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린트
  • 메일
  • 스크랩
  • 글자크기
  • 크게
  • 작게

[기자수첩]한국씨티은행 앞에서 오일쇼크를 생각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09.03.06 12:11:06
[프라임경제] 서울에 이국적인 지명이 붙은 장소가 더러 있다. 우선 여의도에는 앙카라 공원이 자리잡고 있고, 강남에는 테헤란로라는 거리가 있다. 앙카라 공원은 금융중심지 끝자락에 자리한 녹지라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머무는 곳이다. 테헤란로는, 지금은 좀 시들해졌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 우리 나라 신성장동력으로 각광받던 '벤처 기업'들이 대거 웅지를 품고 자리잡아 유명세를 치렀다.

앙카라 공원은 터키 수도 앙카라에서, 테헤란로는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차용한 것이다. 앙카라 공원은 북한의 불법 도발을 격퇴하고자 한국전에 병력을 보내준 혈맹의 인연을 감사하는 차원에서, 테헤란로는 오일쇼크 당시 팔레비 왕조의 후의로 위기를 넘긴 것에 대한 사의로 붙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이러한 거리와 공원이 오늘날 세계 무역 규모 10위권의 나라로 우뚝 선 한국의 심장부과 뇌에 해당하는 곳에 자리하게 된 것도 어찌보면 운명이라고 할 수 있는 인연이 작용한 덕으로 보인다. 항상 이러한 중요한 곳에 근무하는 모든 이들이 두 나라의 고마움을 새기게 된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보다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명소가 한 군데 더 있다.

서울의 중심지인 중구 다동에 자리잡은 한국씨티은행이 그곳이다. 한국씨티은행은 1960년대부터 우리와 연을 맺은 씨티은행 한국사무소가 훗날 독립법인인 한국씨티은행으로 커지면서 우리 금융업에 본격적으로 뿌리내리게 된 외국계 기업이다. 한미은행을 합치면서 한국씨티은행은 조직효율과 조직규모 면에서 한 단계 도약을 하게 됐다.

한국씨티은행은 500만원 이하의 평균잔고 고객에 대해서는 예금을 빼달라고 요청해 '파문'을 일으키거나, 파이낸셜업에 다른 어느 금융회사보다 일찍 눈을 돌리는 등 여러 행동으로 인해 선구자라는 평과 함께 돈 밖에 모르는 금융기업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이러한 시각이 국내에 알게 모르게 깔려 있기 때문에 지난 2월 말 외환을 대규모로 사들인 바에 대해서도 엄청난 비판에 시달린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 "언제고 원화 자산을 달러화로 바꿔 한국을 뜰 수도 있는 기업, 돈만 아는 씨티"라는 인식이 국민 공감대로 있지 않고서야 나오기 어려울 정도로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한국씨티은행이 이번 미국 씨티그룹 위기 국면 혹은 그 전에도 시시때때로 언론의 질타를 받은 것은 한국씨티은행 스스로 초래한 바가 크다. 그러나, 아무리 주변과 다른 체질로 인해 한국 금융계에 (아직도) 적응을 못하고 나름의 문화를 고집한다 해서, 필요 이상의 비판과 질시까지 가해도 되는 것 역시 아닐 것이다.

이번에 여러 번 미국 씨티그룹 위기설 국면마다 한국씨티은행은 문제없느냐는 논란이 불거진 가운데, 급기야 현지시간으로 5일에는 미국 뉴욕증시에서 씨티그룹 주가가 장당 1달러를 밑도는 사상 초유의 사태까지 이어졌다.

이러고 보니 또 한 번 "한국씨티는?"이라는 의문이 제기될 법도 하다.

하지만 이렇게 바다 건너 씨티그룹이 체면이 말이 아니게 구겨진 상황과, 한국씨티은행의 미래는 그럼 어떨 것인가를 생각하기에 앞서, 이 씨티 주가 폭락의 날에 새삼 씨티그룹이 한국에 보여준 후의를 함께 생각하게 된다.

일찍이 오일쇼크 때 2억 달러(당시 화폐로)를 조달하도록 우리 정부를 도운 바 있고, 또 98년 외환위기가 터진 직후에는 한국의 은행 대외 부채를 조정하도록 주선(210억 5000만 달러)한 공이 씨티에게는 있다.

그리고 극히 최근의 일로는, 한미 통화스와프가 체결되는 데 어느 정도 '막후 역할'을 했다는 것에 대해, 기자가 아는 한국씨티은행 직원 한 명은 무척이나 긍지를 갖고 있기도 하다.

이런 공로로 70년대에는 숭례장, 90년대 말에는 흥인장 이렇게 두 번의 훈장을 받는, 은행으로서는 드문 경험을 씨티는 하기도 했다.

주가 가치가 휴지나 다름없어진 씨티의 추락 상황에도, 우리 나라가 씨티에 진 마음의 빚이 줄지는 않는다.

   
   
또 그래야 한다고 본다. 친구가 형편이 어려워진다고 해서, 그가 과거 베풀었던 후의를 잊고 깔보는 마음을 키울 정도로 한국이 무도한 나라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한국씨티은행이 개개의 사건으로 잘못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엄정한 비판'이 가차없이 가해져야겠으나, '불필요하게 과도한' 위기론은 약간 조정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 한다(물론 그 과도한의 경계선을 찾는 일은 어렵기는 하다).

한국씨티은행이 '얄미운 돈벌레'라 손치더라도, 그 정도 최소한의 예우는 받을 자격은 이미 오래 전 인연으로 얻은 터이다. 그러므로, 다동을 지나면서 씨티은행 앞을 지날 분이 있다면, 테헤란로나 앙카라 공원에서 잠시잠깐 느끼는 감흥과 같은 정도의 사의를 갖는 것도 과공비례는 아닐 것이다. 한국씨티은행 위기론에 '지나치게' 재미를 느끼는 것을 지양하자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본다.

임혜현 기자/프라임경제

  • 이 기사를 공유해보세요  
  •  
  •  
  •    
맨 위로

ⓒ 프라임경제(http://www.newsprime.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