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키코 공동대책위원회가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안을 거부한 씨티은행과 산업은행에 대해 비판했다. ⓒ 키코 공동대책위원회
[프라임경제]
지난 2010년 불거졌던 '키코(KIKO) 사태'가 무려 10년이 지난 현재 또 다시 은행권 화두로 도마에 올랐다. 이는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이 제시한 분쟁조정안이 은행사별 입장에 따라 수락 여부가 크게 엇갈렸기 때문. 특히 조정안 수락 여부와 관련된 '업무상 배임' 등의 법률적 리스크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시비를 가리지데 더욱 난항을 겪고 있는 형국이다.
논란의 중심에 놓인 '키코(KIKO)'는 환율이 일정 범위에서 변동하면 약정한 환율에 외화를 팔 수 있지만, 범위를 벗어나면 큰 손실을 보는 파생금융상품이다.
지난 2008년 전후 환위험 해지 목적으로 키코 상품을 가입한 중소기업들은 금융위기 당시 심한 환율변동으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이후 피해기업들이 민사소송을 제기, 대법원은 2013년 9월 불공정성 부분에서 원고 패소 판결, 불완전판매에 대해서는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금감원 '고객 보호의무' 혹은 배임죄 '법률적 리스크'
대법원 판결로 키코 사태가 일단락되는 듯 보였지만, 교수시절 당시 '은행이 피해 기업들을 구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윤석헌 금감원장이 취임하면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실제 금감원을 비롯한 금융당국이 지난해 5월, 법원 판단을 받지 않은 피해기업 대상으로 지원방안을 마련하면서 '키코 사태'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나아가 단순 지원방안에 그치지 않고, 그해 12월 분쟁조정위원회(이하 분조위)을 통해 '피해액 15~41%를 배상하라'고 권고하면서 관련 은행들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한 상태다.
분조위는 키코 사태에 대해 자본시장법 제 46조와 47조 위반을 이유로 불완전판매 책임을 인정했다.
자본시장법 제 46조는 투자자 정보를 파악해 위험성향을 분류하고, 해당 상품이 고객에 적합한지를 판단해야 한다는 '적합성의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제 47조의 경우 투자자에 상품 내용과 위험 등을 설명하고 이해했음을 확인해야 한다는 '설명의무'를 판시했다.
즉 금감원은 관련 은행들이 고객들에게 상품 리스크를 적절히 설명하지 못했으며, 이해시키려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해당 분조위에 따른 권고 배상금액은 신한은행 150억원을 비롯해 △우리은행 42억원 △산업은행 28억원 △하나은행 18억원 △대구은행 11억원 △씨티은행 6억원 총 255억원이다.
당시 금감원 관계자는 "은행은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금융기관에 비해 더 큰 공신력을 가지고 있다"며 "위험성이 큰 장외파생상품 거래를 권유할 때 더 무거운 고객 보호의무를 부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관련 업계에서는 이번 금감원 조치가 적절치 못하다는 입장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사실 배상금액 등은 신뢰 회복이나 이미지 개선 차원에서 바라본다면 은행 입장에서 부담스런 액수는 아니다"며 "하지만 손해배상 소멸시효가 지난 사건에 대해 배상할 경우, 법적으로 '업무상 배임죄'에 해당할 수 있다"며 우려했다.
업무상의 횡령과 배임(형법 제356조)에 따르면, 타인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업무상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를 해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 3자에게 취득하게 해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 징역 10년 이하 또는 벌금 3000만원 이하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자칫 금융당국 권고대로 배상 결정을 내렸다가 '주주들의 이익을 지키지 못한 배임'이라는 부작용이 우려되는 상황. 대법원 판례(2005도4915 판결)도 이사회나 주주총회 결의가 있었더라도 배임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고 정의한 바 있다.
물론 금감원 측은 "키코 배상은 배임에 해당하지 않는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경영진이 평판리스크와 소비자보호, 감독당국 권고 등을 판단해 키코 배상 지급을 결정할 경우 배임죄 구성요건인 '손실을 가하는 고의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씨티와 산업은 '왜' 거절했나?
하지만 이는 금융 당국의 자의적 해석일 뿐, 은행 입장에선 혹시나 모를 법률적 리스크까지 떠안고 가기에는 더욱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때문에 권고안 수용 여부를 두고, 금감원과의 관계냐 혹은 법률적 리스크냐를 저울질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 상황이다.
현재까지 금감원 권고를 거부한 은행들은 씨티은행과 산업은행이다. 두 은행의 공통점은 다른 관련은행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금감원과의 관계에 있어 자유로운 외국계, 국책은행이라는 점이다. 이는 금융당국 눈치보단 '배임죄'라는 법률적 리스크에 무게를 둘 수 있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특히 산업은행은 정책자금 지원 및 산업 구조조정에 있어 정부의 직접적 영향을 받는 국책은행이다. 동일한 행정부 소속 금감원 영향력보단 사법부의 법률적 리스크를 우선시 할 수 있는 배경을 가지고 있다.
반면, 씨티은행의 경우 대법원 판결에 따라 배상을 원치 않는 글로벌 본사 의중을 크게 반영한 것으로 설명된다.
대신 법원 판결을 받지 않은 기업 중 금감원이 제시한 일부 기업에 대해 사실관계를 검토해 불법 행위에 의한 손해를 책임지는 '배상'이 아닌, 합법 행위에 따른 손실에 대한 '보상'을 고려한다는 방침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딜레마 늪에 빠진 하나·신한
이들 씨티·산업은행과 입장이 다른 시중은행들은 여전히 상황 파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우선 그간 '손태승 회장 연임'으로 금감원과의 대립각이 예상됐던 우리은행은 DLF 관련 자율배상을 신속히 진행하는 등 '손 회장 연임'을 제외한 모든 당국 요청에 의외로 적극적인 모습이다. 키코 사태 역시 관련 은행들 중 유일하게 조정안을 적극 수용, 배상까지 완료한 상태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조정안 수용은)이사회에서 법적 검토를 거쳐 결정한 것"이라며 "손태승 회장의 경우 지배구조 안정을 위한 이사회 결정이 있었다. 문책경고 정당성에 대해 법원 판단을 받아보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하나은행과 신한은행은 법률적 리스크와 금감원을 두고 여전히 이러다할 결정을 내리지 못하면서 수용 여부 시한 연장을 요청했다. 기한 내 추가 사실 확인 및 법률 검토 등을 거쳐 차기 이사회에서 수용 여부를 논의하겠다는 것이다.
이중 하나은행은 손태승 회장과 같은 중징계를 받은 함영주 부회장이 '차기 회장'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에서 권고안 거부시 향후 금감원 움직임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나마 우리은행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시간적 여유가 있는 하나은행 입장에선 손태승 회장의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 인용 여부를 지켜본 이후 입장을 정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신한은행의 경우 조용병 신한금융그룹 회장이 채용비리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받아 사실상 연임이 확정됐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문제가 산재된 상태다.
채용비리는 물론, 키코 및 라임자산 운용 사태 등 주주와 소비자간 이익 충돌과 금융회사 장기 신뢰 확보 등이 달린 방정식을 풀어야한다는 숙제가 주어진 셈. 물론 당면한 문제는 경영진과 이사회 결정에 달려 있지만 신한은행 역시 향후 금감원 행보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금융권에선 재연장 시한인 한 달간 하나은행과 신한은행이 우리은행 결과에 따라 금감원 권고 수용 여부를 판단할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여전히 은행 내·외부에서 배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하나은행과 신한은행 판단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