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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커버리펀드 ②] 믿었던 고객…배신한 기업은행

불완전판매 라임과 판박이…90대 투자자에 설명 빈약, 대리사인

설소영 기자 | ssy@newsprime.co.kr | 2020.12.10 13:37:01
[프라임경제] 이른 바 '장하성동생펀드'로 더 큰 유명세를 타고 있는 '디스커버리펀드' 환매가 중단된지 1년7개월이 지났다. 한 동안 이슈의 중심에 섰던 이 사건은 피해자들의 눈물만 남긴채, 점점 세간의 기억에서 희미해져 간다. 환매 중단에 따른 피해자의 주름은 나날이 깊어지지만 사태는 해결될 기미가 없다. 

상품 판매부터 현재까지 숱한 의혹이 제기됐음에도 △운용사 △판매사 △금융감독당국 누구 하나 사태 해결에 발벗고 나서지 않는다. 무시와 회피로 일관하는 운용사. 보여주기 식 행보에만 급급한 판매사. 사태를 관망 중인 금융당국. 관련자들의 이 같은 행보에 피해자의 실망은 점점 커져간다. 본 특집에선 해당 펀드 판매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IBK기업은행을 중심으로 사태를 집중 해부한다. - 편집자 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업은행 디스커버리펀드 사기 피해자들이 윤종원 행장 규탄 및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평생 기업은행과 거래했는데"…고객 신뢰 악용한 기업은행의 '배신' 

IBK기업은행(은행장 윤종원, 024110)을 통해 디스커버리 펀드에 투자한 A씨(93)는 40년 이상 기업은행과 거래해 온 VIP 고객이다. 

A씨의 악몽은 지난해 1월4일 기업은행 PB팀장이 그를 찾아오면서 시작됐다. PB팀장은 A씨에게 "기업은행에서 디스커버리펀드를 판매합니다. 미국 펀드라 미국이 망하지 않는 이상 절대 망할 일 없는 안전한 상품입니다. 노후자금을 6개월만 예치하면 원금에 이자 3%가 확실히 보장됩니다"라고 유혹했다.

A씨는 "제가 디스커버리가 뭔지, 펀드가 어떻게 생긴건지 알기나 하나요. 하지만 기업은행이 추천하니 좋은 상품이겠죠. 그렇게 하세요"라며 기업은행만 믿고 서명을 했다.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A씨는 5년째 치매를 앓고 있고 어깨가 골절돼 휠체어에 몸을 의지해서 생활하는 아내 B씨 명의로도 신규 가입했다. 부인까지 가입시킨 이유는 단 하나. 기업은행을 믿었기 때문이다. 

거동이 불편한 B씨가 계약서를 확인하고 서명하는 게 어려울 것 같아 망설이던 A씨에게 PB팀장은 "아내 분 대신 A씨가 대리 사인을 해도 되니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켰다. 

A씨와 아내가 가입한 펀드는 디스커버리US핀테크글로벌채권 전문투자형 사모투자신탁 37호다. 초기 가입 금액은 각각 17억원과 3억원이었다. 같은달 A씨는 43호도 펀드에도 신규 가입했다. 가입금액은 25억원. 결과적으로 A씨 본인과 아내 B씨 명의로 총 45억원을 펀드에 투자한 셈이 됐다.

두 상품의 만기는 지난해 7월31일과 8월14일이었지만 디스커버리자산운용이 운용하던 DLG의 편입자산 일부에서 디폴트(채무불이행)가 발생하면서 약속했던 이자는커녕 원금도 찾지 못했다. 

◆규정 있으면 뭐하나…구색 맞추기 급급한 기업은행 직원들

A씨가 작성한 서류 중엔 고령투자자를 위한 '투자권유 유의상품 가입 확인서'가 포함돼 있다. 

본 문서는 관리직원과 조력자가 작성하는 두 부분으로 구분돼 있다. 관리직 직원이 작성하는 부분은 △투자자 정보 변경 여부 △투자자금 성격 △투자권유 적법성 △주요 위험에 대한 이해 △건강 및 인지능력이다. 

