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바둑이나 장기의 이치를 '기리(棋理)'라고 한다. 삼성은 애플과 어깨를 견주는 삼성전자 등 여러 굵직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고, 우수한 품질과 '관리의 삼성'이라는 합리적 이미지를 세계에 심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세부적인 일처리에서는 문제가 노출되고 있다. 오너 일가의 지배권 상속에 많은 역량을 낭비한다는 지적도 받는다. 창립 80년, 이제 이재용씨와의 기리(きり:끝)을 생각해야 할 때가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사태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을 표하는 이들이 많다. 이 회사가 한국의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바이오 산업의 첨병이 돼 줄 것으로 기대를 했는데, 증시 문제라는 지엽말단적 이슈(?)에 발목이 잡혀 도마에 오르는 게 말이 되냐는 비판이 일고 있는 것.
삼선바이오로직스는 근래 금융감독원과 증권선물위원회 검증 등 난타당한 끝에 결국 검찰 고발 대상이 됐다. 우선 이 회사가 자회사였던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왜 관계사로 돌렸는지 논란이 있었고, 두번째 바이오젠과 합작 당시 콜옵션이 있었는데 이를 왜 공시하지 않았냐는 의혹이다.
다만 검찰 고발 대상으로 전자는 비껴갔고, 후자에 대해서는 문제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싱겁다, 본말이 전도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바이오로직스 감싸는 논리들 무성, 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2년 미국 나스닥 상장사인 바이오젠과 합작해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설립했다. 바이오젠과의 협력을 통해 복제약품 시장에 뛰어들기 위해서였다. 당시 계약에는 바이오젠이 합작사 지분을 최대 49.9%까지 늘릴 수 있는 이른바 '콜옵션' 조항도 있다.
그 동안 삼성바이오 측은 미국 바이오젠이 이 콜옵션을 행사해 지분을 늘릴 경우, 바이오에피스의 지배력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회계기준을 바꿨다고 주장해 왔다.
참여연대 등이 지적해온 이 사건 고발 내용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주식 투자자들 및 회계 전문가들 사이에서 터져 나온 점도 우선 들어보자.
우선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바이오젠 콜옵션 공시 누락에 대한 불만이 팽배하다. 증선위는 이를 삼성바이오로직스 측이 고의로 누락한 것으로 보고 있고, 참여연대 등은 이 문제는 '나비효과'처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서의 합병비율 및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실제로 이 콜옵션 내용이 반영되면 애초 제일모직 값어치는 합병 추진 당시 삼성 측 논리보다 뤌씬 더 적게 산정됐어야 맞고, 그러면 합병 자체가 미끄러졌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사실 과연 당시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바이오젠 콜옵션을 공시해야만 하는 '의무'가 있었는지를 두고 의혹을 제기하는 주장이 나온다.
외부감사를 받아야 할 의무가 있는 법인은 직전 사업연도 말의 자산총액이 100억원 이상, 부채총액이 70억원 이상 또는 종업원수가 300명 이상 등의 조건이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박근혜 당시 대통령 등과 삼성바이오로직스 제3공장을 둘러보고 있다. ⓒ 뉴스1
그런데 합작사나 관계사의 콜옵션 보유 등 주로 투자자 보호를 위한 중요사항에 대해 공시할 의무는 보다 구체적 조건이 반영된다는 것.
이 주장에 의하면, 2012년에서 2014년 회계연도까지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비상장회사라는 문제가 생긴다. 당시 자본시장법 시행령에 따르면, 주주가 500인 이상으로 외부감사인의 감사가 의무화된 비상장법인의 경우 공모를 통한 자금조달 실적이 없더라도 투자자 보호를 위해 사업 관련 내용을 정기적으로 공시하고 중요사항에 대해 공시할 의무가 있었다.
2012년경부터 2014년까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주주 명단에는 삼성전자와 삼성에버랜드 등 최대주주와 삼성물산 등 4개사에 불과했다고 이들은 강변한다. 즉,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자사는 이에 해당하는 일이 없어 콜옵션 공시 의무가 없었다고 해명하는 주장이다.
그런데 여기서 시각을 달리 할 필요가 있다.
지금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문제는 이 회사의 주가가 오르고 내리는 데 개입되는 당사자가 불과 삼성물산, 삼성전자 그리고 에버랜드 등에 불과했으니 공시를 제대로 해도 되지 않는 '예외'라는 지엽적 요소에만 매달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 지엽적 요소를 약용해, 그 다음에 삼성바이오로직스 가치를 잘못 산정한 것을 갖고 다른 회사의 가치 산정에 악용을 한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이는 더 이상 삼성바이오로직스 문제가 아니라 이 회사의 대주주였던 제일모직의 값어치 판단 오류 문제이고, 그 다음에는 제일모직과 삼섬물산의 합병 오류 더 나아가 통합 삼성물산의 가치 판정 의혹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앞서 지적된 여러 이슈는 더 이상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허언에 불과하게 된다.
