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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그 많던 삼성변호사들, 어디로 갔나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09.09.11 09:53:55

   
   
[프라임경제] 삼성전자와 샤프간의 특허소송이 눈길을 끌고 있다. LCD TV와 모니터 등의 미국 수출길이 막힐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샤프는 2008년 1월 미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삼성전자가 자사 특허 4건을 침해했다며 특허침해 금지소를 제기했다. 특히, 올해 6월 ITC로부터 삼성전자가 샤프의 일부 특허를 침해했다는 예비판정을 받아 냈다.

10일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11월 열릴 ITC 최종 판정 도마에 오를 4건 특허 중 단 한 건이라도 삼성전자가 샤프의 것을 침해했다는 판결이 나오고 미 대통령의 재가가 나오면 해당 특허 기술을 사용한 삼성 제품은 미국 판매가 금지된다. 개미구멍에 방죽 무너지듯, 미 TV시장에서 19.9%를 차지하는 삼성전자가 5%짜리 샤프에게 무너지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호들갑이 기우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문제는 삼성그룹이 굵직한 국제 특허 분쟁을 처음 겪는 것도 아니고, 이전부터 이 방비를 할 관심이나 자금력 등 깜냥을 갖추지 못했던 게 아니라는 데 있다. 삼성은 2004년부터 가히 변호사들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에 비견될 만큼 법무 조직 강화에 힘을 쏟았음에도 유사한 일이 반복됐다는 것이다.

당시 언론에서는, 2004년 삼성SDI가 후지쯔와의 PDP 특허 분쟁에서 시달린 경험을 와신상담의 기회로 삼아 첨단의 법무조직을 꾸리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특허 전쟁을 대비하고 미래 먹거리를 위해 해외 법률가들과 맞설 두뇌집단을 꾸릴 것이라는 성급한 전망도 뒤따랐다.

실제로 이건희 당시 삼성그룹 회장도 "판검사 출신 외에도 로펌에 가있는 사람도 유능하면 영입하라"는 말까지 하며 강한 의지를 불태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때 300명 영입설까지 신빙성 있게 나돌았던 삼성은 현재 질과 양 모두에서 수위권의 법무조직을 갖고 있다는 평가다.

이미 그룹에 이런저런 보직을 받아 일하는 변호사는 100명을 넘어섰다는 게 정설이고, 공식적으로 '법무실 소속'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언론들이 보는 인사들만 해도 10여명에 이른다. 그간 삼성에 오고간 많은 변호사들의 주요 면면을 보면, 서우정 변호사(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수1부장), 김상균 변호사(전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 이종왕 변호사(전 대검찰청 수사기획관) 등 화려하기 그지없다. 이종왕 변호사는 실제로 '오너'의 의지대로 굴지의 로펌 김&장 출신을 모셔온 케이스이기도 하다. 김용철 변호사도 특수부 검사 출신이다. 더욱이 이들 '삼성의 변호사' 중 일부는 경력 등을 감안 부사장을 비롯, 상무 등 고위직까지 받고 있는 등 대우면에서도 일에만 몰두하기 좋은 환경으로, 일단은, 보인다.

즉 법무실에 앉은 기라성 같은 법조인들이 산하 기업에서 일하는 변호사들을 주도면밀하게 부려 일하는 경우 해결 못할 사건이 지구상에 없을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던 것도 충분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하지만 2004년 삼성SDI-후지쯔 분쟁 이후 5년이 지난 지금, 삼성은 또 한 번 심각한 기로에 섰다. 삼성전자-샤프간 분쟁이 참패로 끝나는 경우 미국 TV시장에서의 손실이라는 유형의 손해는 물론, '특허 전쟁에 약한 종이호랑이'라는 이미지 문제, 즉 무형 손실을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5년 전 호기롭게 법무 조직 강화에 나섰던 것을 조용히 주시하고 있었을 해외 기업들은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요새 유행한다는 '특허 트롤(특허권 전문 공격을 일삼는 로펌)'의 주공격 대상에 추가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이 상황에서, 삼성이 그 많고 유능한 변호사들을 영입한 이후 그럼 이들은 오늘날 불거진 혹은 앞으로도 불거질 특허 분쟁에 대비한 선제적 방어에 나서지 않았던 것인가의 문제가 남는다.

기업체 법무실에 소속된 변호사는 송사(법정 변론)에 직접 나서지 않는다. 그럼에도 삼성이나 다른 대기업들이 많은 변호사 인재들을 빨아들인 것은 법정 분쟁을 '예방'하는 일에만 매달려도 충분히 남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법무 영역 중 가장 '꽃'이 무엇이냐는 설왕설래에서 언론과 국민들의 기대와 분석은 때마침 새로운 한국의 미래 성장 동력, 고부가가치 먹거리인 특허에 가 닿았음은 이미 언급한 바와 같다. 

하지만 5년만에 삼성은 다시 유사한 수렁에 빠지고 말았다. 특허를 둘러싼 법률 분쟁이야 첨단기술을 다루는 경영계에서는 병가지상사라 볼 수도 있겠으나, 삼성 변호사들은 아마 특허 문제 같은 데 주력하기엔 너무 바빴던 모양이라는 점이 걸린다.

기실 그 못지 않은 '다른 중요한 일'에 삼성의 인제들은 피곤한 일을 많이 했던 게 사실이다.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은 지리한 법정 공방으로 불거졌다. 이재용 후계 구도와 연관된 일이니 구조조정본부(현 전략기획실) 못지 않은 '전가의 보도' 법무실이 안 바빴을 리 없을 것으로 많은 사람들은 보고 있다. 김용철 변호사(전직 삼성 법무실 관계자)가 그룹의 '떡값 통장'이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명의로 개설됐다고 주장하는 망신스러운 사태는 주거래은행인 우리은행에 불똥을 튀기는 것을 시작으로 특별검사법이 통과되는가 하면, 노회찬 당시 의원이 '삼성장학생 의혹 검사'의 명단 공개에 나서는 데까지 번졌다. 그 와중에 삼성에서는 언론 때문에 일이 더 시끄러워지는 것을 막는 MBC 보도금지 가처분을 이끌어 내는 작은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이것도 법무실의 주도적 밑그림 덕이라고 분석했다.

이렇게 '그룹의 미래'(?)를 위해 모두 뛰어도 모자랄 일들이 끊이질 않았으니 '삼성과 국가의 미래 먹거리'(?)를 연구하는 문제는 언감생심이었지 않나 싶다. 그리고 지금 삼성은 그 대가를 비싸게 치를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내로라 하는 삼성 법무조직이 5년여를 보냈음에도 겸사겸사 하는 식으로는 특허 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얻지 못했다는 점은, 다른 그룹들의 특허 분쟁 대처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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