고령투자자의 '투자권유 유의상품' 가입확인서. ⓒ 기업은행 디스커버리 펀드 대책위원회

A씨가 밝힌 내용이 사실이라면 기업은행 관리직 직원은 최소 3개에서 최대 전항목이 부적합한데도 전 항목에 '적합'으로 거짓 표기를 한 셈이다. '고령투자자 보호'라는 문서 작성의 본래 목적을 망각한 채 형식적으로 문서를 작성한 게 아닌지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조력자 작성 항목은 아예 공란으로 돼 있다. '기업은행 펀드투자 권유준칙'에 따르면 "고령투자자는 신변 또는 건강 상태에 갑작스러운 변화가 발생될 수 있으므로 사전에 조력자를 지정하도록 하고 연락처를 확보하도록 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개인정보보호를 이유로 고령투자자나 조력자의 동의가 없을 경우 생략해도 된다는 단서가 붙어 있다. 이 같은 단서조항을 붙여 조력자를 지정하지 않도록 만든 건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난 2019년 12월2일 기업은행 펀드투자 권유준칙 중 '펀드 투자 권유시 고령투자자 보호기준'이 개정됐다. 개정된 주요 내용은 △80세 이상의 초고령자에게는 '투자권유 유의상품' 투자권유를 자제한다 △그럼에도 고객이 투자를 원할 경우 고객에게 적합하지 않은 상품임을 설명하는 등 투자권유를 자제한다 △제1항 및 제2항에도 불구하고 고객이 투자를 요구하는 경우 은행은 가족 등 조력자에게 조력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고지하고 가족에게 조력 받길 꺼려할 경우 가족을 대신해 관리직 직원이 동석해 고객을 조력하고 고객의 이해여부 등을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내용이다.

거꾸로 얘기하면 기업은행은 2019년 12월 펀드투자 권유규칙(고령누자자 보호기준)이 개정되기 전에는 △초고령자에게 '투자권유 유의상품'을 투자 권유해 왔으며 △조력자 여부에 대한 중요도를 높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을 유추할 수 있다.  

◆"믿던 기업은행에 당했다" 단순 불완전 판매 아닌 '명백한 사기'

A씨는 90세가 넘은 초고령자다. 그는 반평생을 함께 한 기업은행을 믿은 죄밖에 없다. 디스커버리펀드사기피해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비단 A씨 외에도 다수의 노인이 비슷한 절차에 따라 펀드에 가입했다"고 말한다. 

이것이 대책위 측에서 "이번 사태가 단순한 불완전 판매를 넘어선 명백한 사기"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기업은행은 지난달 11일 디스커버리펀드 피해자들에게 '선가지급‧후정산'안을 결정했다. 고객과 기업은행 간 개별 사적화해계약을 통해 선가지급금을 지급하고, 향후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를 거쳐 결정된 최종 보상액과 환매 중단된 펀드의 최종 회수액이 결정되면 차액을 사후 정산할 예정이다.

이런 기업은행에 대책위는 반발하고 있다. 

대책위 관계자는 "기업은행이 고객의 투자성향을 억지로 상품등급에 맞춰 가입시켰고 자본시장법 50조를 위반해 '투자자정보확인서'를 작성했다"고 주장했다. 

대책위에 따르면, A씨는 2017년 4월 C증권 펀드 가입 때는 적극투자형(3등급)이었다가, 2019년1월 US핀테크글로벌채권펀드 가입 시 공격투자형(1등급)으로 변경됐고, 같은 해 3월 PB팀장이 가입시켰던 D증권 펀드 계약 시에는 안정추구형(5등급)으로 분류됐다.

대책위가 98명의 피해자를 선별해 샘플조사한 바에 따르면, 계약 당시 '투자자정보확인서'를 고객이 직접 확인해 체크하거나 설명을 듣고 정보확인서에 서명한 경우는 단 한 건도 없었다. 

고객은 확인서 성명란에 이름만 기재하고 도장날인 또는 서명만 했을 뿐 각 항목의 체크사항은 판매직원이 임의로 작성했다. 심지어 기업은행 PB팀장이 대리 서명한 경우도 발견됐다는게 대책위의 설명이다. 

고객의 신뢰를 악용해 실적 채우기에 급급했던 기업은행. 사태 해결 전까진 기업은행의 평판은 날개 없는 추락을 계속할 것으로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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