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린트
  • 메일
  • 스크랩
  • 글자크기
  • 크게
  • 작게

[기자수첩]국민에 빚진 고려대,이러면 안된다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09.02.13 17:04:38

[프라임경제] 대한민국 학력을 깎아먹는 악의 축이라는 평가도 없지 않으나, 3불 제도는 엄연히 살아 교육 시스템의 근간 노릇을 맡고 있는 게 우리 나라 교육체제다. 그리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기관들은 이러한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 선도적으로 개정하는 데 나설 권리가 있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일단 현재의 룰에 따라 학생들에게 앎을 전달하는 게 기본자세라고 할 것이다. 특히나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속칭 리더급 역할을 사실상 하는 세칭 명문학교일 수록 이러한 도덕적 의무는 더욱 강조된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우리 나라의 현실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일명 명문일 수록 오히려 세인들의 눈을 의식해서 조심하기 보다는 불편한 제도를 뜯어고치는 데 주안점이 가 있다 못해, 은근슬쩍 이를 어기기도 한다는 논란에 말려들기도 한다.

대표적인 명문사학인 고려대의 현재 행보가 그렇다. 고려대는 최근 '특목고 논란'에 휩싸였다. 이미 일선 고교들에서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가 음으로 불이익을 받지 않겠느냐는 우려 끝에 논란 제기가 무산되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이번에 해가 바뀐 마당엔 아예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의 자료공개와 의혹제기에 의해 이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부상했다.

따지고 보면 이른바 우수 학생들을 '입도 선매'하고 싶은 마음이야 인지상정일 것이다. 이는 회사가 우수한 인적자원을 선발하는 데 혈안이 된 것처럼 교육현장 역시 치열한 경쟁이 수면 아래서는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말한 바와 같이, 교육기관은 교육기관이기 때문에 그러고 싶어도 그래서는 안 된다. 그것은 일을 해 성과를 내는 것으로 끝나는 조직이 아니라, 후속세대의 생각틀을 만들어 주는 조직이라 룰은 따라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명문이라고 선망되는 학교일 수록 그 요구가 더 강하게 제기된다. 하지만 고려대의 '특목고 출신들을 독차지하고 싶은 마음'은 이러한 제어망을 가볍게 뚫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지고 보면 우리 나라에서 대입이 갖는 비중은 실로 지대하여, 그 파급범위가 넓기에 이를 데 없다. 고 3 수험생과 그 직계 존속 외에도, 그 주변의 친척들까지도 노심초사를 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누구나 가고 싶은 학교 중 하나인 고려대가 입시의 룰을 깨고 특목고만 챙겼다면, 이는 전국민들에게 고통을 안긴 일이라 할 만 하다.

이렇게 국민 전체에게 실망을 주어서야 고려대의 도리가 아니다. 명문이고 누구나 바라봐서만이 아니다.

국민들의 염원과 피땀 그 자체가 고려대의 뼈와 살을 이루고 있기에 그렇다. 고려대의 전신인 보성전문의 역사를 보자. 민족종교 천도교의 교령이었던 독립운동가 의암 손병희 선생은 보성을 떠맡아 운영을 하였다. 이미 천도교 내부에서 여유 재정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교인들이 성심껏 성미(밥을 짓기 전 쌀을 조금 덜어내 좋은 일에 쓰도록 헌금하는 일)로 조성한 자금도 이 학교 인수 작업에 동원되었음은 세상이 다 아는 바이다. 더욱이, 인촌 김성수 선생이 인수한 경로와 이후는 어떤가. 인촌 선생이 갖고 있던 방직업체 등이 당시 거의 유일한 민족 자본이었음을 생각하면, 이 수익으로 학교를 운영한 것은 국민 모두의 염원을 먹고 자란 일이라 요약해도 지나침이 없다. 

기업으로 따지면 일제의 배상금을 탈탈 털어 지은 '포철'과 비견할 만한 국민기업이라고 할 만 하다. 연예인으로 따지면 '문근영' 급이다. 

대학교 중에도 이렇게 '국민 여동생'급 관심을 모아 설립, 운영됐던 학교 중에는 고려대 말고도 대략 몇 곳이 더 있다. '성균관대'가 현대적 대학으로 개창되는 일에 독립운동가 김창숙 선생이 관여했었고, 광복 후 범국민적으로 국민성금을 모아 개교한 곳으로 '국민대'가 있다. '동국대'의 경우 시인 '만해 한용운'과 인연이 깊다. '연세대'는 쇠해가는 가난한 아시아의 나라에 희망을 불어넣고자 외국인 선교사가 자금을 꾸려 개창한 이래 엄혹한 일본 제국주의 시대에도 국학 부응에 앞장섰다.

이들 모두 고려대 못지 않은 내노라 하는 명문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이들은 입시 논란이 없건만, 왜 국민의 대학, 민족의 대학 중에 유독 고려대만 추문을 만드는 지 알 길이 없다. 연세대도, 성균관대도, 동국대도, 국민대도 안 그러는데, 고려대는 왜 그러는가?

일단 제기된 모든 의혹이 사실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고려대가 한국 사회에서 갖는 비중과 그간 행보를 볼 적에 설마하니 이랬을 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특목고 편애 논란이라는 소식 자체에 말려든 점 자체가 슬픈 일이다.

결국 이 문제가 법정 공방전으로 비화된다는 소식까지 전해졌다. 이 소송의 내용을 보자니 이미 수시모집 전형이 끝난 상황에서 합격 여부를 다퉈야 실익이 없다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고 한다.  

어서 빨리 일이 처결되기를 바란다. 되돌아 볼 때, 고려대는 이번 논란 외에도 기회가 닿을 때마다 3불의족쇄를 깨려는 언행을 해 왔다. 혹시나 고려대에서는 3불을 깨는 데 앞장서는 노력을, 4월 혁명 등 체제 혁신의 정국마다 고려대가 앞장섰던 일과 유사하게 비장하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대체로는 3불

   
   
깨기에 시시때대로 앞장서는 고대를 보는 일과 과거의 빛나는 선도투를 보는 것을 같게는 보지 않는 것 같다.

만에 하나지만, 만약 고려대가 고교평준화의 정신을 훼손한 일이 법정에서 드러난다면, 손해배상이 문제가 아니라 허심탄회한 반성으로 국민들에게 석고대죄하여야 할 일이다. 그리고 문제가 정말 있다면, 법원의 판단 이전에 고려대 스스로 고백하고 앞으로 백년지대계를 맑게 이끌 것을 다짐하기를 바란다. 그게 보성전문 시절부터 국민들에게 빚져 오고 사랑받아 온 고려대의 사명이다.

임혜현 기자/프라임경제

  • 이 기사를 공유해보세요  
  •  
  •  
  •    
맨 위로

ⓒ 프라임경제(http://www.newsprime.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