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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현대중공업의 과오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0.01.04 10:00:01

[프라임경제] 구랍 27일, 한국 원자력 발전 역사상, 그리고 해외 건설 진출 사상 최대 쾌거가 전해졌다. 한국과 아랍에미리트(UAE) 간에 400억 달러의 원전 4기 수주계약이 체결된 것이다.

지난해 5월 프랑스의 전방위 고공 로비로 1차 경보가 울리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져 더욱 듯이 깊다는 평가가 내외에서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 와중에 우리 나라 당국의 위압적 행태에 관한 의혹 보도가 한 건 제기돼 논란이 예상되고 있다. 과거 국제그룹을 공중 분해시키던 서플 퍼런 시대가 다시 오는 게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올 대목이다.

주간지인 '중앙선데이'에 따르면, 한국 정부 인사들이 원전 수주를 아직 매듭짓지 못하고 있던 때에, UAE 측의 호감을 사기 위해 우리 당국이 무리수를 뒀다는 것이다.

문제가 된 부분은 현대중공업과 아부다비 국영석유투자회사(IPIC)의 법정 공방이었다. 왕족 소유인 IPIC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현대중공업이 보유한 현대오일뱅크의 지분 50%를 5억 달러에 사들인 데 이어 2003년 20%를 추가해 지분을 70%까지 늘린 적이 있다.

그런데 IPIC 지분 매각 추진 과정에 법적인 다툼이 불거진 것이다. 현대중공업이 국제상업회의소(ICC) 부설 국제중재법원(ICA)에 제소한 명분은 "IPIC 측이 현대계열 주주들에게 우선매수권을 준다고 한 계약을 무시했다"는 것.

하지만 왕족에 대한 제소를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는 UAE 측은 이를 이른바 '괘씸죄'로 판단핶고, 원전 수주를 위해 뛰는 우리 당국자들에게 사과를 받아달라고 요청(압력행사)했다는 것이다. 당국은 민간회사의 일이므로 관여할 수 없는 일이지만 신의와 왕족의 명예를 중시하는 UAE 측의 정서를 감안해중재에 나섰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현대중공업이 작성한 해명성 사과문을 전달했다는 것. 

문제는 여기에 있다.

이는 당국의 과오일 뿐만 아니라 현대중공업의 과오가 더 크다고 생각된다. 우선 ICA에서 승리한 사건에 대해 사과문을 쓰는 자체가 국제 상관습상 전례없이 저자세를 취한 것으로, 한국 기업 활동에 공신력을 실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아울러, 중동 지역에서 사업을 하는 우리 기업들에게 '압력에 약하다'는 이미지를 심어줘 같이 대응 능력 저하를 불러올 수 있는 동종업계에 대한 동업자 의식 부재도 문제다.

더욱이, 현대중공업은 그간 창업주 가족이자 주요 기업인인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와의 관계 단절을 누차 강조해 왔다. 지분을 갖고 있을 뿐 기업활동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정 대표가 여당 관계자이고, 기업 활동에 대한 당국의 압박 창구로 아마도 정 대표가 움직인 게 아니냐는 퍼즐 맞추기 논의가 이어질 경우 이는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중공업측에서 정 대표와 한나라당에 공정성 추락 손해를 입힌 셈이 되니, 이또한 결례다.

가장 큰 문제는, 현대중공업이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창업 정신에 먹칠을 했다는 데 있다. 고인을 광고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현대중공업으로서는, 손실을 볼 망정, 신의를 지키고 불의에 굽히지 않았던 창업 정신과 달리, 당당히 얻은 중재판결에 반해 사과를 하는 등으로 당국 압력에 유약한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 한 발을 물러서면 두번째, 세번째는 더 쉬워질 것이다. 당당함 하나만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해 온 현대그룹사에 이같은 전례가 드물다. 오히려 정치권의 부당한 압력에 반발해, 정치 입문을 선언했던 고 정 회장의 대통령 출마 행보 등을 감안하면 더 그렇다. 정치권도 못하던 대북 협력 사업, 재산을 털어 북에 소떼를 몰고 방북하던 고인의 생전 풍모와는 더욱 거리가 멀다.

이런 사정들이 이런 사과 의혹이 제기된 자체가 현대중공업의 과오라고 힐난할 수 있는 문제점들이다. 현대중공업은 이 문제에 대해, 청와대 등 당국에 대한 비판 여론과는 별개로, 대국민 사과라도 해야 할 줄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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