, 채널까지 함께 내놓은 것은 이런 현실을 의식한 행보다.

이번 인베스터 데이의 진짜 함의는 여기에 있다. 기아는 더 이상 단순히 전기차를 많이 파는 회사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 전동화는 기본이고, 그 위에 PBV와 SDV, 로보틱스를 얹어 이동과 물류, 서비스까지 묶는 사업자로 가겠다는 그림을 내놨다. 그중에서도 PBV는 가장 구체적이고, 가장 빠르게 사업화될 수 있는 축이다. 전기차가 승용 시장의 미래를 준비하는 카드라면, PBV는 기아가 '자동차 이후 시장'을 여는 카드에 가깝다.

결국 기아의 다음 성장은 승용차 판매량만으로 설명되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얼마나 많은 차를 팔았는가보다, 어떤 산업과 어떤 고객을 플랫폼 안으로 끌어들였는가가 더 중요해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PBV는 신차 사업이 아니라 사업 구조 변화의 출발점이다. 기아가 이번에 PBV를 단순한 신사업이 아니라 모빌리티 확장의 중심축으로 내세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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