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오세훈 서울특별시장은 입지전적 인물일 뿐만 아니라 몇 안 되는 언행일치형 인사로 꼽히며 주목받고 있다.
오 시장은 삼양동 판자촌에서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내고 명문사학 고려대로 진학, 대학원 시절에 사법시험에 합격한 이래 당시로서는 전인미답의 영역이던 환경권 소송에서 명성을 날렸다. '오변호사 배변호사'라는 문화방송 프로그램에 출연, 인지도를 높인 그는 16대 국회 시절 여의도에 입성, 신인으로 주목받았다.
그는 한나라당 인적 쇄신론에 감명, 스스로 당에 충격파를 주기 위해 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아직도 '오세훈법'으로 불리는 선거법 개정 움직임을 주도하는 등으로 인해 대외 지명도가 높았던 그가 '떼놓은 당상'이라는 금배지를 다시 한 번 달지 않고 나간 것은(서울시장을 염두에 둔 포석이었다는 이후 각종 언론의 해석기사로 이어졌으나) 지금도 "아깝다"는 소리를 듣는 대목이다.
그가 이런 결단을 내린 데에는 위에서 언급한 인적 쇄신론이 당시 당을 휩쓸고 있었다는 점에서 나선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그의 곧은 성품이 당시 정치문화를 못 견뎌냈기 때문이라는 풀이를하기도 한다.
초선인 그가 어느 정치적 격변 상황에서 동료 의원들과 국회의장 출근저지에 '몸으로 떼우는' 역할을 맡고 나섰는데, 한때 그것을 무척 부끄러워 했다는 후문도 있다. 당시 문화방송 어느 시사프로그램은 그에 관한 해석을 하면서, 사건 당시 방송 카메라에 잡히자 자장면을 먹다가 슬그머니 일어서 자리를 피하는 그의 화면을 인용하기도 했다.
오 시장은 이때 아마 당리당략에 '동원'된 자신의 모습에 상당히 자괴감을 느꼈던 것 같다는 해석은 그래서 나온다. 그리고 실제로 오 시장은 이후 금배지를 다시 다는 대신 스스로에게 떳떳한 길을 택한 바 있다는 풀이도 여기서 연유한다. 그가 '강효리'로 일컬어지던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을 누르고 시장이 된 것은 이런 그의 행보가 음으로 양으로 서울시민들에게 흠모의 정을 쌓은 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최근 박연차 리스트라는 것으로 인해 여의도가 시끄럽다. 이광재 의원, 추부길 목사 같은 이들이 치욕스러운 낙마를 한 데 이어 여당의 중진인 박진 의원이 연루 의혹을 받아 검사실에 불려가는 상황까지 연출됐다.
일찍부터 '친노 정치인'으로 언급되던 이 의원이나 '마귀 발언 논란'으로 유명한 추 목사야 수신제가에 어느 정도 무리수를 둬 왔다는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니 충격이 덜할 수 있지만, 박 의원의 소환은 그 자체로 충격파로 작용했다.
박 의원은 서울대를 졸업하고 외무고시에 합격한 다음, 옥스포드대에서 수학했다. 한나라당 대변인을 거쳤고 정치 1번지인 종로를 차지했다. 그 긴 여정에서 그는 항상 깨끗한 정치인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런 그가 검찰청에서 15시간 조사를 받았다는 점은 여의도는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충격이다. 설마하니 검찰이 여당 3선 의원을 벽보고 서 있으라며 무의미하게 망신을 주는 데(먼 과거에는 그런 조사 기법이 있었다는 의혹이 없지 않았으나 사실이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15시간을 허비하지는 않았으리라 믿는다. 따라서 장시간 강도높은 장기 조사를 받은 자체로 우려는 깊어진다. 알차게 15시간을 조사할 만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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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박 의원은 절대로 부패 사범이 아닐 것으로 결론지어질 것으로 믿지만, 만에 하나 법적인 책임은 차치하고라도, 도덕적으로라도 흠이 나온다면 이는 참으로 문제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만약 일말이라도 석연찮은 점이 드러난다면 박 의원은 정치적 후배이자 같이 서울시장 자리를 놓고 경합을 벌였던 오 시장처럼 금배지를 스스로 던지는 결기를 보여서라도 종로 지역구민과 한때 그를 서울시장으로 모실 뻔 했던 서울시민들 앞에 사죄해야 할 것이다. '돌고래 박진'이 오세훈만 못한 박진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임혜현 기자/프라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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