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강정원 KB금융 지주회장 대행 겸 국민은행장이 연초부터 손에 피를 묻혔다. 전임 황영기 지주회장 입성 때 함께 KB금융에 들어온 김중회 KB금융 사장을 사장직에서 경질한 것.
김 사장의 이러한 해임은 어느 정도 예견됐다는 말도 나온다. 이미 몇 차례 리스크 관리 문제 등을 놓고 이사회와 강 행장에게 엇박자를 놓았던 적이 있는 김 사장을 곱게 볼리 없다는 것이다. 아울러 강 행장이 지주회장직을 당국의 압박으로 포기했을 지언정, 은행장 자리까지 내놓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금융감독원 출신인 김 사장만한 희생양이 없지 않느냐는 해석도 가능하다.
하지만 여러 필요에 의해 김 사장을 경질했다고 해도, 이번 조치는 결국 소탐대실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우선 당장 외환은행 인수전을 준비 중인 KB로서는 당국과의 긴장 고조를 이번 조치로 스스로 증폭시켰다.
문제는 또 있다. 비은행권 역량 확대를 꾀해야 하는 KB금융의 지주사 구조를 강 행장이 스스로 고착화시키는 게 아니냐는 전망이다. 현재 각종 증권사와 보험사 인수를 위해 뛰는 KB 상황에서,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 은행부문 및 비은행부문을 모두 거친 김 사장의 역할론이 없을 수 없다. 비은행권 전문가를, 다소 불편하다고 해서, 또 어떤 정치적 필요에 따라서 쳐낸 것 아니냐는 논란 자체가 강 행장의 '그릇 크기'에 대한 의구심을 품게 할 수 있다.
생각해 보건대, 가톨릭 교회에는 '악마의 대변인'이라는 제도가 있다.
엄숙한 분위기가 지배하는 큰 조직일 수록 구성원의 반대의견 개진이 제한됨으로서 집단의 의사결정이 전혀 비현실적이고 비효율적이 되는 '집단 사고(groupthink)'가 발생할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가톨릭에서는 악마의 대변인을 지명하는 방법을 서 왔다.
'악마의 대변인' 혹은 '악마의 옹호자'라 함은, 가톨릭에서 한 인물을 시성(성인으로 인정함)할 때, 그의 업적과 순교가 과연 성인의 지위에 합당한 것인가에 대해 판단하는 중에 반대증거를 모아 제시하는 인물이다. 성인의 반대편 입장에서 그를 논박하는 역할을 맡은 성직자에게 주어지는 칭호다.
그는 시성에 반대하는 입장으로서, 그가 성인이 될 자질이 부족하다는 증거를 찾아야 한다.
여기서 유래된 '악마의 대변인'이라는 표현은, 한 집단에 있어 그 집단이 하는 주장 반대편에 서서, 그들의 주장이 타당하지 검증 또는 반론을 제기 등 악역을 담당하는 사람을 말한다.
조직이나 사람이나, 자기가 틀렸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기가 쉽지가 않다. '악마의 대변인'은 그래서 필요하다. 누군가가 그의 생각에 반대되는 생각을 말해줌으로서 반대 의견에도 그만큼의 정당성이 있을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해 주는 작업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강 행장은 김 사장을 쳐냄으로써, 결국 스스로 시야를 제약하고, KB금융에 다양한 시각이 존재할 기회를 포기하고 말았다. '악마의 대변인' 같은 사고의 경직성과 집단 사고의 오류를 막는 필터링이 없는 조직은 필연코 실패를 경험한다. 케네디 미 대통령과 참모진의 '피그만 침공 실패'가 집단 사고를 막지 못해 일어난 대표적 판단 오류다. 아마 이번 일이 혹시나 외환은행 인수나 푸르덴셜 증권 인수 등 여러 악재를 KB에 안기는 신호탄이 될지도 모른다. '악마의 대변인'을 갖지 못하는 조직은 스스로 정화 능력을 잃고 폭주할 수 있어 '악마'가 될 수도 있다는 것도 문제다.
이것이 강 행장이 김 사장에게 손을 댄 이번 조치가 극히 유감스러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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