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씨카드와 비자카드간 대립각을 넘어서서, 한국 카드업계가 할 말을 쏟아내고 있는 도발적인 대변인 언행이 눈에 띈다.
우선 문제는 비자카드가 만들었다. 국내 카드사들에게 적용하는 해외사용수수료율을 인상하겠다고 방침을 발표하자, 왜 한국만 차별하느냐며 비씨카드가 공세를 취한 것이다. 장 사장은 비자카드 고위자문역을 사퇴했다.
비씨카드에 대해,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디피아'는"비씨카드(BC Card)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신용카드 회사로, 서울특별시에 본사를 두고 있다. 'BC'의 의미는 Bank & Credit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국내 카드사들과 두루 연관성을 갖고 있는 일종의 허브 역할로 탄생한 회사특성상, 카드계에서 위치가 높다.
현재 문제의 비자카드 자문역에는 국민카드 등이 맡고 있다. 국민카드 등은 KB국민은행과 연관이 깊고, KB금융지주가 움직였다는 해석을 낳을 수 있어 자중해야 하는 처지다. 결국 다른 회원사들을 대신해 총대를 맸다는 후문을 낳고 있다.
더욱이 장 사장이 누구인가? 한국외대 영어과를 마친 후 금융권에 투신, 씨티은행 이사, 국민은행 상임감사를 거치면서 전문가로서의 명망을 쌓아온 인물이라 발언권도 막강하다.
장 사장은 비자카드가 해외사용수수료율에 대한 인상 방침을 철회한 다음에도, 사퇴 의사를 번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 걸음 더 나아간 점이 눈에 띈다.
장 사장은 19일 성명을 다시 발표, "사퇴 번복 의사가 없다"고 일갈하면서 아예 이번에 불합리한 국내수수료율 인상 방침은 유지되는 상황에 대해서도 고칠 태세를 분명히 했다.
카드사들은 그동안 해외결제망을 사용하는 조건으로 국내 수수료를 관행적으로 지불해 왔다. 이에 대해 장 사장은 "해외사용수수료는 그대로 둔다면서 국내사용수수료율 인상을 고수하는 것은 아직도 납득할 없다"고 말했다.
한 마디로 명분상 해외수수료율에서는 한 걸음 양보하지만 '돈 되는 사업'에 대해서는 인상을 고수하는 게 한국 카드계를 조삼모사로 농락한 게 아니냐는 날카로운 공세인 셈이다.
이에 대해 국내 카드 산업계에서는 내놓고 내색은 안 해도 시원하다는 반응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비자카드가 국내 카드에 대해 합리적인 요율을 적용할 때까지 투쟁을 계속하겠다는 장 사장의 태도가 가려운 곳을 긁어줬다는 공감대인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카드업계의 '훈남'으로 떠오른 장 사장의 행보에 대해, 이것이 전국민적인 성원을 받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치 않다.
일단 도하 언론들이 대개 "외국 카드사의 횡보에 맞선 국내 금융인의 소신 행보"라는 콘셉트로 기사들을 쓰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런 면도 없지 않지만, 과연 장 사장이나 국내 카드계가 이러한 입장을 밝히는 게 논리적으로 타당한지, 그 자격에 대해서는 논의의 여지가 있다.
이는 근래에 스크린 쿼터 축소 반대를 목소리 높여 외친 영화인 등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구조를 같이 한다. 이런 맥락에서 특히 용기있는 장 사장의 행보는 '올드 보이'로 명망 높은 배우 최민식과 겹쳐 보인다.
최민식은 거대자본인 미국 영화산업이 국내 영화계를 고사시키는 것을 막는 최소한의 안전판이라는 점에서 1인 시위 등 행동에 나선 영화인 중 한 명이었다. 그의 몸을 던진 행동에 뭉클했다는 여론도 높았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최 씨의 이러한 행동에 의문을 제기했다. "과연 배우 최민식 씨가 영화산업계의 총대를 매고 나설 만한 자격이 있느냐?"라는 논란이다. 고액 개런티, 러닝 개런티 요구 논란 등 때문이다. 이는 일부 영화평론가와 교수 등이 주장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들은 최 씨가 이런 과실을 당당히 누린 기본 사유관이 '자본주의 논리'라고 해석했다. "내가 열심히 연기해서 그만큼 수익을 가져간다"는 것이 최 씨 뿐만 아니라 고액 개런티를 받는 영화배우들의 기본 항변논리다.
하지만, 이들의 수입의 몇 분의 일에도 못 미치는 수입으로 수준 이하의 경제사정을 꾸리는 많은 영화 스태프들이 공존하는 구조에 대해 최 씨뿐만 아니라 어느 영화인도 크게 나서서 구조 개선을 하거나, 자기 몫을 떼어준 예는 없다시피하다.
최 씨도 어느 기회를 통해 "돈이라도 떼어주라는 것이냐?"라고 항변했다지만, 그런 항변에 대해서도 어느 영화계 사정에 밝은 평론가는 "스크린쿼터를 막자는 1인 시위도 정치적 쇼 아닌가? 아니할 말로 스태프들을 위해 한 1억 떼어주는 쇼는 왜 못 하나?"라고 재공격을 하기도 했던 것으로 안다.
