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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정몽구회장, 선친 얼굴 뵈려면…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0.02.09 10:00:09

[프라임경제] "경영은 머리로 하는 게 아니다. 이론과 머리는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참기업가 정신은 머리가 아니라 거트(gut,용기)로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주영 회장은 그런 점에서 거트를 타고났다"

1977년 10월 경영학자 故 피터 드러커 교수가 故 정주영 회장을 찾아왔다. 유한킴벌리 사장을 지낸 문국현 전 의원 등 내로라 하는 인사들도 존경한다는 바로 그 피터 드러커다. 정주영의 성공담을 잘 알고 있는 그는 만나자마자 '정주영식 경영'에 대해 이처럼 호의적인 평가를 했고, 두 사람은 의기투합해 환담을 했다고 한다.

현대家, 그리고 범현대계열사들의 정신이나 기상에 대해 (삼성의 경박단소에 비교해)중후장대이니, 남성적이니 하는 설명이 따라붙지만, 가장 중요한 힌트는 바로 "해 봤어?"정신일 것이다. 드러커는 합리주의와 이성의 힘만으로 경영의 세계에 닥쳐올 불확실성과 위험요소를 껴안고 갈 수 없다고 주장했고, 그런 성공 모델로 '정주영'과 "해 봤어" 정신을 꼽은 셈인데, 정 회장은 그런 드러커의 평가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고 자랑스러웠던 모양이다.

하기는 궁벽한 산골에서 태어나 단신상경, 자수성가한 고인에게는 "해 봤어?(도전해 보기는 하고서 그런 낙담을 늘어놓는 것이냐?)"라면서 일을 저돌적으로 저지르는 게 유일한 밑천이었을 수 밖에 없고, 그런 그의 '용기'를 인정해 준 드러커 교수가 '지음(知音)'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해 봤어?" 정신은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일에 강짜를 부린다든지, 안 되는 것에 억지를 피우는 데 본질이 있지 않다. 특히나 마구잡이로 억지를 피워 내 주머니에 잇속만 챙기는 데 목표를 두지는 않았다.

고 정 회장은 휴전 직후인 1953년 아무 기술과 경험 없이 낙동강 고령교 복구공사에 뛰어들었다. 처음엔 '관급공사'라 돈을 제법 벌 줄로 알았으나, 장비와 기술 부족은 물론 홍수라는 돌발 상황까지 겹쳐 몇 배의 공사비를 들여도 완공이 어려워졌다. 하지만 여기서 야반도주를 하면 앞으로 신용을 영영 잃는다고 생각해서 손해를 보고 완공을 했다.

1965년 사상 첫 해외 사업이었던 태국 고속도로 건설에서도 그는 참담한 실패를 맛봤다. 여기서도 시공 기준을 못 맞춰서 고전하다가 결국 손실을 보면서 완공을 해 주고 나왔다.

하지만 그는 이때 얻은 신용으로 전후 최대 공사라는 한강 인도교 복구공사를 수주했고, "괜히 해외 건설사업 진출을 독려해 임자가 손해를 봤네"라며 태국 건의 손실을 안타까워 하던 故 박정희 대통령의 전폭적 지지로 경부고속도로 사업에 참여했다. 이후 이를 바탕으로 범현대그룹을 일궜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때 故 정 회장은 정치자금 문제로 청문회에 불려나오는 등 수모를 겪기도 하고, 대통령을 해 보겠다고 정당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과정과 정치적 행보는 "장사를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어서"라든지 "이렇게 계속 뜯길 바에야 내가 직접 (정치를) 하겠다"는 반발심의 발로였지, 고인이 법 위에 군림한다든지 하겠다는 태도는 아니었다는 평가가 많다. 소학교 졸업장 학력에, 긴 군사정부 시대에 장사를 한 점을 감안하면, 경제활동을 통해 '기업보국'의 공익적 가치를 이문 남기기보다 먼저 이행하면서 산 '순백'의 경제인이라 평해도 무방할 것이다.

세월이 한참 흐른 후인 지난 8일, 故 정 회장의 아들인 정몽구 회장이 민사소송에서 패소했다는 단신기사는 후손들에게 선친의 이같은 정신을 다시 점검하는 계기가 되었을 줄로 믿는다.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이 불법 유상증자 참여 등으로 회사에 끼친 손해를 배상하라"는 경제개혁연대와 소액주주들이 낸 소송에서 "700억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서울중앙지방법원 판결이 나온 것이다.

재판부는 "정 회장이 개인연대보증 채무를 해소, 재산손실을 막고 궁극적으로는 그룹 전체 경영권의 위협을 막기 위해 현대차에 손실을 입힐 수 있는 상황임에도 현대차를 현대우주항공과 현대강관의 유상증자에 참여시킨 사실이 인정된다"고 지적했다.

다만 재판부는 정몽구회장이 이런 과도한 '거트'(?)를 발휘한 데 대해, "현대우주항공의 경우 IMF라는 국가비상상황에서 정부정책과 사회분위기에 따라 재무구조를 변경해야 했던 점, 정 회장의 가담 정도가 경미한 점, 현대강관의 경우 당시 우량회사로 성장 가능성이 있었고 실제 우량회사로 성장한 점 등을 참작하겠다"고 아량을 베풀어 청구액 중 일부를 감해주었다.

선친은 용기를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불굴의 기업가 정신으로 승화시켰고, 아들인 MK 역시 현대차그룹을 내수 전문 기업에서 세계적 카메이커로 성장시켜 왔는데, 이같은 잘못으로 인해 유구한 현대가의 전통에 현대 스스로 먹칠을 해서야 되겠는가, 일부 정상 참작을 해 줄 테니 반성하라는 법원의 배려인 듯 하다.

   
 
   
아마도 판결문을 받아들고 정몽구 회장은 책임을 통감했을 줄로 믿는다. 도요타의 리콜 사태를 보면서도 "라이벌이 몰락한다고 좋아할 게 아니다. 우리도 타산지석 삼아 품질경영을 해야 한다"며 타산지석 삼기에 여념이 없는 MK의 자세를 보면, 이같은 문제에 더욱 민감하게 가르침을 찾아낼 것으로 예상하는 게 어렵지 않다.

한 가지 주문하자면, 선친의 용기에 박수를 보냈던 드러커 교수가 살아 돌아와 정 회장과 지금의 현대차그룹을 평가하더라도 선친에 대한 평가만큼이나 우수한 말을 내놓도록 '앞으로는 한 점 의혹도 없이' 경영을 해 달라는 것이다. 그 점이 드러커 교수의 평가를 그렇게 좋아라 했던 부친을 나중에 지하에서 뵐 때 스스로 떳떳할 가장 좋은 길이자, 효도라는 점을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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