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민사소송을 진행하다 보면 실기한 공격방어 방법의 각하라는 개념이 있다. 요새는 늦은 공격방어방법의 각하라고도 한단다.
자주 언급되는 내용은 아니나, 증거 제출 방식이 수시제출주의에서 적시제출주의로 바뀌면서, 이미 상당히 재판 과정이 진행된 터에 상대방에게 불필요하게, 불의타를 안기는 것이 불공평하다고 생각되는 경우 제출을 허용하지 않고 판결을 해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현 서울특별시 도백을 맡고 있는 오세훈 시장은 과거 국회의원 시절부터 촉망받는 정치인이었다. 하지만 그의 행보 여러 곳에서는 망설임의 흔적이 적지 않았다. 우선 당내 5공, 6공 출신 인사 퇴진을 강하게 요구했던 그이지만 이같은 행보 한켠에서는 스스로 16대 총선에 불출마를 선언함으로써 이러한 공격에 공적으로는 정당성을, 사적으로는 인간적으로 함께 책임을 지고 같이 떠난다는 평을 얻을 여지를 남겨 뒀다고 풀이할 수 있다.
이는 정동영 의원이 '정풍 운동'을 벌이면서 물러남이 없이 강하게 밀어붙여 권노갑 전 의원 등 선배 정치인들을 몰아내는 데 성공한 것과는 양상이 좀 다르다. 따라서 오 시장의 이같은 불출마 선언과 구정권 출신 인사 몰아내기는 한계가 없을 수는 없었다.
오 시장의 모호한 태도는 이후에도 여러 번 목격됐다. 오 시장 자신의 청렴한 이미지를 만들어 준 '선거법 개정' 등의 치적은 앞으로도 높이 평가할 만 하지만 과거 정치 습속과 전적으로 거리를 두지는 못했다. 어느 정치적 격변 상황에서 오시장은 동료 의원들과 국회의장 출근저지에 '몸으로 떼우는' 역할을 맡고 나섰다. 당시 문화방송(MBC) 어느 시사프로그램은 당시 오 시장이 방송 카메라에 잡히자 자장면을 먹다가 슬그머니 일어서 자리를 피하는 그의 화면을 갖고 있고 여러 번 이를 인용하기도 했다.
오 시장은 또 사법시험 합격 후 장교로 군복무를 하면서 보안사령부에 근무했던 문제에 속시원히 사과를 하는 데 인색했다. 오 시장측 인사들의 말마따나 당시 중위급 인사에게 중요한 기밀이나 민간인 사찰의 핵심 업무를 맡기지는 않았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이는 오 시장이 의원 시절 국무총리 인사청문회에서 고건 전 총리를 거세게 몰아세운 것과 비교하면 이해되지 않는 처사다. 오 시장은 2003년 2월 고 당시 국무총리 지명자 인사청문회에서 "온 국민이 분노한 박종철씨 고문치사사건 등에 대해 50여 차례 참석한 내무위원회에서 단 한 마디 언급도 않는 등 중요한 순간마다 침묵을 지켜왔다"고 비판하면서, "침묵하면 편하지만 그게 반복되면 하나의 패턴을 형성하게 된다"고 해 이런 점이 나중에 서울시장 선거 당시 구 열린우리당측 공격 자료로 인용되기도 했다.
오 시장의 이러한 처세술은 시장 선출 후에도 이어졌다. 오 시장은 한나라당 후보자들이 뉴타운을 정치적 이슈로 이용하고자 할 때 단호한 배격을 해 이를 차단하는 데 실패했다. 그 결과 정몽준 의원(현 한나라당 대표)의 선거법 위반 사건에 함께 조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기도 했다.
이런 오 시장의 행보를 우려하는 것은 그가 우리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지방자치단체 수장직을 수행하고 있고, 앞으로도 수행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언론들은 오 시장이 사실상 서울시장 재선을 노리고 있다며 그의 여러 발언에 대해 의미 부여를 하는가 하면 다음 행보에 벌써부터 눈길을 주고 있으며, 오 시장측도 '정계 은퇴' 따위의 강한 부정은 않고 있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오 시장이 시의 모든 정책을 입안하고 하나하나 살피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태도는 정책의 메인 스트림이 된다. 그의 색깔이 서울시 공무원들의 기조에 영향을 끼친다. 그런 맥락에서, 인구 1000만의 도시인 서울시의 여러 정책이 국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으로 볼 때, 그의 문제점을 우려하는 것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더라도 필요한 일이 될 것이다.
오 시장은 서울을 '금융허브'로 만들기 위해 노력을 경주하고 있고, 여행 프로젝트 등 여성 편익 증진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시에 거주하는 저소득서민층을 지원하기 위해 우리은행과 손잡고 여러 금융 정책 프로그램을 펴고 있다.
하지만 "서울은 홍콩이나 싱가포르보다 금융허브로서 기반이 튼튼하다고 생각한다"고 자신만만해 하는 이면에 오 시장은 용산 참사 유가족들에게 "요구조건 수용은 어렵다"면서 주요 문제를 중앙정부가 처리해 주기를 바라는 듯 우물쭈물하는 태도를 보인다는 평을 사고 있으며, 위에서 말한 뉴타운 문제에서도 한나라당쪽 인사들의 선거법 문제를 고려하는 게 아니냐는 정치부 기자들의 해석 기사가 쏟아질 정도로 좌고우면하는 모습을 한때 보였다.
이런 시장의 행보를 닮는 것일까? 작은 문제라고도 할 수 있는 피맛골 개발 문제에서 서울시측이 보인 태도를 보면 부창부수라는 말이 떠오른다. 서울시는 피맛골 철거가 상당 부분 진행된 후에야 협의를 통해 이를 유지 및 복원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때늦은 행보를 보였다. 문자 그대로 '실기한 공격방어방법의 제출'이 아닐 수 없다. 전임 시장 시절 개발 인가를 내 줬으니 자기 책임이 아니라고 생각하다가 뒤늦게 오 시장까지 이미지 실추를 겪게 생겼으니 나선 것 아니냐고 해석할 여지도 없지 않은 일처리다.
앞으로 오 시장이 재선을 하는 경우, 수많은 정책이 이번 '오세훈 1기'처럼 모호한 태도와 뒤늦은 착수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하면 기우일까. 집권 2기의 가능성이 전혀 없지 않은 지금부터라도, 이런 문제에 대해 시 모두가, 그리고 시장실이 심각하게 고민해 보는 것도 의미가 없지 않을 것 같다. 참고로, 오 시장은 민사소송법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숙명여대에서 겸임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으니 '실기'라는 단어가 갖는 무서움을 누구보다도 잘 알 것이다. 실기한 공격방어방법을 법정에서 쳐 주지 않듯, 기회를 놓쳤다 나중에 부산을 떨어 시민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행정은 설자리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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