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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그레이 레이디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09.01.26 20:27:25

[프라임경제] 독자들이 신문과 방송에 궁금해하는 것이 있다. 언론이 왜 밝은 뉴스거리보다 어두운 소식을 더 선호하는지, 그리고 하나의 뉴스 소재를 보더라도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부분에 더 집착을 하는지의 문제다. 이에 대해 미국 버지니아 코먼웰스 대학의 볼 교수는 ‘부정주의’라는 개념을 통해 그 현황을 조사한 바가 있다. 미국의 간부급 언론인 약 500여 명을 대상으로, 이들이 긍정적 소재보다 부정적 소재에 더 선호 경향을 보일 것이라는 가설을 검증했다. 실제로 이 실험군은 굳이 어느 하나를 택해 기사화한다면 부정적 소재를 선택하겠다는 비율을 높게 드러내 가설을 확인시켰다고 알려졌다.

그럼, 언론의 부정주의가 있다고 전제하고, 그럼 왜 기자들은 부정적인 소재를 못 찾아 안달인지(부정주의를 신봉해 마지 않는지)에 대해서는 어떤 답이 있는가? 원로기자인 안병찬 박사(‘한국일보’ 논설위원·‘시사저널’ 편집국장 역임) 같은 분은 몇 해 전(2005년 3월) ‘내일신문’ 기고를 통해 “언론은 부정주의를 견지해야 한다. 그것은 언론이 감시견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다. 그런 기능을 팽개치고 권력이 듣기좋은 뉴스만 생산해서는 수용자의 잠재적 욕구를 충족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풀이했다.

외국도 그렇지만 우리 나라 언론 역시 부정주의가 존재하고, 그 부정주의에 따라 좋은 이야깃거리, 취재원(취재 당하는 이)이 좋아할 만한 소리보다는 어두운 소식, 취재원이 꺼릴 만한 소식을 캐묻고 밑줄그어 강조해 전달하는 원인과 이유는 대체로 이렇다. 한 가지 부연하자면, 한국 언론은 특히 과거 군사정권에 부역했던 트라우마 덕에 정치권력이든, 금권이든, 이익집단이든 간에 뭔가 ‘힘’에는 타협없이 저항해야 한다는 의식이 강하게 있다. 더욱이, ‘97년 외환위기’를 제대로 감지, 예고하지 못했다는 죄의식 역시 깔려 있어, 어두운 면과 예고에 더욱 천착하는 경향도 없지 않다.

하지만 부정적인 부분을 부각시키고, 미처 누구도 생각하지 않은 미비점을 짚어내는 것이 부정주의이고 그 자체가 존재가치가 있다 한들, 그 집행과정이 지나쳐 독자들을 상심하고 실망하게 하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아무리 맞는 말이어도, 과연 이렇게 써댈 필요가 있느냐, 옳으냐의 논쟁을 불러일으킨다면 그도 품격상 적당치는 않은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불편한 진실’과 ‘불편하게 헤집는 모습을 보인 끝에 대령한 진실’은 뭔가 차이가 있을 것이다.

아울러, 강한 자도 물어뜯어야 한다는 평소 인식이 지나쳐 이미 장악한 사냥감을 놓고도 이리저리 더 물고 뜯는 고양이 같은 모습을 보였다면 이는 반성할 부분이라고 스스로도 생각한다.

없는 현상을 만들거나 소수를 다수로 탈바꿈시키거나 하는 게 아니더라도, ‘굳이 그렇게까지 부각시킬 필요가 있느냐’는 자제를 언론에 요구하는 목소리가 최근 높다. 최진실 자살 사건에서 연예인 조문객들을 하루 종일 생중계한 언론이나, 유명인이 검찰 소환만 받아도 전언론이 총출동하여 스포트라이트를 가하는 일이나(이 경우 당사자는 요란한 플래시 세례에 위축된다고 한다. 과거 검찰도 피의자 ‘기를 죽이는 데’ 이를 절당히 이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긴 말의 여러 면 중에 부정적 멘트에 굳이 집중하는 등에 독자들도 불편했던 모양이다.

부정주의 자체를 포기하거나 그 자체가 잘못됐다고 할 수 없는 데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부정주의를 잘 제시하는 길에 대한 고민은 항상 필요한 것이라는 점에는 고민의 여지가 있는 것 같다.

저명 언론인 ‘뉴욕 타임스’의 별칭은 ‘그레이 레이디(Gray Lady 잿빛 숙녀. 참고로 레이디 그레이는 이와 다른 개념이다. 귀부인 이름에서 따온 홍차종류임)’다. 항상 차가운 태도와 엄정한 뉴스 전달을 의인화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고 보면, 언제나 뉴스의 질과 속도에서 수위권을 다투며 어느 강자에게도 타협이 없는 이 언론이 복서나, 정찰병이나 검투사 같은 호전적이고 날랜 의인화 대상 대신 차분한 숙녀로 묘사됐는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없는 일을 말하거나, 사실을 바꾸거나 하지 않고 전달했다는 건 기자들에겐 면죄부이긴 하다. 그러나 냉정하고 자중자애하는 점이 기자와 언론의 최고선이라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사나운 잿빛 고양이의 현상 대신 잿빛 숙녀의 모습을 닮아 가려 한다. 부정적이되 삐딱하지 않고, 날카롭되 사냥감에게 잔인하지 않은 기자가 되도록 노력하겠다. 언제까지 기자일을 할 지는 모르겠지만, 그 기사 때문에 누군가 곤란해졌다는 소리는 별론으로 하고, 그 기사 때문에 많은 이들이 마음을 다쳤다는 소리는 안 듣도록 크로스 체크나 오자 검사 같은 퇴고 과정에만 안주할 게 아니라 역지사지의 재고에 삼고를 더하겠다는 신년 인사를 전한다.

임혜현 기자/프라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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