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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정성공의 길, 이백순의 신한웨이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0.09.16 11:33:43

[프라임경제] 명나라가 망하고 이민족인 청조가 들어섰지만 저항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타이완을 근거지로 해 반청복명 운동을 한 정성공이 그러한 경우인데, 이 반청운동은 그의 아들대에까지 장기간 지속됐다.

정성공이 오늘날까지 유명해진 것은 청나라가 회유하기 위해 그의 아버지를 내세웠으나 물리쳤다는 '대의멸친' 문제 때문이다. 춘추 시대에 대부였던 석작이 아들의 죄를 냉정히 판단했다고 하는 고사에서 유래하는데, 인지상정상 별다른 선례를 찾기는 어렵다. 정성공 같은 경우가 회자되는 것도 이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대륙에서 떨어진 타이완을 항전 거점으로 삼기 위해 이곳을 점거하고 있던 네덜란드인들을 격파, 효율적인 행정 시스템을 건설했기 때문이다. 9개월간의 포위전 끝에 승리를 거둬 네덜란드인들을 몰아낸 이후 정성공은 효율적인 행정조직을 구성, 이를 통해 휘하의 군인들과 데리고 온 푸젠성 주민들을 이곳에 정착하게 했다. 본토를 수복하려는 결사항전이 군사적인 제스처나 수사학적인 외교력으로만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명나라에 준하거나 오히려 이를 능가하는 수준의 일상적 행정을 펴나갈 필요가 있음을 간파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신한금융그룹, 특히 신한은행이 '신한금융 사태'를 겪었다. 일본에까지 건너가 갑론을박을 벌이는 전대미문의 상황에 대해 일부 언론은 '빅3의 나고야 혈투' 격으로 초점을 두기도 했고, 일부에서는 권력 다툼을 중심으로 한 다소 선정적 각도에서 보도를 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을 더 이상 묵과하기 어려웠던 듯, 신한은행 이백순 행장이 본격적인 내부 수습에 나섰다. 이 행장이 16일 아침 행내 방송을 통해 "이번 사건의 본질은 부정과 부도덕한 행위를 뿌리뽑고자 한 것으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님을 분명히 밝히고자 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 행장이 신한지주 신상훈 사장 고소와 관련한 신한금융 사태에 대해 임직원 전체에게 공식적으로 입을 연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이 행장은 '신한가족 여러분께 드리는 글'을 통해 "모든 이사들이 고소 사유를 충분히 이해해 올바른 결정을 내려 줬다"며 "누가 이기고 지는 것이 아니라 법적 판단은 검찰에서 내려야 하고 조직의 빠른 안정이 최우선이라는 판단 하에 내린 결정이었다"고 밝혔다.

10여분간의 사내방송을 통해 신한은행 직원들의 심적 동요가 어느 정도 가라앉을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한 것과 앞으로도 주목할 대목은 이 행장이 이번 일이 일명 대의멸친격으로 정당함을 강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은행의 향후 조직 안정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하고 있다는 부분일 것이다.

이번 사태를 가리켜 '신한 웨이'가 무너진 일이라고도 우려를 표하지만, 사실 신한 웨이라는 자체가 무너지고 말고를 논하기에도 아직 적절치 않은 감이 있다. 돌이켜 보라. 불과 몇 년 전인 2005년 무렵 처음 나온 게 바로 이 신한 웨이라는 표현이고, 당시만 해도 '신한은행 방식(신한뱅크 웨이)'라고 했다. 아니, 신한은행이 남다른 영업 방식으로 주목을 끈 게 불과 1982년부터이니 이름이 언제 붙었고를 따지기 전에 그런 방침의 태동부터 따져도 연원이 오래이지 않다. 이 행장과 현 시점의 신한은행 모두가 아직 신한 웨이라는 길을 닦아 나가는 중인 셈이다.

그러므로 이 행장의 이번 사내 방송은 정성공이 대만이라는 새로운 곳에 일상의 기반을 다지면서 청과

   
의 전쟁도 치러야 하는 상황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이 행장이 사심이 있느냐 없느냐 따라서 이번 일이 대의멸친이냐 여부는 행원들이 스스로 가릴 일이다. 다만 외부에서 보기로는 이 행장의 이같은 내부 단도리가 앞으로 미완성인 신한 웨이를 새롭게 닦는 개척자의 면모를 보이는 것이라 더 주목된다. 이 행장이 앞으로 신한 웨이를 새롭게 곧추세운 인물로 기억될지, 즉 전쟁영웅이자 생활인이었던 정성공의 탄생 여부에 관심이 모아진다고 하겠다. 사실 생활인 노릇이 시시때때로 반짝이는 전쟁영웅 노릇보다 더 어렵다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된다 하겠다. 이 행장이 충심으로 노력한다면, 본토를 모두 점령한 대청을 상대로 대를 이어 긴 항쟁을 편 정성공의 사례처럼 신한 웨이도 쉽게 끊기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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