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2차 대전 당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와 영국령·네덜란드령 동남아 제도를 파죽지세로 점령했던 일본군은 인도 침공을 계획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수송 여건상으로는 점령지인 인도차이나에서 인도로 쳐들어가는 자체는 병력은 둘째치고, 보급품을 조달하는 자체가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더욱이, 인도 정벌 작전이 추진되던 1944년의 일본군 주변의 사정들은 개전 초 사정과 달랐다.
하지만 이미 꺾은 영국령 홍콩이나 말레이의 식민지군 수준을 보면 영국령 인도에 버티고 있는 영국군 역시 종이호랑이일 것이라는 호기도 작동했다. 더욱이 험로이기는 하지만, 동물을 수송 수단으로 삼아 물자를 수송하고 나중엔 이를 잡아먹으면 불가능하지도 않다는 칭기스칸의 고사가 일본군 수뇌부를 매료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유명한 ‘임팔 작전’이다.
결론적으로 임팔 작전은 실패했다. 정글을 뚫고 병력과 물자를 이동시키는 일은 일본군으로서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인도가 가까울 수록 파상적 공세가 줄을 이었고, 필요충분조건을 공급받지 못한 병력은 영국령 인도의 변방인 아삼(홍차 산지로 유명한 곳)에 점을 찍자 마자, 영국군과 인도병들의 저항에 부딪혀 물러설 수 밖에 없었다.
혹자는 작전 자체가 무모했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영국과 미국도 장개석 국부군에 항일 밑천을 보급하는 데 소량의 항공 지원 외에는 일본이 침공에 사용한 것과 같은 정글 루트를 사용했던 게 당시 군수 실정이고 보면 ‘가능성 0’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다. 아마도 조금만 더 뒷심이 받쳐 줬더라면 동부 인도 역시, “설마하니 정글에 탱크가 돌아다니겠느냐”고 방심했다가 혼비백산 무너진 말레이 주둔 영국군의 전례를 밟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다만 일본군의 무모함과 비극은 그 작전 이후에도 보급의 충실함에 대한 교훈이나, 지휘부 내 이견을 수용하는 태도에 개선 기회로 삼는 전화위복을 살리지 못한 채 밀어붙이기식 정신을 고수한 데 있다.
근래에 한화그룹이 야심차게 추구한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이 일단 불발로 막을 내렸다. 항상 인수합병전에서 성공신화를 썼던, 이를 테면 M&A계의 상승장군(常勝將軍: 시저의 군지휘관 시절 별칭) 김승연 회장으로서는 아마도 처음 겪는 시련일 성 싶다. 산업은행과 한화그룹측은 끝내 한화가 걸었던 계약금조의 3000억원을 놓고 한판 법정공방전까지 이어갈 태세라고들 한다.
혹자들은 어차피 안 될 일이었다, 한화가 무모했다고들 하기도 한다. 원래 GS와 포스코, 현대중공업과의 전쟁에 늦게 출사표를 던진 데다가, 상대적으로 약체군에 속한다고 평가됐던 지난 인수전 시절의 이야기를 되짚는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한화그룹의 인수 구상 자체가 전적으로 무모했던 것은 아니었다. 장기동 빌딩 등 재산과 대한생명 상장 후 주식 매각 등 구상은 대체로 입이 벌어질 만한 구상이기는 했어도, 허를 찔렸다는 정도였지 불가능한 꿈이라는 식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중간에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여파가 극심히 세계를 덮쳐 금융위기, 실물경제침체라는 복병이 발목을 잡아 구상들이 틀어진 것이다.
산업은행으로서도 기관투자자와 함께 별도의 PEF를 조성해 한화가 내놓은 물건을 사주는 방안을 제시했을 정도였으니, 한화가 제시한 인수 가격 조정 등 불가항력에 따른 상황변경 논리가 전혀 시장에 통용되지 않는 수준도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일이 틀어졌고, 후속 분쟁만이 남아 있다.
한화의 이번 실패는 한양화학, 리조트사업 진출 등 처음엔 다소 어려워보이는 일이라도 손만 대면 성사, 알짜기업으로 빠르게 변신시켰던 김 회장과 한화의 행보에서는 이례적인 성적표다. 하지만 이러한 실패로 인한 수업료로 3000억원을 둘러싸고 기약없는 공방전을 벌이는 일이 과연 타당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한화가 그토록 요구한 제대로 된 실사를 산업은행이 보장했느냐의 여부가 법정공방에 향배를 가를 것으로 분석하는 이가 많다. 그러나 이런 변수 외에도 한화가 이번 일에서 인수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구상을 제대로 이행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진 일이 문제다. 사정변경을 어떻게 보는가의 논쟁거리가 남는다는 것이다. 국제적인 경제난을 사정변경으로 볼 것인가? 본다 손치더라도, 과연 그 비율을 어떻게 누구에게 지울 것인가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우리 나라 굴지의 기업인 한화로서도 물론 이 돈이 작지만은 않은 돈이다. 어느 기업이나 그렇지만, 운전자금 조달이 녹록치 않아 고생하는 시국이다. 더욱이 김 회장은 임직원 중 애들과 부인을 유학길에 올려놓고는 제대로 상봉도 못하는 기러기 아빠들을 애틋하게 여겨 따로 챙겨주기도 했다는 따스한 CEO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 이런 시국에 이 거금을 직원 복리후생에 썼으면 차라리 낫겠다 싶은 아까움에 더 절박하게 생각하는 게 아닌가도 생각해 본다.
하지만 일단 틀어진 일을 수습하는 과정에서는 뒤를 돌아보고 본전 생각을 해서는 오히려 남은 자원마저 다치기 쉽다. 오히려 빠르게 최대한 많은 것을 챙겨 철수한 후에 따로 수습하고 정리할 것이 많다. 일본군이 임팔에서 돌아올 때에도 빠른 의사결정이 없어 희생을 키웠다. 더욱이 많은 병력과 물자를 수업료로 치른 데에도 불구, 의사구조와 전쟁수행능력 체계를 고치지 못해 결국 패전으로 이르기도 했다.
지금 기약없는 공방전으로 들어가서 한화가 얻을 3000억원의 향방은 긴 시간 동안 한화가 소진할 에너지와 비교하면 오히려 작을지도 모른다. 더욱이 저돌적이지만 계산이 치밀하고 뚝심있다는 그간의 한화식 M&A에 대한 평판에 이미지 손실이 어느 정도 불가피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이번 돌격으로 한화는 29년 대공황 이래 최악이라는 경제침체라는 불가항력을 이유로 M&A가 틀어져 가는 상황에 상대방과 서로 패를 번갈아 제시하면서 원하는 바를 끌어내는 드문 경험을 쌓았다. 이것이 현재 한화가 갈무리하고 재학습하는 데 신경써야 할 가장 큰 자산이고 이 자체가 3000억원 이상의 가치를 두고두고 한화에 가져다 줄 요소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상승장군 김 회장에게 고뇌와 지혜를 한층 더해 주는 쉬어가는 페이지를 더해줬다는 것 자체가 수확이다. 지금은 3000억원을 돌려달라고 산업은행과 다투는 이상으로 음미할 후일담이 많다.
임혜현 기자 / 프라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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