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요새 "누가 또 아이리스냐?"가 세간의 관심거리라 한다.
KBS 드라마 '아이리스(Iris)'를 놓고 하는 이야기다. 여기서 아이리스는 '음모론'에 나올 법한 초국적 집단. 자기 집단 이익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으며, 각국 정부 최고위층에까지 촉수를 뻗고 있다. 모종의 목표를 위한 이들의 음모에 대한민국 정도 규모의 국가는 존립 자체가 흔들릴 지경이다. 더욱이 이들은 자기 집단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 주변의 모든 인간 관계나 감정까지도 이용할 정도다. 한 마디로 맹목적(Eyeless)이며 위험하다.
이 드라마 제작 과정을 서울특별시가 지원하고 있다. 물심양면 지원에 나선 이유는 서울의 관광 명소화라고들 이야기한다. 아닌 게 아니라, 드라마에 멋지게 나온 인물이나 기관, 그리고 배경이 된 장소는 세월이 오래 흘러도 세계적으로 팬들에게 흡인력을 발휘하는 법이다.
영화 '로마의 휴일' 속에서 몰래 경호망을 뚫고 자유를 만끽하는 공주 역의 오드리 헵번이 아이스크림을 먹던 계단에는 지금도 각국의 관광객이 몰려들고, 이들은 기자 역의 그레고리 펙처럼 '진실의 입'에 손을 넣었다가 비명을 지른다. 우리 나라에도 '겨울 연가'의 촬영지가 '욘사마' 열풍에 빠진 일본 아줌마 부대들의 순례지가 돼 재미를 보았다는 후문이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나 '섹스 앤 더 시티'의 배경이 된 뉴욕은 또 얼마나 근사하게 많은 이들의 뇌리에 남아 있는가.
하지만 아이리스 후원에 열을 올리는 서울시의 계산과 바람만큼 이 드라마가 서울시 홍보에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드라마는 쾌속 항진을 하고 있고, 드라마에 과감하게 신규 차종 K7을 후원했던 기아자동차는 엄청난 반사이익을 봤다는 게 중론인데 말이다. 일요일이라 해도 막대한 시민 불편을 감수하고 12시간 광화문 통제 촬영 협조라는 '결단'까지 내렸는데 말이다.
드라마를 보면 그 고민은 쉽게 풀린다. 이 드라마는 서울이 멋있게 나오는 드라마가 아니다. 오히려 '오세훈 서울시정'은 물론 국가 이미지까지도 깎을 수 있는 위험성마저 갖고 있다고 생각된다.
광화문 총격전이 방송된 당회분을 IP TV로 받아 보면 러닝 타임은 총 1시간 2분이다. 이 중에서 광화문에서 총격전이 시작될 때부터 이병헌이 경찰 병력 등에 무장 해제될 때까지는 총 11분에 불과하다. 한나절 시민들을 불편하게 한 촬영분이 고작 11분이냐는 논란은 일단 접어 둔다 해도, 서울이, 광화문이 별반 멋지게 나오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여기서 이번 시장 임기 중 조성된 광화문 광장은 극히 잠시 비춰질 뿐이다. 그것도 사람이 바글거려 테러 대상이 되는 곳으로 나올 뿐 안온한 휴식의 중심지로는 보이지 않으니 유감이다. 아울러 폭발에 따른 검은 연기 너머로 보이는 세종대왕 동상 등이 아주 잠시 비춰질 뿐이라 이 역시 멋지지는 않다.
그래도 멋있고, 관광 유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아닐 것 같다. 이유는 이렇다. 광화문이 핵테러의 목표가 된 상황에, 서울시와 서울시민들은 철저히 객체일 뿐인 것으로 나온다. 여기에 테러를 막아 시민들의 목숨을 구해야 할 국가 권력은 비정해 뵈고, 그나마 움직임의 아귀가 맞지 않는 게 아니냐 싶을 정도라 시청자의 우려를 낳을 정도다.
광화문이 목표라는 것을 알고 있되, 결론적으로 핵폭탄을 찾고 이를 장악해, 제어 하에 두지 못한 상황 속에서, 정보기관의 대응은 광화문 일대의 전파를 차단해 핵폭탄의 리모콘 조작을 막는 선에 머문다. 초인적인 주인공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느냐고? 착각하지 마시라. 이런 영웅주의를 배격하고 관리하는 것은 고대 아테네에서 도편추방제도로 잘나서 힘이 쏠릴 수 있는(위험할 수 있는) 인물들을 통제한 바와 같이 민주정을 표방하는 국가들의 오랜 골칫거리이자 숙제다. 아니, 그리고 초인적인 주인공이라도 이를 해결 못 했으면 어쩔 뻔 했나?
