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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SKT '모토로이 보조금' 유감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0.01.26 14:51:00

[프라임경제] “세계 어딜 가나 1등 이동통신 업체는 아이폰을 출시하지 않습니다.”

SK텔레콤 관계자의 말투는 단호하게까지 느껴졌다. 미국 업체인 애플의 아이폰이 한국에 막 상륙한 때다. 더욱이 이때는 SK텔레콤이 애플사와 협상을 하다 결국 삼성전자의 간청으로 출시하지 않기로 가닥을 잡았다는 설이 나돌아 업계의 이야깃거리가 됐던 직후이기도 하다. 물론 이런 SK텔레콤의 발언은 발언 자체로만 놓고 보면 문제가 없다. 아이폰이 많은 세계인들을 열광케 하는 잇-아이템(it-item)이긴 하지만, 독특한 체계(맥 O/S를 기반으로 한다든지) 등으로 인해 아무래도 1등 이동통신 업체들에게는 구미가 덜 당기는 모양이고, 더욱이 이에 따라 실제로도 보통 2등 통신사들을 파트너로 삼는 경향이 있는 분명 사실이다.

더욱이 이 관계자는 “애플이 제시하는 굴욕적인 조건을 감수하면서까지 SK텔레콤이 끌려다닐 필요가 없다”는 자사 내 분위기도 전했다. 여러 모로 조건이 안 좋다는 타산적 문제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판단도 깔려 있는 듯 했다.

그러나 기자로서는 26일 한 가지 뉴스를 접하면서 이 같은 SK텔레콤 관계자의 발언은 상당 부분 빛이 바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SK텔레콤이 모토로라의 안드로이드폰(모델명 모토로이) 예약판매를 시작하면서 애플 아이폰(KT용) 보다 15만원에 육박하는 보조금을 더 지급키로  한 것으로 풀이된다는 전자업 전문지들과 경제지들의 보도가 쏟아진 것이다.

SK텔레콤은 이로써 기존 삼성전자 T옴니아와 2월초 정식 출시되는 모토로이를 투톱으로 내세워 상대방인 KT와 아이폰의 불길을 진압하러 나설 태세다.

하지만 이처럼 SK텔레콤 강력한 보조금 정책을 내세워 아이폰의 맹렬한 기세를 꺾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한 것은, ‘아이폰을 들여오는 데 국내 1등 이동통신사 SK텔레콤이, 우리 통신업계가 왜 머리를 숙여야 하느냐’는 당초 태도가 겉마음(일본인들은 이렇게 겉으로 보이기 위해 내보이는 마음을 다테마에라고 한다고도 하는데)이었던 것뿐으로 읽힌다.

결국 돌이켜 보면, 뭔가 눈길을 끄는 아이템을 사 오자니 귀찮고 남에게 넘기긴 아까운 계륵 국면에서 귀찮은 언론 관계자들에게 대응하기 위해 듣기에 따라서는 애국적인 감성을 더한 1등주의로 방어한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생각해 보자. 안드로이드폰은 구글의 스마트폰 운영체제(OS)가 탑재된 단말기를 뜻한다. 결국 이러한 안드로이드폰의 득세는, 구글이 국내 검색엔진 시장에서 외면 받던 상황을 어느 정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풀릴 수도 있다는 관측도 없지 않은 터이다. 즉, 외국 업체에게 굴욕적으로 끌려 다니지 않겠다던 SK텔레콤의 자존심이 결국 다른 업체를 잡아 대항마로 내세우겠다는 정도였다면, 그리고 오히려 더 많은 보조금을 주겠다는 대목에까지 이르면 이는 숫제, 아이폰을 도입하는 데 불리한 조건을 감수하기 어렵다며 목소리를 높인 이유가 대체 뭔가라는 혼란감까지도 빚어낸다. 결국 똑같이 돈 앞에는 국경도 국적도 없다는 상업주의의 ABC에 따라 움직일 것을 무엇 하러 도도한 척을 했나? 이 대목에서 오히려 고객이 무척이나 바라는 것을 들여오기 위해선 차라리 손실이 좀 있더라도 이를 오히려 경쟁업체의 기세를 꺾기 위한 투자비용으로 생각하고 과감하게 ‘내지른’ KT가 더 나아 보이기까지 한다.

만일 SK텔레콤이 2등, 3등 업체들에 대한 자만심을 좀 접고 더 적극적이고 창의적으로 생각했다면, 1등 업체가 아이폰을 가장 먼저 수입하러 나섰다는 진기록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란 점은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하자.

더욱이 이 대목에서 생각할 것은 SK그룹의 창사 초기 일화 한 토막이다.

SK그룹의 모태인 선경직물은 빈한하던 광복 후와 한국전쟁 무렵의 정국 속에서 외국에 물건을 내다 팔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이때 많은 홍콩 무역중개업체들이 “품질은 어느 정도 되니까 일본제라고 속이자”고 했다지만 이를 당대의 SK사람들은 단호히 거절했다고 한다. 거짓말을 하고 자존심을 버리며 장사를 할 수는 없다는 설명을 이유로 댔다는 것이다. SK텔레콤 관계자의 지난 번 발언은 그런 일화에 비춰 보면, 장사를 하는 중에도 거짓말은 하지 않는 걸 신조로 삼던 면면한 그룹 역사와도 좀 배치되는 일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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