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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김승유 미소재단 이사장의 '기리'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09.11.05 14:31:53

[프라임경제] 문화인류학의 명저로 꼽히는 '국화와 칼'은 일본인의 특이한 정서인 '기리'에 대래 설명하는 데 몇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다. 한자로는 義理라고 쓰는데, 미국인 저자가 느끼기에도 생소한 개념일 뿐만 아니라, 책을 읽어봐도 100% 명확히 와닿지 않는 걸 보면 일본인이 생각하는 기리는 우리 한국인이 생각하는 의리 개념과도 좀 다를 수 있겠다 싶다.

특히 베네딕트가 말하는 기리 중 '이름에 대한 기리'는 특이하다. 일종의 명예 감정이라고도 번역할 수 있겠는데, 자기 이름에 책임을 진다는 개념이다. 이름이 더럽혀지지 않게끔 노력을 할 의무가 생기며,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복수를 하거나 자신이 누명을 썼음을 입증하기 위해 성과물을 세상에 과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베네딕트는 책에서 "독일인들이 말하는 die Ehre(명예)와도 비슷한 것"이라고 이 이름에 대한 기리를 묘사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일본인 선생님은 자신이 잘 모르는 것에 대해 학생에게서 질문을 받았다고 할 때에, 이를 모른다는 것을 티를 내서는 안 된다고 느낀다고 베네딕트는 말했다. 어찌보면, 체면 혹은 권위와도 유사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지만, 자로 잰 듯한 일본 사회의 질서를 이루는 구성원 하나하나가 갖는 특이한 정서라고 할 수 있겠다.

최근 금융인 김승유 씨가  연일 화제를 모으고 있다. 과거부터 하나금융지주의 탄생과 성장 신화를 이끈 주역으로 명성이 높은 데다, 자립형 사립고인 하나고를 설립, 교육에 대한 깊은 관심을 드러내는가 하면, 파생상품 투자로 곤두박질친 하나금융지주의 실적을 복구하는 데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공적으로는 저신용서민금융기관(배드뱅크)인 미소금융중앙재단의 이사장을 맡아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저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활동 중에 그가 생각하는 '기리'에 대해 되짚어 볼 일이 생겼다. 미소금융중앙재단의 이사장역으로 언론들과 연이어 인터뷰를 한 와중에 김 이사장은 재단의 역할을 "삶의 의욕을 잃은 서민을 자활시켜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사회 복지와 금융이 결합된 업무"라는 개념을 동원, 미소금융중앙재단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그려냈다.

여기까지만 보면 "역시 김승유"라고 할 법 하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김 이사장은 단순히 서민에게 돈을 꿔주는 것이 아니고 그들을 계속 독려해 성공하도록 만들어주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면서 '업무의 계속성'과 이를 위해 필요한 '절약'이 절실함을 시사했다. 

그래서 그는 "미소금융 사업을 하려면 전문성이 있어야 하나", "그 비용을 생각할 때 해당 직원을 월급 주고 고용한다는 것은 어렵다"고 말한다. 그래서 자원봉사자가 필요하다는 게 김 이사장이 누차 언론들을 통해 강조한 바였다.

월급을 받고 일하기보다는 열정을 갖고 사회에 봉사하겠다는 자세를 가진 분들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이렇게 '고급 인력'을 '무보수 내지 저비용 봉사자'로 메워보려던 그의 충정이 너무 순진했던 것일까? 이번 국정감사에서 미소금융중앙재단의 직원 연봉이 7000만원을 넘는 등 서민금융 지원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첫단추부터 잘못 끼웠다는 비판이 나왔다.

하기는 몰랐을 수도 있다. 잘 하려다 보니 일을 하는 중에 한 두 가지 실수가 있을 수 있다. 그렇게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이 다분히 한국적 정서다. 하지만 국감에서 이같은 실수에 대해 솔직한 해명을 듣고 싶었던 김 이사장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바람을, 김 이사장은 '바람맞혔다'. 이명박 대통령 외유 수행을 이유로 국감 불출석을 단행한 것이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모를 수 있다. 아니면, 명색 이사장인데 언론에 조명을 받는 중에 모르쇠로 일관하기 보다 뭔가 말을 해야겠고, 그렇게 대응하다 보면 실무에 어두워 실수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체면 때문에 모르는 것을 아는 척 하는 '기리'로 '카오(面)'를 한 번 살리는 게 일본식 정서라면, 그러다 실수나 치부가 드러나는 경우 떳떳이 사과하는 건 한국식 정서다.

김 이사장이 재단 운영 과정에서 상당부분을 자원 봉사자로 설마하니 '떼우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모르는 데 대해 답을 하거나 혹은 더 나아가 설레발을 쳤고, 나중에 그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면, 사과를 하는 것도 미덕이다. 대통령 수행을 빠져서라도 국민들의 대의를 받든 국회에 나서서 사과를 했어야 했다.

김 이사장에겐 기리 개념은 있는데, 체면 개념은 없다. 김 이사장은 일본인인가? 차라리 일본인이었다면 일본인답게 화끈하게 책임을 졌어야 할 일인데, 그도 아닌 것 같다. 그럼 떳떳하게 재단 월급 잔치 건에 대해, 그리고 국감 권위를 무시한 데 대해 국감은 끝났으나 한 번쯤 나타나 사과를 하는 게 도리 아닐까?

임혜현 기자/프라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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