이쯤 되면, 신호등이 멈추고 핸드폰이 모두 불통돼 아수라장이 된 시민들에게 경찰이, 시 공무원들이 질서있고도 신속하게 (하위직 공무원 전원까지 사정을 알 리 없으니 시민들이 불안하게 핵테러 운운할 수도 없을 터) '출구전략'부터 제시하는 게 순리라고 본 기자는 생각한다. 1000만 인구를 상대로 인허가를 내주고 영업을 단속하는 서울시다. 그런 서울시가 (이유는 잘 몰라도) 광화문에서 시민들을 안전하게 철수하도록 유도하는 일에 빠진다는 설정 자체를, 본 기자는 이해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 차들이 뒤엉키고 시민들은 우왕좌왕하는 상황을 방치하고 폭탄 찾기 놀이를 한다고? 한 마디로, 경찰 등 치안 당국의 능력과 사상적 정당성에 대한 의구심 뿐만 아니라 서울시의 행정력을 전혀 고려에 넣지 않고 무시하는 이 드라마는 서울시를 '무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테러 위협이 있는 상황에 주변에 미리 경력대비(경찰 병력을 미리 준비해 놓는 일을 말하는 행정용어)했다가 신속히 총격전 등에 대응하는 것도 아니고, 경찰관차들이 차가 막혀 우왕좌왕하다 결국 뛰어 다니는 장면이라든지(5:29), 전자 손목시계까지 모든 전자장비가 멈춘다는 전자전(을 응용한 전파 차단) 상황에 '플루 예방 수칙' 운운하는 전광판은 움직이는 게 이상하지 않느냐(4:52)는 논란 등은 차치하고라도, 이런 기본적으로 우리 나라 공직자들이 시민들을 불안하게 하지 않게 한다는 미명 하에, 시민들의 안전 철수를 강구할 모든 기회들을 포기하고 폭탄 찾기에만 골몰하는 듯 보이는 드라마 흐름은 용서할 수 없다. 반경 2Km가 위험한 작은 핵폭탄이라는 걸 우리 당국은 알고 있었다면, 시민들에게 이 정도 거리 밖으로 빠져 나갈 기회는 주는 게 맞다. 오 시장 취임 이래 최악의 참사인 '용산 참사'에서 시위자들에게 마지막 철수 기회를 제대로 안 주고 몰아붙여 사상자를 낸 것이라는 일부 비판론이 겹쳐 참으로 안타깝고 아찔한 일이다. 그야말로 드라마이기에 망정이다.
광화문 광장에 얌전히 모여 놀고 있는 시민들을 당국이 그야말로 영문도 모른 채 죽게 내버려 둘 수도 있는 것으로 비추는 드라마에 지원을 하는 서울시를 이해할 수 없다. 추진 과정에서의 잡음들이 많아도 결국 멋지게만 풍경을 비춰주면 다라는 식으로 생각했다고 추측하면 결례가 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게 욕을 먹더라도, 이런 방식으로 광화문 광장을, 서울의 멋진 스카이 라인을, 청계천을 비춰서 얻을 것은 너무도 작지 않겠느냐고 서울시 문화정책 담당자들에게 이야기하고 싶다. 하기야 고궁 코 앞에도 7성급 호텔이 들어설 수 있다는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시정을 펴는 서울시, 고궁의 정문 앞에 스노 보드 점프대를 만들어도 되고 이게 오히려 대단한 효과를 거둘 것이라고 생각하는 서울시, 이런 속내를 몰라주는 비판론자들 때문에 '재선도전'을 하기 싫다는 시장을 모시는 서울시라면, 이런 비판이 별무효과일 터이다.
하지만 차기 시장이 집권하는 다음 시정부터는 서울시가 다른 모습을 보이기를 기대해 본다. 서울시민들, 그리고 국민들이 "누가 또 아이리스냐"를 궁금해 한다고 글 서두에서 이야기했다. 지금까지만 놓고 보면 오 시장은 아이리스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오세훈 서울시', 그리고 '오세훈 서울시장'이 아이리스(Eyeless)라는 평가가 오 시장의 '최종 성적표'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