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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게브랄티 같은 오세훈식 市政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1.01.17 14:26:50

[프라임경제] 1980년대에 유한양행이 수입해 판매하던 약 중에 ‘게브랄티’라는 영양제가 있었다. 미국산인 이 영양제는 판매고가 그런대로 나쁘지 않았다. 이후 2000년 6월에는 대웅제약이 미국 회사와 계약을 맺고 영양제 센트룸과 입술보호제인 챕스틱, 칼슘보호제인 칼트레이트와 함께 게브랄티를 판매하기로 하는 등 제약업계에서는 검증된 제품으로 통했다.

문제는 이 제품이 어감이 별로 좋지 않았다는 데 있다. 묘한 뉘앙스의 이름 때문에 당시 여러 농담과 음담패설의 소재로 사용되는 비운(?)을 맛보기도 했었다. 더군다나 게브랄티의 광고 전략이 야구선수 백인천씨를 내세워 ‘힘’을 강조한 만큼, 일각에서는 자연히 발음이 비슷한 ‘개불X’을 연상하기도 했다. 스테미너식으로(혹은 몬도가네식 섭생의 한 아이템으로) 일부에서 해구신은 물론 개의 성기를 먹기도 함을 감안하면 나무라기만 할 연상작용도 아니다. 어쨌던 당시 MBC청룡 야구팀의 시합이 있는 날이면 야구팬들은 타석에 등장한 백인천씨를 향해 목청 높여 ‘게브랄~티’라며 응원하기도 했다.

서울시가 개장한 세종문화회관 지하의 대규모 식당가 이름이 논란을 빚고 있다. 서울시는 주차장으로 사용되던 세종문화회관 지하 4368㎡에 900여석 규모의 외식공간인 ‘광화문 아띠’를 오픈한다고 14일 밝혔다.

그런데 이 ‘아띠’라는 이름이 ‘정체불명의 단어’라고 논쟁이 붙었다. 시설 명칭 중 ‘아띠’는 시민공모를 통해 선정한 것으로 당초에는 ‘친한 친구’, ‘오랜 친구’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순우리말 단어라는 설명이 나왔다. 하지만 이 단어는 고어사전 등 어디에도 등재돼 있지 않아 이런 설명이 부적절하다는 논란(한국일보 온라인판 15일 기사 등)이 이어졌다.

물론 사전에 꼭 올라 있어야 단어가 고어인지, 순우리말인지를 판가름할 수는 없다고 생각되지만, 공모라는 절차를 거쳐 내놓은 단어에 이 같은 논쟁이 붙는 것을 보면 검증망이 적절치 못했던 것으로 의심받을 여지가 있다. 또 “고어인지, 순우리말인지 확실치 않은 신조어이나, 의미 부여가 신선하다고 생각돼 뽑았다”는 식으로 미리 이야기를 할 만한 판단력이 부족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어 보인다.

이 같은 순우리말 고어 단어인지 여부 논란은 애교다. 정작 뜨거운 감자는 따로 있다. 아띠라는 말의 기원에 대해 언론이 불을 당겼다면, 네티즌들은 이를 받아 ‘어감’도 고려하지 못한 채 선정했다는 지적에 불을 붙인 것이다. ‘아띠’라는 단어에 대해 네티즌들은 “욕 같다”, “듣기 별로 좋지 않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심지어 “아띠 발(아 씨X)”이라는 아띠 관련 기사에 댓글로 달아 이 어감 논란에 대한 적나라한 공감대를 형성한 리플도 볼 수 있다.

대체 어떤 검증망을 거치면 공모라는 방식을 거쳐 심사숙고해서 내놓은 답이 이 같은 이름 논쟁이 붙는 걸까,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검증에 참여한 인사들에게는 이같이 기자들이나 일반 시민들이 의아해 하거나 웃음거리로 삼을 만한 소지를 발견할 감각이 있는 전혀 없는지 궁금하다.

이런 여지를 알면서도 ‘꼭 사전에 등재돼 있어야만 순우리말 단어는 아니’며, ‘좋은 단어에 욕설을 연상하는 천박함을 꾸짖으며’ 이 같은 판단을 했다면 그건 더 문제다. 그런 프로세스를 가진 두뇌로 행정 검증을 하고, 결재를 하고 최고 책임자를 보좌하기 때문에 서울시정이 적잖은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는 의혹을 갖게 된다. 많은 의욕적 성과를 보이는 듯 했으나 비판도 그만큼 많았던 오세훈 서울시정 1기, 그 1기의 여파로 시의회에는 반대파가 득세하고 사사건건 제동이 걸리고 갈등을 빚는 시정 2기를 보면 더 그렇다.

이 이름 논쟁이 붙기 시작한 14일, 오세훈 시장의 무상급식 관련 주민투표 제안에 대해 (출신 정당인) 한나라당에서조차도 피로감을 느낀다는 취지의 보도(한겨레신문 14일)가 나온 것은 우연만은 아니다. 서울에 기반한 한나라당 중진들이 반대하면 서울시장이라도 큰 정치적 부담을 안은 주민투표를 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기사 전편에 흐르고 있다. 심지어 바로 옆 지방자치단체장인 김문수 경기도지사마저도 이 같은 주민투표까지 강행하는 것에 대해 적잖이 우려하는 기색의 발언(16일 중앙선데이)하기도 했다. 한 마디로, 정적뿐 아니라 같은 우군끼리도 소통하지 않고 앞서나가는 데 대한 불안감과 불만을 표하고 있다고 요약할 수 있다.

   
 
게브랄티는 그나마 당시 외래어 표기 규정상 지브럴티가 아니라 부득이 ‘개불X’을 연상케 하는 게브랄티 로 간 게 아니냐는 동정론이라도 받고 있지만, “아 18”을 연상케 하는 아띠 논란엔 동정적 시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일반적 상식을 무시한 정책 판단을 행정학에서는 ‘케네디 행정부의 쿠바 침공 결정과 실패 케이스’를 들어 비판하는데, 앞으로는 일반 정서와 괴리감을 두며 가는 ‘달나라 행정’을 논할 때 ‘오세훈 시정2기의 아띠 케이스’를 언급하게 될지도 모른다. 욕설 비슷한 단어를 모르고 혹은 고집스럽게 떡 하니 혈세가 손톱만큼이라도 들어간 시설에 붙이다니, 오세훈 시정2기, 약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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