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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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8 07:17:29
[프라임경제] 한국 축구의 역사에서 여러 극적 국면이 있었으나, 그중 백미를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월드컵 4강 진출'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외국인 감독 히딩크가 처음 부임했을 때만 해도 그와 그가 훈련시킨 선수들이 이런 신화를 쓸 것이라고 예상한 이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초기에는 상당한 성적 부진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히딩크의 이같은 용병술은 상당한 관심 대상이 돼, 그 무렵 주요 기업체들의 면접 시험 주제로 부각되기도 했고 대학 경영학계에서도 연구 주제로 떠오르기도 했다.
2002년 히딩크 감독이 지휘한 국가 대표 축구팀의 성공 요인으로, 기초체력을 탄탄히 하고 팀워크를 강조한 부분이 눈길을 끌고 있다. 한편, 당시 제기된 여러 가지 관점 중에서 흥미로운 대목은 그가 '외국인'이었기 때문에 이같은 성공이 가능했다고 풀이하는 시각이다.
외국인 감독이었기 때문에 당시 한국 축구계에 뿌리내려 있던 각종 문제, 즉 멤버 발탁 및 관리에서 정실 인사나 연공 서열에 따른 피라미드제 등 여러 관습적으로 이뤄지던 패턴에서 자유롭게 팀을 이끌었다는 것이다. 히딩크 감독은 이런저런 이유로 그늘에 가려 있던 유망주들을 여럿 발굴해 일등공신으로 키워냈으며, 팀워크를 해칠 수 있는 행동을 하는 이는 기량이 뛰어난 유명선수라 해도 가차없이 물아붙여 버릇을 고쳐 화제를 모았다.
그래서, 김훈 전 시사저널 편집장 같은 원로 언론인은 당시 칼럼에서 '우리 선수들을 가지고 우리도 이미 이전에 충분히 이뤄낼 수 있었던 일을 우리는 못 하고 사령탑에 외국인 감독이 앉았기 때문에 비로소 할 수 있었다니'라며 탄식하기도 했다.
결국 이같은 히딩크 신화는 우리가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내부의 모순으로 인해 일을 할 수 없는, 이른바 '구조적 병폐'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시사하는 사건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근래에,애플 사가 휴대전화 아이폰을 국내 출시하면서 '아이폰 열풍'이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출시 3주 만에 판매량 15만대에 육박하는 아이폰 열풍에 삼성전자 등 국내 굴지의 이동전화 회사들은 적잖이 긴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의 반격이 여러 각도에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애플리케이션 스토어'에 특히 신경을 쓴다는 이야기가 나와 눈길을 끈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텔레콤은 'T옴니아2' 등에서도 다양한 콘텐츠를 내려받을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스토어를 개장한다는 것이다. 본격적인 아이폰 견제 카드가 나온 셈이다. 더욱이, 애플 앱스토어가 아이폰 전용이라면 삼성전자와 SK텔레콤은 MS 윈도모바일이나 구글 안드로이드까지 수용할 수 있는 '콘텐츠 백화점' 전략으로 맞서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른바 '삼성 애플리케이션 스토어'의 개장은 개운찮은 뒷맛을 남기고 있다.
17일 현재 알려진 바로는 이 스마트폰용 애플리케이션 장터는 삼성전자가 이미 상당 기간 전에 갖고 있던 카드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지난 9월 애플리케이션 스토어를 영국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3개국에서 선보여 EA모바일 등 세계적인 모바일 콘텐츠 제작업체들이 제작한 게임, 날씨 정보 등 800여 개 콘텐츠를 서비스하기 시작한 바 있다.
이미 오래 전부터 가동을 염두에 두고 연구가 진행됐고, 그 성과물이 9월에 유럽 현지 출시로 이전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현재 업계의 정설은 이 애플리케이션 스토어는, 애초 '국내 출시 일정'은 미정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최근 아이폰이 다양한 콘텐츠를 무기로 인기몰이를 하자, 대응카드로 서둘러 국내 개장을 결단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물론 이제 한국의 기업이라기 보다는 세계적 기업이다. 아울러, 외국 시장에서 선전해 외화를 벌어들이는 고마운 존재라고 많은 국민들이 믿고 있다. 그러나 외국 시장에서 인기를 끈 콘텐츠를 삼성 애플리케이션 스토어에 순차적으로 들여오는 문제, 즉 외국 시장이 먼저라는 느낌을 주는 데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마치, 현대자동차가 내수용 시장에서 수출 시장보다 많은 수익을 올려 전체 수익을 맞춘다는 논란과도 유사한 것이다.
그렇다면, 극단적으로 상상해 보자. 국내에 아이폰이 결국 상륙하지 않았다면, 삼성전자는 혹시나 이같은 비상카드를 꺼내들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삼성전자가 삼성 애플리케이션 스토어를 별도 장터를 여는 대신, SK텔레콤 앱스토어인 티스토어(TStore)에 매장 내 매장(숍인숍) 형태로 선보일 예정이라는 것도 약간은 의아하다. 물론, 이동통신사와 협력 관계를 유지한다는 측면에서 별도 장터를 열기보다는 숍인숍 형태를 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마도 이것이 주요 판단 원인일 것이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애플 아이폰을 국내에 등장시킨 KT를 몰아붙이기 위해 SK텔레콤을 원군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으로 이를 볼 여지도 충분히 있다.
삼성전자는 분명 기술력에서나 마케팅 어젠다 설정 능력 등에서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그런 최고 수준이 국내 시장에서는 100% 발휘되지 않는 느낌이다. 사실 아이폰이 여러 단점이 있음이 주지의 사실임에도 상당한 열풍이 부는 데에는 기존 휴대전화 생산기업들에 대한 국내 고객들의 불만이 쌓여 있었기 때문이라는 유력설도 등장한다. 혹시나 히딩크 같은, '금발벽안 사령탑'이라도 삼성전자에 등장하면 이런 상황이 달라질까? 마침 삼성그룹 임원단 인사로 인해 삼성전자 원톱으로 최지성 대표이사 사장이 등장했다. 최 사장이 이같은 상황을 두루 살펴 히딩크 같은 '일'을 저지르기 바란다. 한국대표 기업 사장까지 오른 두뇌가 히딩크만 못해서야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