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지난 10월말, 서울아산병원이 태풍의 핵으로 떠올랐다. 서울아산병원은 최근 2개월간 신종플루 환자들에게 응급진료비 총 2억 4000만원을 청구한 것으로 지난달 30일 알려졌다.
응급진찰료는 응급실에서 응급환자에게 청구하는 것으로 2만원에다 응급의료관리료 3만원 중 본인부담금 1만 5000원이 추가되게 된다. 다른 대형병원들은 같은 사안에서 1만원 정도의 일반 외래진료비를 받은 것으로 확인된 것으로 알려져,서울아산병원을 찾은 환자들은 다른 곳에 비해 2만 5000원을 더 낸 셈이다.
이런 상황은 서울아산병원이 신종플루 환자를 위해 임시응급실을 별도로 만들고, 이들을 ‘응급환자’로 규정했기 때문에 발생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가면서 서울아산병원이 주목의 대상이 됐다.
물론, 응급진료비를 받은 것이 사실상 법을 어긴 것은 아니므로, 이같은 행위를 파렴치범과 같은 수준으로 막바로 재단할 일은 아니다. 다만, 아산병원을 세운 고 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유지와 지나친 영리 추구 문제가 배치된다는 점에서 화젯거리가 됐을 뿐이다. 고인이 된 정 회장은 일찍이 부실한 의료 체계에 대한 개선을 재산가의 소명으로 받아들이고, 재산을 쾌척해 병원을 세운 만큼, 이같은 영리와 이재에만 밝은 운영 방침이 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서울아산병원의 이후 행보는 서울아산병원이 아산 정신을 잊은 게 아니냐는 우려를 어느 정도 불식했다고 생각된다.
서울아산병원은 이같은 문제가 불거지자 발빠른 대응을 보였다. 체급이 비슷한 일부 굴지의 대기업(및 산하 기관)에서 보이는 '압박과 읍소'류의 발빠른 언론 대응이 아닌 문제의 근원적 해결에 대한 대응이 빨랐다는 뜻이다.
서울아산병원 등 몇몇 경로에 따르면, 서울아산병원으로서도 이미 지난 8월부터 여로 요로에 지속적으로 관련 규정을 문의했던 모양이다. 아마도 기업 혹은 단체에 따라서는 이런 점을 부각시키면서 당국과 각을 세워 '언론 플레이'를 하면서 급한 불만 끄려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서울아산병원은 이런 나름대로(?) 억울한 사정에 대한 해명에 주력하기 보다는, 문제의 해결과 대책 마련에 주력했다. 언론 보도가 나가기 시작한 30일 오전부터 이미 대책을 강구하기 시작한 서울아산병원은, 30일 저녁에는 "관련 당국의 지침이 나오는 대로 이에 따라 수당 청구 문제에 대응한다"는 어젠다를 마련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사람이고 기업이고 간에, 일을 추진하다 보면 실수도 있게 마련이고 어려운 상황을 대하기도 한다. 서울아산병원의 이번 대응을 지켜보면서, 위기와 어려움을 인정하고 정면으로 승부를 보는 아산 정신이 아직 죽지 않았음을 본다.
1984년 정 회장은 서산 앞바다를 메워 옥토를 만드는 대규모 간척사업에서 '정주영 공법'을 선보였다. 서산 앞바다는 조수간만의 차가 워낙 커 20만t 이상의 돌을 구입해 매립해야만 물막이가 가능한 곳이나 물살이 세 막바지에 진통을 겪었다. 정 회장은 난관으로 공사가 지연되었지만, 이를 포기하지 않고 폐유조선으로 문제의 공사구역을 틀어막아 최종 공사를 매듭지었다.
정주영 공법에 대해선 한때 환경 파괴 우려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후 '뉴스위크' 등 유력지에 관심 아이템으로 오르는가 하면 현재는 주요 토목 공법으로 발전해 있다.
주베일 공사 현장에서의 파업에 대한 대처도 '과학적·조직적 관리'로 일을 미리 예방하는 면에서는 약하지만 문제를 발빠르게 인정하고 정면 대응한 대표적 사례로 해석되고 있다.
1977년 사우디 아라비아에 진출, 주베일 항만 공사를 진행하던 현대건설 소속 노무자들이 대거 유혈 파업을 일으킨 것은 노무 관리(노동자 불만 사항 관리)에 실패한 사례 중 하나다. 특히 사우디 보안군이 출동하는 등 대형 유혈 사태로 번질 가능성마저 급상승했다.
하지만 현대건설측은 예방 관리나 초동 대응에는 실패했지만 현지 공관과 함께 문제의 원만한 해결에 성공하는 저력을 보였다.
이번 신종플루 관련 응급 진료비 사건의 발발과 수습 과정에서 서울아산병원의 대응은 100%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었지만, 수습의 진정성과 정면 돌파 노력이라는 면에서는 위의 두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문제를 인지하고 창조적인 답을 만들어 내기 위해 빠르게 움직이는 것은 대기업(내지 관련 기구)이라는 위치에 안주하는 타성에 젖어있지 않고 '통각'이 살아있다는 징표이기 때문이다. 이번 서울아산병원의 신종플루 처방 과다 청구 건은 그런 점에서, 아산 정신의 맥에서 멀어진 사례로 받아들여지는 동시에, 서울아산병원이 여전히 아산정신의 기본 DNA는 완전히 잃지 않고 있음을 방증하고 있다는 실증 사례라 하겠다. 서울아산병원이 스스로 문제를 알고 고치면서 오랜 세월 설립자의 숭고한 정신을 지켜갈 수 있는 징표로서 여겨져 반갑다.
임혜현 기자 / 프라임경제
ⓒ 프라임경제(http://www.newsprime.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