바로 이 점에서 대배우 최민식과 장형덕 비씨카드 사장이 겹쳐보인다. 비씨카드가 그간 '기업'으로서 훌륭하게 국내 카드 산업계를 지탱해 왔음을 안다. 또 비씨카드가 인연합회와 업무 제휴를 체결하는 등 나름대로는 중소상업인이나 재래시장 살리기를 고민해 왔음도 안다. 국내 카드업체들이 리볼빙 등 여러 선진 제도를 벤치마킹, 소비자 편익에 공헌하는 데 부지런하게 움직여 왔음도 공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비씨카드와, 국내 카드계는 이러한 몇 가지 장점 외에도, 공익적 역할론, 즉 노블레스 오블리제에는 그다지 좋은 평을 못 듣는 것이 더 비중이 크다. 기회가 닿을 때마다 고객 혜택을 줄이는 쪽으로 제도를 고쳤다는 논란도 그렇지만(하단의 관련 기사 링크 참조), 높은 연체 수수료율, 카드 대란의 원죄와도 맞닿아 있는 아직도 반복되는 카드 모집인의 과도한 모집 등 여러 어두운 부분도 많다.
하물며 작게는, 2004년부터는 기존에 대학들에 대해서는 수수료율 징수를 관행적으로 안 하던 전례를 깨고 '대학 등록금' 등에 대해서도 수수료를 걷기로 나서는 '돈만 아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에 반발한 대학들이 카드로 등록금을 수납받지 않기로 해 많은 가정들이 이 문제로 한숨쉬었음을 기억한다.
지금은 약 60개 대학이 카드로 등록금을 받고 있지만, 서울소재의 등록금이 비싼 이른바 명문대일 수록 수납에 소극적이다.
그러한 카드업계들의 행동을 물론 '나쁘다'고 할 만한 것은 아닌 줄 안다. 하지만 돈을 버는 게 목적인 '회사'들이라 상업적 논리에 충실했다고 주장하는 이들 카드업계가 이번 비자카드와의 충돌에서는 '애국주의'나 '불평등' 등 온정적 개념을 누리는 게 조금은 어색해 보인다.
즉, 비자카드가 간단히 말해, 우리를 우습게 보거나, 아니면 한국 카드계와의 장사가 수지가 맞지 않는다고 하는 게 문제의 핵심이다. 후자의 경우와 전자의 억울함이 섞여 있는 게 이번 논란의 어려운 점인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책을 잡힌 것 자체가 우리 나라 카드계가 관행적으로 수수료율을 지불해 온 데다가, 실제로 외국에서 우리 나라 사람이 우리 나라 카드를 들고 나가 사용하는 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으려면 비자든 어디든 외국의 서비스망에 얹혀 가거나, 우리의 독자적 '글로벌 역량'을 강화하는 네트워크 구축이 필요하다.
비씨카드도 실상 이러한 고민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비씨카드의 모 관계자는 "해외에서의 고객 사용 편의를 위해 글로벌 역량 강화를 추진 중이다"라고 말하고, "다만 하루 이틀 걸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추진 중에 있다고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부연했다. 더욱이 비씨카드의 이 관계자는 다른 카드사들이 모두 독자적으로 이런 일에 나서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사정을 전하고, 사실상 비씨가 이번 비자의 만행(?)을 계기로 독자적 역량을 조금씩 강화하는 노력을 대표격으로 할 것임을 전했다.
문제는 여기 있다. 그러한 구축 노력을 하기에는 국내 카드사들이 큰 필요가 없거나 효율성 면에서 떨어지니까 외국의 업체인 비자카드와 그간 만수산 드렁칡이 얽히듯 같이 좋은 시절을 보낸 것이 아닌가. 그게 아니라 못내 감수하기 어려운 고통을 그저 참아온 것이라면, 대체 그동안은 그런 불편을 왜 감수했는가, 바꾸어 말하면 왜 그런 비용적 불이익을 고객들에게 전가해 왔는지가 궁금하다. 앞으로 비자 버릇을 고치겠다는 결기와 앞으로의 로드맵도 칭찬할 만 하지만, 일종의 직무유기를 하다가 이제사 목소리를 낸다는 점은 국내 카드계가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그 총대를 맨 장 사장의 충언도 빛이 바래는 것 같다.
장 사장이 앞으로도 이러한 국내 카드계의 대변인 노릇을 제대로 할지 어떨지는 지켜봐야겠지만, 국내 카드계가 외국 대형업체와 맞서는 과정에서도 국내의 군소 가맹점이나 국민 소비자들에게 보였듯, '장삿셈'이 빠르고 당당한 '상인'의 자세를 일관되게 유지했으면 한다. "왜 한국만 차별하느냐"는 핫 템퍼 기질에 기반을 많이 둔 공세는 애국적이긴 한데, '상인'으로서의 행동은 아닌 것 같다. 간단히 말하면 "한국 카드계란 곳이 값을 차별적으로 올릴 만 하니까, 혹은 그렇게 보이니까 당하는 것"이다. 화를 낼 일도 아니고, 당당하고 차분하게 맞서 풀 일이다.
아니면, 비단 자기들 업계의 뭉침 외에도 국민들의 성원을 등에 업고 이번 비자 사태에 임하려면, 앞으로는 좀 더 소비자 친화적으로, 사회적 책임에 더 많이 신경을 쓰는 모습을 약속해야 옳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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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혜현 기자/프라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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