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롯데그룹의 이름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감수성의 소산이다. 창업주 신격호 회장은 독일어 문학권의 고전 중 하나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좋아했다고 하는데, 이 소설에서 등장한 인물인 '샤롯데'에서 롯데라는 사명을 지었다고 알려졌다. 동 시대를 풍미한 유수의 기업들이 조국 현대화를 이끌자든지 경제를 아우르는 큰 집이 되자든지 하는 뜻을 가감없이 드러낸 사명을 지은 것과 비교하면, 센스있는 정도를 넘어서서, 이후 다가올 소비자 주권 시대를 내다보는 탁월한 감식안이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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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 등장한지 이미 오래인 사이다를 웰빙 시대에 도래에도 훨씬 앞선 IMF 무렵부터 '노카페인'으로 광고해 다시금 눈길을 끌게 한 것이나, 백화점 문화를 한 단계 끌어 올린 롯데 백화점을 론칭했다. "잘 노는 게 생산력 향상"이라는 개념이 아직 없던 시절에 국민관광단지 '롯데월드'를 세우기도 했다. 이렇게 롯데는 항상 소비자의 감수성을 자극하고 말을 걸어 물건을 파는 데 능란한 모습을 보여왔다. 오히려 그런 말걸기를 통해 국민감수성을 이끌어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나 이렇게 알뜰히 번 돈을 롯데 야구단 운영에 쓰기도 했다. "껌 팔아 야구단 꾸린다"는 일각의 비아냥에도 불구, 롯데 구단이 부산시민 뿐만 아니라 국민적 사랑을 받는 '국민 야구단'으로 자리잡은 데에는 이렇게 무언가를 사람들에게 내놓고 어떻게 다가서야 하는지를 아는 롯데 스타일의 접근법이 국내에서는 독보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치명적인 아름다움 때문에 롯데그룹의 경영은 "벽돌 한 장 찍어내는 것 없이 소비재만 만드는 기업이라고 생각해 나는 평소 그 기업을 좋아하지 않았다(김용원 변호사, '브레이크 없는 벤츠' 중에서)"는 일부의 싸늘한 시선을 덮고도 남음이 있었다.
롯데 스타일의 이러한 감수성을 공명하게 하는 기업경영의 정수는 롯데리아에서 발휘됐다고 볼 수 있는데, 롯데리아는 단순한 패스트푸드점이 아니라 장차 국내 시장을 무섭게 잠식할 외국계 업체의 진출을 막 고, 갈 곳 놀 곳이 부족하던 당시 놀이문화에 한 장을 연 공간으로 작동했다.
이런 시장공략은, 롯레리아가 의도했든 실제는 그게 아니었든, 청소년층들끼리는 물론 가족과 함께 나들이와 외식문화의 한 부분을 새롭게 창출해 내는 역할을 해 냈다. 실제로 롯데리아 고객들의 상당수는 어린 시절부터 롯데리아를 이용하면서 충성도가 높아져 아직 남은 사람들이 많다는 해석도 있다. 단지 햄버거가 맛이 있느냐, 이윤이 남는 시장이냐의 논리가 아니라 가족돠 함께라는 개념이 미필적 고의로 함께 각인돼 있는 셈이다.
어쨌거나, 롯데리아는, 코카콜라와 함께 미국문화를 상징하는 골리앗 햄버거업체 맥도날드를 여유있게 따돌리고 있다. 국내에서는 토종인 롯데리아는 이 부분에서 부동의 1위다. 외식업계 추정에 따르면 금년 3월 말 기준으로 롯데리아의 시장점유율은 40%, 맥도날드는 20% 안팎이라 한다. 점포 수는 롯데리아가 744개, 맥도날드는 231개다.이는 음식의 맛과 함께 당시 척박했던 국내 외식시장에서 이미지 장사를 잘 한 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단순히 이미지만이 아니라 소비자들이 필요로 했던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이를 제시해 시장에 내놓는, 이야기 만들기와 말걸기의 방식이 지금껏 약효를 발휘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소비자들이 아무리 객관적 지표가 어떻다 해도 국적기인 KAL을 외국계 항공사의 서비스보다 편하다고 느끼는 것처럼, 롯데리아가 지방 중심으로 자잘하게 깔아놓은 지점망에서 친절하게 고객 오더와 불만 사항에 귀기울이는 경험을 오래도록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롯데리아가 오래도록 탄탄하게 구촉해온 편한 이미지는 다름아닌 그룹 창업주의 감수성 깊은 마인드와도 상통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더욱이 한우 열풍을 선도하고, 라이스 버거에 도전하면서 소비자들이 뭘 원하는지 항상 제때에, 혹은 그보다 앞서 제시해 왔다. 롯데리아에서의 소비는 그래서 단순한 일방적 판매와 소비가 아니라 소통과 대화의 느낌을 형성해 왔다.
