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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하나SK카드 사태, 제갈량은 누구?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1.09.19 17:59:58

[프라임경제] ‘삼국지연의’에서 촉의 재상 제갈량이 눈물을 흘리며 아끼는 장수 마속의 목을 베었다는 읍참마속(泣斬馬謖)의 고사는 지금도 자주 회자된다.

유비는 제강량에게 마속이 말만 앞선다며 중용하지 말라는 유지를 남겼지만, 제갈량은 마속의 강력히 청하는 데 기울어 중요한 가정(街亭) 지역을 맡겼다. 하지만 1차 북벌에서 촉은 가정 싸움에서 제갈량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산꼭대기에 진영을 세운 마속 때문에 대패했다. 제갈량은 군율에 따라 마속을 처형했으며, 오늘날 읍참마속은 “조직의 기강을 다잡기 위해 아끼는 사람을 버린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요컨대, ‘읍참마속’은 패배 후 조직을 바로 세우기 위한 조치라는 의미에서 많이 쓰인다.

하지만, 조직의 리더급 인재들이 할 일은 ‘읍참마속’이 아니라 ‘읍참마속의 경우’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대비하는 것이다. 즉 조직의 구성원이 자신의 능력을 과신한 나머지 실책을 저지르지 않도록 고삐를 조이는 게 필요하며, 이런 지휘를 제대로 못했을 때의 고통을 강조하는 데 본뜻이 있다고 하겠다.

실제로 가정 싸움에서의 마속의 실책과 그로 인한 손실은 두고두고 촉에 통한을 남겼다. 결론적으로 여기서 입은 피해 때문에 1차 북벌 이후의 많은 추가 북벌도 모두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속이 목숨을 내놨지만, 제갈량 스스로도 강등을 자처한 것도 이렇게 두고두고 촉한 정통론에 의한 통일이 일장춘몽으로 끝난 것을 감안하면 오히려 가벼운 조치라는 평가도 있다.

하나SK카드에서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한다. 이 문제를 놓고 “이제 누구를 믿어야 하냐”는 푸념이 높다. 현재 알려진 바를 종합하면, 고객 정보 200여건을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이는 박 모씨. 엄연한 ‘내부유출’이다.

일각에서는 내부 유출을 잡아낸 경로가 ‘내부 감찰’이었음에 초점을 두기도 한다. 또한 용의자가 마케팅 담당자였다는 점에서 텔레마케팅이 안은 고질적인 병폐를 지적하기도 한다. 사실 하나금융그룹이 읍참마속의 결단으로 금융감독원 보고 및 사법당국 고발이라는 대책을 내놓은 점은 그나마 주목할 만한 용단이기는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하나SK카드는 은행계 카드에서 여선전문업체 설립 및 분사라는 결단을 내리면서 금융과 통신을 융합한다는 기치를 걸었다. ‘모바일카드’를 차별화된 핵심 경쟁력으로 내세웠고, 이미 2010년초부터 카드결제와 쇼핑정보, 할인쿠폰 등을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스마트페이먼트’ 서비스를 데뷔전 카드로 꺼내들 만큼 정보 융합을 통한 시너지 효과에 초점을 맞춰 왔다. 이런 회사에서 정보가 샜다는 문제는, 호사가들이 언급하는 (SK컴즈 산하의) 네이트 개인정보 유출에 이어 또 SK 관련사에서 사고가 터진 것이냐는 비아냥 이상의 상처를 오래도록 남길 것임에 틀림없다.

아닌 게 아니라, 하나SK카드는 카드사 분사 이전에도 텔레마케팅 관련 영업을 조심스럽게 다뤄온 바가 있어 언론의 주목을 받았었다. 하나SK카드의 전신인 하나은행(즉 당시에는 ‘은행계 카드’)은 은행업 역사가 짧다는 후발업체라는 한계에, 지점이 적다는 점에서도 우리은행 등 다른 은행계 카드와 전업카드사들에 비해 카드 영업력 열세라는 족쇄를 찬 것과 다름없었다.

이런 고민을 하면, 보통 택하는 (쉽지만 위험한) 길이 바로 모집인, 텔레마케팅 등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은행은 카드모집인을 통한 영업의 효율성 등을 따지는 데 상당히 철저한 태도를 오래 고수했다. 하나은행도 (다른 경쟁업체들처럼) 카드모집인과 텔레마케팅 등 지점 외 판매 채널 확충을 추진키로 하는 결론은 그래서 2007년 초에나 선택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신중하기 짝이 없는 행동은 상당히 이례적이고 진지한 것으로 눈길을 끌 만 했는 바, 당시 모 경제매체에 의해 보도되기도 했다.

하나SK카드의 이번 실책은 그래서 네이트 사태에 비견되는 등 각종 이야깃거리에만 그치지 않는다. 길게는 하나은행 시절부터 쌓아온 모든 공로가 ‘내부’에서 진행된 고객의 정보 유출하나로 모두 무너진 것이나 다름없다. 읍참마속 자체를 빠르고 정확하게 진행한 점은 칭찬할 만한 일이지만, 문제는 마속을 참한 것으로 끝낼 수 없다.

   
 
하나SK카드 분사의 근본적인 동력원을 모두 깎아먹은, 더욱이 하나은행이 은행계 카드로 하나카드를 운영해온 시절부터의 노고를 모두 잃은 실책 한 건에 대한 ‘후속’ 처리를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하나SK카드는 존재의 의미 자체를 영원히 의심받을 수 있다.

제갈량이 마속 건으로 강등을 자처한 것과 같은 책임감 있는 조처를 누가 떠맡을 것인가? 하나SK카드는, 하나금융그룹은 어서 시장에 의미있는 메시지를 던져 1차 북벌 이후 영영 꿈을 못 꾸게 된 촉한의 전철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바이다. 을지로 쪽으로 세인들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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