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동판에는 "오 신이시여, 당신이 만든 바다는 더없이 넓고 제 배는 더없이 작나이다"라는 '브루타뉴 어부의 기도'가 새겨져 있다.
긴박한 대치 정국, 최악엔 전쟁까지도 불가피했던 상황에서 승리를 거머쥔 미국 수뇌부의 환호작약을 더 강렬히 잡아내는 대신 이렇게 작은 동판에 새겨진 '겸양의 문장'을 비춤으로써 효과를 더 크게 했다는 후문이다. 겸손함이라는 체리 한 알을 얹음으로써, 케네디 정부 구성원들의 위기관리 능력과 뚝심이 만든 칵테일을 돋보이게 한 셈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런 바탕이 깔려 있는 상태에서 위기관리 능력이 구축되었기 때문에 최종승리를 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해외 순방 중인 이명박 대통령이 7일 인도네시아에서 최근 불안한 환율에 관한 견해를 피력했다고 한다.
대통령은 이번 순방에 수행한 경제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근본적으로 정부는 환율이 안정될 수 있는 여러 요인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한중일 관계도 과거 어느 때보다 환율 안정에 도움을 줄 수 있을 정도의 완벽한 대화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과거 외환위기 때 어려움을 겪었던 일본이 이번에는 가장 앞장서서 협력할 것이라며 정부가 할 일은 다 하겠다고 다짐했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최근 환율이 치솟고, 3월 위기설(일본계 자금이 대거 한국을 빠져나가 위기가 초래된다는 위기설) 등으로 마음고생이 심한 경제인들을 위로하고자 하는 메시지로 읽힌다.
최근까지 당국이 외환위기 등의 가능성을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해 온 바를 국민들도 모르지 않는다.
한미 통화 스와프에 이은 한중일 통화 스와프, 그리고 금년 2월의 아시아 공동펀드 확대에 이르기까지 환율 불안을 해결하기 위한 당국의 여러 작품들이 언론의 주목을 끌었다.
지난 달 20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윤증현 재정부 장관은 태국 푸켓에서 열리는 아세안+3(한.중.일) 특별 재무장관회의에 참석해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 다자화기금을 이같이 확대하는 내용에 합의했다. 한미 통화스와프, 한중일 통화스와프에 이어 CMI 기금까지 확대함에 따라 최근 불안하게 움직이고 있는 외환시장이 안정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찬사도 나왔다.
아마 이 대통령의 이번 7일자 발언은 이러한 몇 가지 열매를 염두에 두고 "우리도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깐 발언이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또 막후에서 구상 및 추진 중인 여러 논의들을 살짝 귀띔하는 일종의 서비스로도 풀이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여러 사정을 종합하더라도, 이번 발언은 적당하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그간 이 대통령은 주가 3000선 발언 등을 비롯해 여러 발언이 빗나가 시중의 이야깃거리가 됐다. 이번 말씀은 말씀 자체의 우국충정에는 의심을 제기하는 이가 없겠지만, 적절하지 못한 때 나왔다고 생각된다.
이를 테면 환율에 대한 '구두개입(당국이 환율 시장 상황에 대해 코멘트나 개입할 듯한 조짐을 줘서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일)'인 셈인데, 적당하지 않은 구두개입은 자칫 결과가 좋지 않으면 위신 추락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가벼워 보일 수 있다'는 우려다.
문제는 또 있다.
행여 이러한 자신에 찬 발언과 이후 당국의 고군분투와 지략으로 행여 환율 사정이 나아진다고 해도, 지금 당장 고환율로 고통받는 기업인 등 국민들 앞에서 지나치게 자신있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상황의 심각성을 잘 모른다'거나 '과도하게 자신만만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오죽하면 시중에는 "각하는 '내가 그것 해 봐서 안다'는 말씀을 너무 자주 한다"고까지 하지 않는가?
청소부 해 봤다, 좌판 장사 해 봤다는 말씀들이 어려운 현장 사정을 다 알고 지금도 항상 고민하고 있다는 진정성 있는 울림으로 다가오는 게 아니라, 난 뭐든지 다 알고 뭐든지 다 할 수 있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환율불안이라는 거대한 바다에 맞서고 있는 우리 한국 경제에 대해 "안정 요소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이 과연 안정감 있는 발언으로 받아들여질지 미지수다.
다시 영화 '13일' 이야기로 돌아가서, 무한용맹의 '사자의 심장'보다는 영화 속 동판과 같은 겸양의 정신이 지금 환율 불안에 맞서는 당국에게는 더 필요하지 않은가 생각한다.
임혜현 기자/프라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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