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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위기대응능력과 기업 이미지의 함수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0.01.11 08:00:52

[프라임경제] 기업이 아무리 좋은 상품을 만들고, 사회 공헌을 해도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책임지는 자세를 제대로 보이지 못하면 상당한 실망감을 남기게 마련이다. 특히 위기 국면에서 고객 안전 관리나 사태 수습에 제대로 된 태도를 보이지 못하면 후일담이 그간 쌓아온 기업 이미지에 상당한 손상을 입히는 것이 불가피하다.

우리 나라 주요 기업들이 사고나 위기 국면에 무책임한 태도를 보인 사례가 없지 않다. 한화그룹의 모태인 한국화약은 1977년 전라북도 이리(지금의 익산)에서 대형 참사를 빚은 바 있다. 한국화약(지금의 한화) 인천공장에서 출발한 화차가 이리역 구내에서 직원 부주의로 폭발한 것.

화약과 도화선 등 위험물 280kg을 가득 실은 화차에서 한국화약 직원은 촛불을 피우고, 그도 모자라 이를 켜 놓고 잠이 드는 상황을 연출했다. 더욱이, 불이 막 옮겨 붙으려는 것을 잠을 깬 직원이 봤으나, "상자를뒤집어 엎는 등 손쉬운 진화 방법이 있음에도 이를 이행치 아니하고 도주하여(대법원 판결문 중 일부)" 결국 참사를 막을 마지막 기회마저 직원 스스로 떠나보냈다.

더욱이 이 폭발로 이리역 일대가 온통 사상자로 넘쳐나는 불상사를 수습해야 하는 국면에서, 지금은 세상을 떠난 김종희 한화그룹 창업주는 안면이 있는 공화당 모 의원 집에 막무가내로 방문, 머무르는 모습을 보였다는 증언이 나와 충격을 주고 있다. 추궁과 책임 혹은 세간의 비난에서 도망치려는 태도라는 풀이다. 설마하니 정권 실세 집에 잡으러 오랴하는 심리라고도 짐작할 여지가 없지 않다. 나중에 귀가해 이 불청객을 보다 못한 이 정치인이 수습을 도와주고 어쨌든 책임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충고까지 해 결국 김 회장이 돌아가 사태 수습에 나섰다는 일화다. 후에 김 회장은 이 정치인의 조언이 자신의 기업인으로서의 생명을 구했다는 생각에 여러 번 사례를 하려 하였으나 이 정치인이 이를 모두 물리쳤다는 이야기도 있다.

항공 사고에서 고객들을 사실상 나몰라라 했다는 충격적인 비판도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있다. 1998년 대한항공은 일본 동경에서 돌아오던 항공기가 착륙 중 활주로를 이탈하는 사고를 겪었다.

그런데 이때 활주로에 불시착하자 마자 폭발 가능성 등을 우려한 승무원(스튜어디스 등)들이 자신들부터 먼저 도망가 고객 구호 의무를 사실상 방기했다는 논란이 붙었다.

당시 이에 대해 일부 승무원들은 "두 명은 먼저 승강구를 열고 아래로 뛰어내려 고객들의 탈출을 돕고 나머지 인원이 뒤에 남아 탈출작업을 모두 지켜보고 돕게 돼 있다"는 등 항변을 했으나, 이에 대해 당시 각종 언론과 월간지 등 잡지(당시 중앙일보사 발간 월간지 '윈'-현재 월간중앙 개칭-등)에서는 이러한 항변에도 불구, 문제가 컸다는 지적을 했다. 아울러 이들 승무원과 대한항공의 항변을 모두 수용한다 해도, 안전불감증과 사후 방송 미숙 등 고객들의 추가 증언과 비판이 더 제기됐던 것.

이들 두 사건에서 공통점으로 발견되고 있는 점이 있다. 모두 안내 부족, 사후 처리 미숙, 책임있는 고객 인솔과 2차 피해 방지와 기발생 피해 수습 등이 결여됐다는 것이다. 큰 사고가 제대로 된 방어책 마련 부재로 더욱 끔직한 인명 피해로 이어질 추가 피해 가능성을 인식하지 못한 대목이라는 데에서 더욱 사회를 경악케 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위기관리 능력 부재는 1977년 한화 사건이나, 1998년 KAL기 활주로 이탈 사건 이후에도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우려가 최근 높아지고 있다.

지난 9일 발생한 한화 63시티(구 대한생명 63빌딩) 침수 사고는 이런 우려를 방증한다.

단순 동파 사고였던 것으로 뒤늦게 드러나긴 했지만, 막상 어두운 극장 안에 침수 피해가 있었던 점, 이에 대해 고객들을 위한 대피 대책이 충분히 가동되지 않고 직원들이 우왕좌왕한 점, 어떤 피해로 확산될지 모르는 와중에 일단 최대한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도록 인솔하지 못하고 환불 등 지엽말단적 문제에 직원들과 일부 고객들이 옥신각신하며 시간을 소모한 점, 수습에 제대로 된 대응 대책과 도구를 마련하지 못하고 청소 도구 등으로 임시방편을 한 점 등이 모두 참사 발생시 63시티 내에서 대형 인명 사고가 나지 말라는 보장이 없음을 시사한다.

특히 씨월드 가동으로 많은 물이 사용되는 건물이라면, 일단 침수 상황에서 최악의 사정을 반영해 안전 대책을 마련해야 함에도 이러한 움직임이 부실했다는 논란이 불거진 점은 심히 우려스럽다고 하겠다.

최근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은 '차세대 기술 산업에 대한 투자와 고용 확대' 등을 담은 2010년 신년사를 내놓은 바 있다.

그러나 이같은 각종 기업활동을 통한 국가 경제 기여, 그리고 각종 사회 공헌 활동 등의 노력은 이번 사고로 그 빛이 상당히 바랬다는 지적을 면키 어렵다.

과거 우리 나라가 걸어온 경제사의 어두운 측면, 1998년 KAL기 활주로 이탈 당시 위기관리 능력 부재나 멀게는 1977년 이리역 참사 당시의 위기 책임 의식 부재 논란 등에서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이번 63시티 사고 수습 과정을 보면, 상당한 아쉬움이 남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비단 한화그룹 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 기업들의 위기관리 능력이 어서 성장해야 할 필요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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