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린트
  • 메일
  • 스크랩
  • 글자크기
  • 크게
  • 작게

[기자수첩]박노해 시대에 갇혀사는 미네르바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09.01.12 05:58:10

[프라임경제]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면서 '국민의 경제적 스승(김태동 성균관대 교수)'이라는 찬사까지 받았던 논객 미네르바가 사직당국에 체포, 구속수감됐다. "당국이 환율관리를 위해 기업 등을 압박했다"는 그의 글은 결국 그를 영어의 몸으로 만들었다. 검찰측의 "국가 신인도를 떨어뜨린 중죄인"이라는 주장을 법원이 받아들여 영장이 발부된 것이다.

이번 사건은 표현의 자유를 어디까지 제한할 수 있는지 논란을 촉발시켜 재판 과정에 치열한 공방전이 예상된다. 특히 전기통신법은 위헌 논쟁까지 붙었고, 박찬종 전 의원, 민변, 민주당 소속 율사 의원 등이 합동으로 법률적 지원을 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화려한 시선몰이 이면에 미네르바 사건은 우리 사회의 단단하고 높은 학벌주의 벽을 실감하게 하고 있다.

그가 검거되자 언론들은 치열하게 그의 주변과 배경을 캐고 들었다. 그 와중에 그의 학력, 직업 관련 사실, 그저 조용하게 동생과 함께 숨어 살았던 사회성이 그다지 높지 않은 인물이라는 점 등이 대대적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은 기사 작성 과정에서 상당히 '왜곡적'으로 다뤄졌다고 생각한다. 특히 일부 보수언론들은 "30대 무직", "무직", "그 착한 애가 미네르바라니" 등등의 어조로 선정적으로 다뤄졌다.

어느 정도의 낚시성 제목이야 작금의 언론계 풍토상 '애교'로 넘어가지 못할 바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 뒤에는 "50대 증권맨 출신, 해외 근무 경험이 있고 식견이 풍부한 금융전문가"라는 그간의 '상상도'가 깨진 다음에 나온 부작용이 아닌가 하여 실망스럽다. 더욱이, 이런 단순한 반작용일 뿐만 아니라 학벌주의에 따라 그를 재단하는 색채가 짙게 느껴지는 듯해, 더욱 우려스럽다.

지난 80년대 논란을 불러온 시인 '박노해'가 있었다. 그의 시는 민주적 정통성이 부족한 전두환 정권에 '눈엣 가시'였다. 그의 존재에 수사기관들이 골치를 썩였고 박노해 검거가 지상명제이다시피 했다.

문제는 그가 검거된 다음에 일어났다. 그가 '대졸이 아니라는' 점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특히나 그를 잡아들이고, 심문한 각종 기관에서는 그의 이력에 상당히 경악했다고 박 씨는 훗날 증언했다.

수사기관에서는 "누구의 사주를 받아 쓴 것이냐. 뒤에 대학 출신이 버티고 있는 게 아니냐"고 집요하게 추궁했다고 한다.

그 와중에 어느 간부급 공직자는 "시저와는 싸워도 스파르타쿠스(로마 시대의 노예 반란 지도자)와는 싸울 수 없다"면서 그의 '배후'를 캐려고 애를 썼다고 한다. 아마도 어지간히 정부 엘리트들을 괴롭힌 자가 명문대 출신도 아닌 대학물 먹은 적 없는 인사라는 사실에 그 공직자는 상당히 자존심이 상했던 모양이다.

시간이 상당히 흘렀음에도, 이번 상황을 다루는 언론들의 태도, 그리고 그를 높이 평가하다가 입을 꾹 다문 경제전문가들의 반응을 보면서, 그때 어느 공직자가 했다는 '시저는 되고 스파르타쿠스는 안 된다는' 발언이 떠오른다.

아니나 다를까, 언론들의 공세에 이어 이번엔 가수 조영남 씨가 "잡고 보니 별 인물 아니더라"는 식으로까지 말을 했다고 한다. 마침 그 가수분은 서울대를 다닌 인사라 문제가 더 심각하게 느껴진다.

미네르바의 글들이 짜깁기 능력이 그저 뛰어났을 뿐이라는 해석과, 학벌 논란을 보면서, 작금의 시대는 "노하우보다 노웨어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수많은 저명인사들의 말을 떠올리게 된다. 짜깁기를 해도

   
   
그 정도면 수준급이라는 점은 왜 도외시되는가 모르겠다.

더욱이, "거리의 짐마차 마부나 학자나 지성의 근본적 차이는 없다"고 겸손함을 강조했던 아담 스미스의 발언을 생각해 보면, 우리 사회는 왜 영국 학자들은 수백년 전에 한 생각을 지금도 못 하는 지 의아하다.

2000년대, IT 강국이라지만, 사실상 미네르바는 박노해와 같은 시대에 사는 모양이다.

임혜현 기자/프라임경제

  • 이 기사를 공유해보세요  
  •  
  •  
  •    
맨 위로

ⓒ 프라임경제(http://www.newsprime.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