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역사는 1등만을 기억합니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1990년대 초반 삼성 광고 카피다. 달에 발을 디딘 첫 우주인과 두번째 우주인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 유무를 제시함으로써, 세계 각국 유수 브랜드들과 경쟁에 나서야 하는 삼성의 절박함과 각오를 밝힌 출사표다. 이 멘트처럼 삼성의 '치열함'을 잘 설명하는 문장도 없다(물론 지금은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코메디 소재로 차용되고 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1등주의와 함께 삼성 정신을 형성하는 줄기는 이건희 전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이다. "마누라와 아이만 빼고 다 바꾸라"는 일갈은 고인 물 삼성에 변화를 주문하는 절박한 주문임과 동시에 유연함을 무기로 세계 시장으로 뻗어나가겠다는 출사표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이러한 두 가지 키워드는 '삼성맨'들을 항상 독려하는 코드가 돼 왔다. 항상 변화를 주도하고 잘 하기를 갈망하는 이들의 정신은 우리 경제가 외환위기를 벗어나는 데 큰 원동력이 됐을 뿐만 아니라, 삼성이 세계적 경제주체로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이같은 삼성의 기본 매커니즘은 구성원들을 많이 닥달하는 방향으로 부정적 효과를 주기도 했다. 근래에는 오히려 삼성보다 편하고 길게 근무할 수 있는 공기업이 인기가 더 높다는 취업전선의 기류도 있지 않다던가.
최근 삼성을 둘러싸고 두 가지 상반된 기사가 나왔다.
하나는 사상 초유의 성과급 잔치가 벌어질 것이라는 이야기고, 하나는 삼성에서도 엘리트 코스만을 밟던 고위 임원의 업무부담으로 인한 자살 기사다.
이번에 자살한 A씨는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학원에서 전자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인물로 삼성전자 부사장직까지 올랐다. 어디 가나 이력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었던 셈이다. 아울러 전형적인 반도체 전문 엔지니어로, 삼성에서도 가장 우수한 인재에게 주는 '삼성 펠로우'를 수상한 인물이기도 했다. 승진에까지 영향을 바로 준다는 황금열쇠 삼성 펠로우를 거머쥐었을 때만 해도 그가 이렇게 되리란 우려를 하는 이들이 드물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우울해 하고 업무가 힘들다는 말을 했다는 보도들을 보면서, 삼성의 압박감은 삼성 내에서 1등그룹을 형성하는 이들조차도 버거운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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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몬다 파산 등을 빚어냈다는 악평을 남기고 있는,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이 주도한 '치킨게임'을 보면, 그리고 안기부 도청사건에서 드러난 각종 로비 논란 등을 보면 이들이 이러한 전쟁을 수행하면서 내부적으로 얼마나 많은 금이 가고 있을지 우려된다. 삼성그룹 전체가 A씨처럼 스스로가 만든 절벽으로 밀려 떨어질 날이 오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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