문제는, 이렇게 고객 감수성을 자극해 왔던 롯데리아의 위상이 조금씩 변하는 느낌이다.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최근까지도 롯데리아는 친절도에서 고객의 요구사항을 무시한 적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하지만 최근 들어서 소비자들의 불평이 들려오는 느낌이다. 과거에 누적된 불만이 이제서야 터져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온라인상으로 터져 나온 불만들과 그에 붙은 공감성 글과 리플들의 홍수는 솔직히 롯데리아가 '패스트푸드업계의 샤롯데'로 누려온 위상과 지위를 깎아 내리기에는 충분하지는 않아도, 적어도 걱정은 되고도 남는 수준이다.
더욱 큰 문제는, 최근 이렇게 불만을 제시한 고객들이 가장 소운해 하는 부분이 롯데리아가 "내 말을 무시한다"는 느낌을 주는 데 있다.
다음 아고라에서 일어난 최근의 사건은 그 작은 방증이라 할 것이다. 한우스테이크 버거를 구입한 어느 고객은 매장의 광고사진과 그 물건이 너무 다름에 놀라 항의성 글을 온라인 세상에 올렸다. 아마도 그 고객은 문제의 개선을 원한 충성도 높은 고객이었을 줄로 믿는다. 그러나 짤막한 답이라도 돌아오는 대신, 그가 받은 것은 "명예훼손성 게시물로 롯데리아측 요청으로 삭제됐다"는 '요지'의 다음측 통보였다고 한다.
이 고객은 이 사실에 꽤나 충격을 받았는지 오히려 이런 과정을 소상히 후속 포스팅했다. 이것이 본지와 아시아경제 등 일부 언론에 보도가 되자, 롯데리아측에서는 "문제가 있는 사진을 재촬영하겠다"는 답변을 취재기자들에게 했다.
그런데 또다른 문제가 남았다. 정작 롯데리아측과 관계 당국에서는 문제를 취재하러 다닌 기자들에게는 이런 답을 제시했던 모양이지만, 문제의 불만 제기 소비자에게는 아무런 답을 주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 소비자는 그 이후에 다시 한 번 글을 올려, "기자들에겐 뭐라고 답을 했는지 모르나, 내게 롯데리아에서 온 답은 無"라는 요지의 서운함을 격정토로했다. 그 밑으로 붙은 서운한 소비자들의 반응은 따로 적지 않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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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여기에 롯데리아의 최근 문제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평소 롯데리아가 다져온 이미지대로라면, 기자들이 귀찮게 굴어 문제가 커진 사정은 그렇다 치더라도, 기자들뿐만 아니라 해당 글을 올린 소비자에게 메일이나, 기술적으로 이게 어렵다면 다음을 통한 의사 전달이 있었으리라고 추측했다. 오히려 언론 보도에 앞서서 소비자들에 대한 대응책이 있었으리라고 기대를 한 것도 사실이다. 왜냐? 롯데니까.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고, 햄버거 실물은 광고발과는 어쩔 수 없이 다르다는 교훈만 이 소비자에게 남긴 셈이다. 아니다. 더 큰 문제가 있다. 롯데리아는 "내가 불만을 제기하면 충분히 접수해 줄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기자나 되어야 말 한 마디 붙여볼 법한 롯데리아, 소비자와의 소통은 아랑곳않는 롯데리아"로 격화되었지나 않을런지 우려되는 바이다.
이런 상황은 롯데리아답지도 않고 롯데답지도 않다. 그간 소비재 시장에서 굳건히 살아남아 온 롯데를 만 든 것은 바로 소비자의 마음과 유무형의 소통을 해 왔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런데 지금 이 한우스테이크 버거 사건은 이 관습법에서 벗어나 있다. 롯데리아가 소통과 말걸기의 매력을 잃는다면, 롯데리아는 생활경제 업계의 '샤롯데' 자리를 더 이상 지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 다음 아고라에 그 글이 오른 날이 어쩌면 롯데리아가 국내 소비자들의 마음 속에서 샤롯데이기를 스스로 포기한 날이 아닌지, 심히 걱정되는 바이다.
임혜현 기자/프라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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