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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재계,포이즌필 받을 자격 먼저 갖춰야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09.11.10 09:23:45

[프라임경제] 정부가 '포이즌필'(poison pill=신주인수선택권)을 도입을 본격 추진할 방침이라는 소식이다.

포이즌필은 적대적 M&A가 시도되는 경우 기존 경영진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방어책을 가동할 수 있도록 특권을 부여하는 제도라고 요약할 수 있다. 기존 주주들에게 시가보다 훨씬 싼 가격에 지분을 매입할 수 있도록 미리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적대적 M&A 시도자로 하여금 지분확보를 어렵게 하는 것이 골자다.

포이즌필은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갖고 있는 양날의 검이다. 경영권의 안정적인 확보가 가능하다는 점은 경영진에게 심리적 안정감은 물론, '백기사' 확보를 위해 노력하거나 경영권 방어를 위해 자금을 일정 부분 방어용으로 갖고 있는 대신 이를 투자에 집중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경영의 비효율성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이 제도의 그림자다. 기업의 경영권 굳혀주기에 집착한 나머지 정상적인 M&A까지 봉쇄하는 것은 경제의 활력과 경영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아울러 이같은 원론적 단점 외에도, 개인적으로는 한국적 기업 특성인 재벌 문화가 아직 사라지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 이 제도가 왜곡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싶다.

경영권 강화에 강한 방패를 갖추게 되면, 경영진, 대주주 등이 모럴해저드에 빠질 우려마저 없지 않다. 지금은 각 기업별로 순환출자형 대신 지주회사체제로 정비 중이지만, 아직까지도 극소량의 지분으로 창립주 일가가 제왕적 지배를 하는 구습이 철폐되지 않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 포이즌 필 같은 방어권까지 제도적으로 받침해 주면 열린 경영이나 공격적인 경영에 소홀해져 기업가치가 떨어질 가능성은 상당히 높아진다.

외부 투자 역시 시들해질 수 있다. 그래서 포이즌필은 그 말의 의미처럼 '독소 조항'으로서의 약점은 물론이요, 재벌 구조의 고착화라는 부수적 효과까지 가져올 극약 처방이 될 수 있지 않은가 한다.

자본시장개방이 본격화하면서 외국인들의 국내 기업 지분율은 갈수록 높아가고 있다. 하지만, 외국자본의 유입 자체는 나쁘지 않다. 투기성 자본은 색출해 자본의 건전성을 높이는 작업이 중요하지만, 그 반대급부로 포기할 것이 너무 강한 제도를 선뜻 도입해서도 안 될 것이다.

아울러, 2000년 이후 국내에서 적대적 M&A가 시도된 사례는 고작 16건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은 문제점을 막기 위해 체력 강화 기회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이는 대목이다.

포이즌필이 시장 기능을 저해하거나 악용될 소지에 대한 고민은 아무리 해도 늦지 않다. 아울러, 우리 나라 주요 기업들이 이명박 대통령의 투자 촉진 요청에 제대로 호응을 하지 않고 전경련 등에선 오히려 "이 정도면 많이 하는 것"이라는 정도의 도발적 발언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적대적 M&A를 막을 방패를 제공하면 이에 방어적 개념으로 묶어둬야 하는 자금까지 모두 투자자금으로 전용될 것이라는 접근은 너무 순진한 게 아닌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정부와의 유착으로 커왔다는 태생적 한계는 차치하고라도, 기회가 닿을 때마다 우리 나라 재벌 기업들은 본연의 기업가 정신을 발휘하기 보다는 땅투기나 후손에게 재산을 비정상적으로 물려줄 궁리를 하는 데 집착하는 등 실망스러운 모습을 많이 보여왔다. 더욱이 경영권을 제왕적으로 휘두르는 비정상적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아직 사회의 기대치에는 많이 미치지 못하는 등 소홀한 것 같다. 과연 이런 집단에 외국식 제도를 곧이곧대로 가져다 선물할 필요가 있는지, 자격을 묻고 싶다고 한다면, 본 기자가 너무 의심이 많은 것인가? 우리 나라 기업들이 선진적 제도 이식이라는 선물을 받을 자격이 충분한 선진제국의 기업을 따라가는 경영 행보를 앞으로 많이 보여 주길 바란다.

임혜현 기자/프라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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