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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스토리텔러 오세훈을 보고싶다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09.12.14 17:34:20

[프라임경제] 우선 출판계에서 종종 언급된다는 이야기를 하나 하고 시작하자.

"Fact tells, story sells.", 우리 말로는 "사실은 전달될 뿐이지만, 이야기는 팔린다"는 정도가 되겠다. 어쨌든 단순한 사실, 화제 등은 그저 단순 소비되지만, 사람 이야기가 들어가면, 그건 더 큰 반향이 있다는 뜻이 되겠다.

아마 대부분의 독자들이 알 만 한 곡인데, '소양강 처녀'라는 곡이 있다. "해 저문 소양강에/황혼이 지면/외로운 갈대밭에 슬피우는 두견새야"로 사작되는 이 노래는 우리 나라 가요계 발전사에서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거물 반야월 선생이 노랫말을 붙은 곡이다.

지금 들으면 전형적인 '트로트' 노랫가락이 촌스럽다는 느낌을 줄 법도 한데, 소양강 강가에서 애를 태우는 방년 아가씨의 심사가 전달돼 감정 공명을 일으킨다는 평을 들으며 지금껏 국민 애창곡으로 남아 있다.

이 곡의 주무대인 소양강 관련 지역에서 어떻게 이런 호재를 놓치겠는가.

결국 춘천시가 이 노래를 기리는 동상을 제작해 세웠다. 사실 시비를 세우는 듯 순수한 마음이었다기 보다는, 관광 명물로 만들겠다는 야심이 작용한 것 같다는 심증은 드나, 이건 일단 눈감고 넘어가도록 하자.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이 소양강 처녀 동상이 영 아니라는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우선 치마 길이가 짧다느니 하는 불만들이 나왔다. 열여덟 순정의 처녀를 상상하던 많은 이 중 일각에서는 '너무 튼튼하고 억센 아낙네를 만들어 놓은 게 아니냐'는 농담도 한다. 더 심각한 건 야간에 지나가던 차량에 타고 있던 이들이 22m 거대한 동상에 '귀신'을 본 듯 놀란다는 비판이 일어난 것이다. 조명이 설치되지 않아서라나. 하긴 거대한 동상이 불쑥 시야에 들어오면, 문제이긴 하겠는데, 그래서 이 점은 일부 언론에서 비판하기도 했고 개선이 논의됐던 것으로 안다.

다소 여성의 미모를 강조하는 듯한 불편한 쪽으로 비판이 등장해 불쾌할 수 있는 점은 일단 논외로 하자. 결국은 노랫말 속 상상의 주인공하고는 따로 노는 듯한 큰 동상이 등장해 실망감이 퍼졌고 이 표현들이 여러 형태로 나온 게 아니겠는가. 결국 주제는 '내 소양강 처녀는 이렇지 않아'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랫말이 상상케 하는 아담한 키에 오종종한 얼굴 생김새의 처녀는 어디 갔나? 아마도 저 큰 동상은 이런 정서를 충분히는 담아내지 못한 것 같다.

그런데 주목할 만한 일이 있다. 이 소양강 처녀를 관광 이벤트화하는 데 몸이 단 춘천시가 22m 동상을 세우고 생김새가 아니네, 동상이 너무 커서 위압적이네, 밤에 보면 귀신 같네, 하는 한 마디로 마음에 안 들고 뭔가 허전하다는 비판을 받던 무렵의 일이다.

'경향신문'의 어느 나이 지긋한 기자가 칼럼을 썼다. 그 노래 가사의 모티브가 된 처녀, 반야월 선생에게 작사 아이디어를 준 처녀가 지금도 고향에 산다는 것을 언급한 것이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 열여덟 처녀는 더 이상 아니나, 대단한 이야깃거리가 아닐 수 없다.

그녀는 이 노래가 전국에서 널리 불리는 동안, 상경해 가수로 살았다. 주로 행사장에 서는 무명가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귀향한 지금은 노래와는 관련 없는 일을 하면서 산다고, 그 기자는 칼럼에서 전했다.

물론 진위 논란은 있겠으나, 일단 사실확인을 하고, 또 본인의 의사를 묻고 찬성을 얻고 난 다음이라면, 이런 것도 가능했지 싶다.

'워렌 버핏과의 점심 식사'가 큰 문화상품이 되듯,소양강 처녀와의 강변 산책이라는 스토리를 입힌 관광 아이템을 출시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결국 춘천시는 거대한 조각을 세워 귀신 나온다느니 하는 소리를 듣는 방법으로 갔고, 그 여주인공은 여전히 그냥 그렇게 산다.

'스토리'가 묻히는 순간이다.

생각하건대, 이런 이야기는 유사한 사례가 없지 아니하다. 정동진에 가보면 어느 샌가 들어선 거대한 모래시계 때문에 망연자실하게 된다. 모래시계로 시간 재러 정동진에 가는 게 아닐진대, 이게 무엇인가? 사랑하는 연인과 새해 첫 해를 보러 가는 이들이라면 이게 참 볼 거리일 수 있겠지만,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혜린(고현정 분)이 고뇌하던 그 고즈넉한 바닷가를 추억하러 가는 많은 이들에겐 이건 테러나 다름없다. '스토리'를 애써 죽이고 웬 형상을 세워 놓고 눈길끌기를 하려 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엔 오세훈 서울시장이 또 이 22m 소양강 처녀 동상, 바닷가 모래시계 같은 일들을 벌이고 있다.

시민의 애환이 담긴 동대문운동장 철거, 조선시대 이래 서민 정취가 담긴 피맛골 재개발 밀어붙이기, 문화재청과의 마찰을 빚으면서까지 문화재(가)지정 건물인 시청 본관 허물기 강행 등 서울시가 600년 도읍지로서 가진 많은 스토리들을 뭉개 왔다.

그러고 나선 하는 일이 스노보드 대회 점프대를 고궁 앞에 세우고 멋진 신식 건물 중심 도시로 바꾸는 일들이다.

   
   
 
이런 과도한 개발 논리에 서울은 이야깃거리가 없는 도시로 변모하고 있다. 그래 놓고 나서 '하이 서울 페스티벌'만 봄/여름/가을/겨울로 쪼개서 한다고 외국 관광객들이 많이 들어올 리가 없다. 결국 외국에 가서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을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온다. 당장은 생경한 풍물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외국인들은 어떻게 살아왔고, 살아가는가라는 이야기 아닌가. 서울은 이야기 없는 흉한 거대 건축물들만 가득한 도시가 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외국인 관광객도 아닌 서울시민들이 행복하지 않아질 가능성이 높은 정책이 바로 이런 개발 정책이라는 것이다.

이계안 전 현대자동차 사장은 이를 가리켜 "서울을 성형수술 도시로 만드려는 정책"이라고 비판한다.

재선에 도전하든, 안 하든, 서울을 이야깃거리 없는 도시로 만드는 것은 관광 정책에도, 시정 발전에도 도움이 안 된다. 오 시장이 22m 동상 건립이 아닌, 실제 노랫말 주인공의 이야기에 열광할 수 있는 마인드의 수장이 되어주길 바란다. 정동진이나 소양강가를 다스리는 원님들보다는, 판윤의 머리가 더 창조적이고 따뜻하고 인간적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스토리 텔링이 되는 남자 오세훈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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