◆문제는 삼성바이오 자체가 아니라 이걸 악용한 '합병 이슈'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사후의 상섬그룹은 어떻게 될 것인가? 3세 남매들의 재산 안분 문제로 느긋하게 이야기할 게 아니라는 위기감이 삼성 내외에 높은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이 회장이 돌연 쓰러진 상황 이후 삼성이 보여온 행보를 보면 초점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중심의 승계'로 특정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구 삼성물산과 구 제일모직을 합병, 이재용 체제의 장악력을 높여준 것은 백미로 꼽을 수 있다. 이때 양사간 합병 비율을 부당하게 산정했다는 주장에서는 특히 대주주인 국민연금의 부정한 도움으로 이 부회장에게 도움이 되도록 구 삼성물산이 합병비율을 부여받아 결국 통합 삼성물산이 탄생할 수 있었다는 부분이 중요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우리가 오늘날 삼성바이오로직스 사태에 경악하고, 그 지적을 할 대목은 바로 이 통합 삼성물산 탄생의 기본적 오류에 이 회계부정, 그리고 공시 실수 등이 지속적으로 반영됐다는 종합적 문제다.
◆삼성바이오 악용한 삼성물산 '사기', 새 법으로 풀어라
이 같은 복잡한 구조의 업무는 기존의 '증권사기'로만 규율하기는 어렵다.
증권사기는 서로 짜고 호가를 올리는 행동, 가치가 없는 허언을 퍼뜨려 가격을 호도하는 것 등에만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증시와 금융이 자본시장이라는 영역으로 통칭돼 불리는 새 관행이 생긴 것처럼, 증시와 자본시장 내에서의 범죄 행위도 다양해지고, 새로운 유형의 범죄들도 나타나고 있어 해당 법률 시스템 역시 정비되고 있다.
이는 현대의 증권시장은 과거와 같은 거래소를 중심으로 한 전형적 거래로만 설명하기는 어렵게 됐다는 점에 뿌리를 둔다. 금융기법의 발달로 인해 금융상품에 있어서도 법이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상품들이 등장하고, 거래의 단계와 각종 복잡한 사정이 대두됐다. 자본시장에서 시장의 공정성을 유지하고 투자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불공정거래 일반에 대한 규제를 마련하게 됐다.
이러한 새로운 환경에 대처하기 위해 기존의 금융 관련 법제를 통합하고 포괄적 규제·기능별 규제라는 새로운 규제체제를 도입했다.
이른바 '포괄적 사기금지' 규정의 도입 이유다.
미국의 증권거래법 §10(B) 및 Rule 10b-5에서 처음 제정된 것으로, 영국이나 일본, 호주 등 금융법제가 선진화된 나라에서는 포괄적 사기금지 규정이 입법화되어 있다.
포괄적 사기금지 규정은 규제의 공백을 제거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물론 규정의 추상성으로 인해 명확성 원칙에 위배될 가능성이 있으나, 이는 판례와 이론이 보완하면 충분한 정도의 몫이라는 의견이 대두된다.
우리나라 자본시장법이 새롭게 등장할 적에, 제178조의2에 '시장질서 교란행위의 금지'라는 항목이 마련된 바 있다. 그 법의 제 1항에서는 "① 제1호에 해당하는 자는 제2호에 해당하는 정보를 증권시장에 상장된 증권이나 장내파생상품 또는 이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파생상품의 매매, 그 밖의 거래에 이용하거나 타인에게 이용하게 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삼성의 일부 계열사들이 △위에서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언급하는 여러 이유로 삼성바이오로직스 관련 콜옵션 이슈를 널리 공시하지 않고 자기들만 알고 있었고 △이를 기회삼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하는 비율을 정할 때 그 중대한 변수 가능성을 애써 묵인했다면, 그건 부정행위이자 시장교란 행동이며, 이는 우리 자본시장법이 미국 제도를 들여온 뒤 처음 겪는 가장 잘 들어맞는 대표적 케이스로 볼 여지가 많다는 의견이 대두된다.
곧 미국식 법률 표현으로는 '포괄적 증권사기'라고 한다. 참고로, 미국에서는 불법행위 손해배상 소송 제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포괄적 증권사기범에 대해 우리 일반 불법행위범처럼 직접 민사 손해배상을 구할 수 있는 예외를 허용하고 있다.
그만큼 새 시대의 발전을 비집고 태어난 '악질 사범'으로 본다는 뜻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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